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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육사시집(陸史詩集)』, 서울출판사, 1946

♣ 이육사(1905～1944) 경북 안동 출생, 시집『육사시집』

♣  도움말
구중서의 평론 「아름답고 힘찬 초인(超人)의 시」의 일부분을 인용하여 봅시다. “육사는 베를렌과 구르몽, 키츠와 예이츠를 읽었고, 솔로우의 숲속의 삶과 괴테의 산상의 정적(「나그네의 밤노래」)을 알았다. 그는 에세닌의 농민시를 알았고 뒷날 중국에 머물며 노신(魯迅)의 위대함에 감복하기도 했다.
육사는 이미 조급해하지 않았고, 독립운동가로서의 티를 내려 하지 않았고, 더욱이 소아병적 객기 정도는 일찍이 초월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용이 되거나 미꾸라지가 되거나를 계산하지 않았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육사는 망국의 나그네길에서 넓은 세상을 보았고, ‘들개에게는 길을 비켜 주는 겸양도 보이지만, 정면으로 달려드는 표범을 겁내어 물러서지는 않는 것’이 자기의 길이라고 했다. 그 길에서 그는 자신을 희생하며 기백을 길러서 견실해진 마음[金剛心]에서 나오는 시를 쓴다고 했다.
육사는 비록 80을 살더라도 ‘유언’을 쓰는 것은 속배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나에게는 행동의 연속만이 있을 따름이오. 행동은 말이 아니고, 나에게는 시를 생각하는 것도 행동이 되는 까닭이오.’ 이것이 그가 시를 쓰는 이유며, 시도 행동의 일환이라는 뜻을 밝혔다. ‘행동’과 ‘사색’의 일치감 때문에 그는 “‘시 한 편’만 부끄럽지 않게 쓰면 될 것을……”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  관련 내용
이른봄이다. 겨울이 갔다. 사람은 늙어 가면서 역사에 속하는 것 같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 역사학자들이 끊임없이 쓰고 있는 역사, 우리 자신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만드는 역사란 무엇인가. 흔히 역사 개념을 과거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역사란 그것이 민족의 역사일 때는 그 민족이 살아온 삶의 주체에 대한 해석인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늘 당대와 미래에 대한 역사의 목적을 낳는다. 젊은 시절은 역사가 한 진부한 과목이 될지도 모른다. 부여나 을지문덕, 사명대사 얘기를 들으면 당장 삿갓에 도포라도 입은 것처럼 지난 시대의 낡은 인상을 받기 쉽다. 왜냐하면 당대의 젊음이란 그 젊음만으로도 얼마든지 삶의 한복판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삶의 꽃이다. 꽃은 극치인 것이다. 거기에 역사 따위가 끼어든다면 젊음에 대해서도 미안하며 역사에 대해서도 동정이 간다. 왜냐하면 역사가 당대의 젊음에 의해서 버림받는 사실이 비참하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은 사람이 고고학이나 고대사에 대해서 공부를 한다면 그것의 현실적인 용도 여부와는 달리 어떤 기이한 느낌이 들 때가 없지도 않다.
그러므로 싱그러운 오늘의 젊은 사람들에게 기성 세대의 권위를 위장하고, 그대들이여 역사를 배워라, 역사에 돌아가라 하고 말하는 것은 일단 넌센스가 되는 것 같다.
젊음은 젊은 자체의 그 순수한 열정과 오늘의 삶 자체만으로도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힘이 된다. 그것은 또한 우리 시대의 무한한 가능성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된다. 그런 젊음을 역사의 박제로 만들 필요는 조금도 없지 않은가.
차라리 많은 늙은 사람들이 구슬픈 일이기는 하지만 젊은 사람들의 삶 안에 뛰어들어서 오늘의 삶에 대한 순수한 동작을 흉내내어 볼일이다.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배우는 것이 가정이 아니다. 아버지가 아들의 젊음으로부터 배우기도 해야 그것이 가정이다. 그 가정이 학교, 사회에 연장될 경우 기성 세대는 미성년의 삶으로부터 힘을 의탁받는다는 사실은 그다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젊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젊음이 역사로부터 독립되었다고 생각하거나 역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생각하거나 하는 것이라면 바른 일이 아니다. 젊음은 그 한복판에서는 삶의 꽃이며 절정이기는 하나 그것이 어디에서 이루어 진 것인가, 그것이 어떤 목적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젊음의 책임을 밝힌다면, 거기에서 역사와 반드시 만나게 된다. 젊음은 장님이 아니고 벙어리가 아니다. 그것은 눈을 뜨고 모든 의지와 열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이 시대가 어느 시대인가를 알아야 한다. 이 시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며칠 전에 사무실로 찾아온 어린 학생 몇 분과 얘기했다. 그 분들은 지난 가을의 어떤 강연이 인연이 되어 대강대강 알 만한 사이였다. 그분들이 조금만 더 어른이라면 내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술 한잔을 사고 싶었으나 아직 그분들은 술집에 정당하게 들어갈 수 없었으므로 “어이, 그대들은 좀더 세월이 지난 뒤에 나와 함께 술집에 가자. 오늘은 겨우 빵집에 가자꾸나” 라고 말하고 그분들을 빵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렇게 되자, 그들이 술집에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내가 빵집에 어울리지 않았다.
찰떡 두어 개를 삼키다가, ‘그대들은 김구(金九)가 누군지 알아’라고 물어 보았다. ‘김구? 김구? 몰라요’라고 그분들은 아무런 열등감도 일으키지 않고 대답했다. 그분들의 여드름은 우렁찼으며 그분들의 웃음은 눈부시었으며 그분들의 동작은 물고기 같았다. 그러나 그분들은 백범 김구 선생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았다.
나는 김구 선생이 누구라는 사실을 약간 불쾌한 느낌으로 그분들에게 알려 주었다. 내 어조에도 이제까지와는 달리 그분들에게 숙연하게 요구하는 바가 깃들여 있었으므로 그분들도 숙연해졌다. 그분들과 헤어질 때는 서로 입맛이 달지 못했다. 그분들 때문에 이 글을 쓰는 동기가 되었으나 아마도 그 젊은 학생들은 나를 다시 찾아 올 수 없게 되었을 것이며 나는 그분들을 만날 여유를 주게 될 것 같지 않았다.
아무리 사람이 저 자신의 삶을 통해서 충만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젊음으로 가능하더라도 바로 그 젊음의 오늘은 역사 진행의 한동안인 것이다.
여기에서 사람은 최소한 당대 이전의 역사에 대한 의식을 소유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그 의무는 당대의 오늘을 사는 의무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일본 식민지 시대의 반세기를 우리 자신의 역사 공간에서 점령당했다. 그 때문에 그 이전의 조선 말기나 한말 시대의 현실이 아주 먼 시대의 풍경이 되어서 우리 자신의 시대에 풍경이 되어서 우리 자신의 시대에 그 짙은 그림자를 만들지 않고 있다. 실지로는 그렇게 되었다 하더라도 우리 자신의 의식이 그것으로부터 건달스럽게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런 현상은 너무나 삭막한 일이다. 역사가 당대에 너무 무거운 짐이 되는 일은 때때로 역사에 대한 복종이 강요되기 때문에 당대의 삶이 전개되지 못할 경우도 있다. 영국은 그런 무게의 억압을 받고 있다.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 완전하지 않을 경우 거기에 역사의 의미를 보완함으로써 당대나 오늘의 의미를 큰 것으로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의식 가운데서 역사 의식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것은 하나의 반성이며 책임의 자리를 확인하는 일이 된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확신이 된다. 그것은 어떤 불의와 악, 타락으로부터 사람을 건져내는 정의와 자유의 원천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시대를 민족의 대명사처럼 비극적으로 살아온 김구 선생은 우리들의 어버이로서 기념해야 된다. 김구를 모르다니 말이나 되겠는가.
그러나 김구의 시대, 그가 그렇게도 사랑하고 서로 공감되었던 모든 이름 없는 근대사의 민중도 우리의 어버이와 선배로서 기념해야 되는 것이다.
(고은, 『흘러라 물』)

♣  관련 어록 및 어휘
ꊱ 시작과 중간과 끝이 완전하게 재현되는 것이며, 그 광경은 열두 시간 동안 전투와 승리, 그리고 패배가 연이었던 것을 축소시킨 일조의 그림을 명백하면서도 느릿느릿한 방법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벽은 하루의 시작에 지나지 않지만, 황혼은 하루의 반복인 것이다.《C.레비스트로스》
ꊲ 역사가 기록되는 것은 얘기하기 위해서이지 증명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퀸틸리아누스》
ꊳ 인간의 역사는 학대받는 자의 승리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다.《타고르》
ꊴ 역사는 과거의 사람들을 평가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 미래를 판단케 한다.《T.제퍼슨》

♣  생각 거리
1. 역사와 관련된 내용의 글을 읽고 독후감을 써보자.
2. 『백범일지』를 읽고 독후감을 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