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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적막강산』, 모음출판사, 1963

♣ 이형기(1933～ )경남 진주 출생, 시집『돌베개의 시』,『꿈꾸는 한발』

♣  도움말
백거이(白居易)는 「낙화부(落花賦」에서 “봄은 좋더라/ 머물지 않아도/ 저만 가고 우리만 남아 서럽지/ 바람은 싫더라/ 나는 싫더라/ 꽃샘에 지는 꽃이 어떻게 많다고”라고 읊었다.
떠나는 것은 남아 있는 것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과 아쉬움 때문에 서럽다. 그러나 이 세상 서러운 것이 어디 떠나가는 것뿐이랴? 차라리 낙엽이 지는 가을에 떠나지 않더라도 꽃지는 봄날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것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기 때문이다. 떨어지는 꽃과 함께 나의 청춘도, 나의 사랑도 나의 이별도 떠난다.

♣  관련 내용
봄에 피었던 꽃들이 지고 있다. 수없이 많은 꽃이 피었다가 수없이 많은 꽃이 진다.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수한 꽃들이 피었다간 사라진다. 어떤 꽃들은 불과 며칠 동안 잠시 환한 얼굴을 들고 이 땅에 왔다가는 소리도 없이 돌아가 버린다. 어떤 꽃들은 미련을 다 못 버려 시들고 이 땅에 왔다가는 소리도 없이 돌아가 버린다. 어떤 꽃들은 미련을 다 못 버려 시들고 나서도 그 자리를 떠날 줄 모른 채 가지를 붙들고 있다.
동백꽃처럼 한 순간에 목을 툭 떨구는 꽃이 있는가 하면, 벚꽃처럼 꽃 이파리 하나 하나를 온 천지에 다 흩날려 뿌리며 안타까워하는 꽃이 있다. 박태기나무의 꽃처럼 꽃을 뿌리 있는 자리에다 떨구며 되가져 가는 꽃이 있는가 하면, 라일락꽃처럼 시들어 버린 꽃을 버리지 못한 채 품어 안고 있는 꽃나무도 있다.
개나리나 백목련처럼 꽃이 지기 무섭게 잎들을 불러와 외롭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꽃이 있는가 하면, 모과나무나 아카시아처럼 잎이 무성하게 자란 걸 확인한 다음 잎 그늘 아래 진한 단내와 함께 꽃을 내밀어 벌들을 불러들이는 조심스러운 꽃도 있다.
앞서 피었던 아름다운 백목련이 처참하게 지고 마는 걸 보면서도 자목련은 다시 피고, 겨울 지내고도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산을 붉게 일으켜 깨우던 진달래꽃이 힘없이 고개를 떨구는 것을 보면서도 철쭉은 더 꼿꼿한 자태로 다시 핀다. 봄 꽃이 진 자리에 여름 꽃들이 다시 자리를 채우고 꽃나무마다 꽃이 진 상처의 자리 위에 씨앗이나 열매를 준비한다.나의 청춘, 나의 삶, 나의 이별

꽃이 진 자리를 바람이 쓸고 갈 때마다 마음이 애잔해져 오지만 흙으로 돌아간 꽃은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오리라는 믿음 때문에 아주 헤어진다는 생각으로 슬퍼하지는 않는다. 삶에는 삶의 문이 있듯이 죽음에도 죽음의 문이 있어 그 문을 열고 다시 꽃술을 내미는 것이 또 꽃이다. 지는 꽃을 보면서 가슴 아픈 것은 정작 사람 때문이다.
구천을 다시 돌아 어둠과 죽음을 다시 돌아, 때가 되면 그 자리에 보란 듯이 돌아오는 꽃처럼, 흙에 묻혀 돌아간 사람들이 억겁을 다시 돌아 삼천대천세계를 다시 돌아 제자리로 돌아왔으면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한 꽃이 지고 나면 다른 꽃이 그 옆에 피어나는 것처럼 물론 사람들의 삶도 번번이 이어지는 것이지만, 한 번 헤어지면 영원히 헤어지고 마는 때가 있어 꽃이 지는 날은 어찌 할 수 없이 마음이 아려 온다.
산천에 가득 꽃이 피었다 산천에 가득 꽃이 진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왔다가 수없이 많은 사람이 돌아간다.
(도종환, 「지는 꽃」)

♣  관련 어록 및 어휘
ꊱ 꽃은 하느님이 지으신 가장 아름다운 것인데 영혼을 넣어 주실 것을 깜박 잊으셨다.《H.비처》
ꊲ 꽃의 매력의 하나는 그에게 있는 아름다운 침묵이다.《H.소로》
ꊳ 화초(花草)는 나의 인생의 위대한 교사(敎師)이다《정병욱》
ꊴ 봄 꽃도 한때《한국속담》

♣  생각 거리
1. 아름다운 사랑이 줄거리인 연애소설의 개요를 작성해보자.
2. ‘가야할 때’를 적용할 수 있는 경우를 찾아 보자.
3. 이별은 꼭 슬픔으로만 남는 것인지 함께 이야기해 보자.
4. 사랑을 하다가 이별했을 때의 감정은 어떤 색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