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에 관하여
창고마다 지저분하게 널려진
수백만개의 나사들
크기만 다를 뿐 모두 비슷한
암나사와 숫나사들을
한 번도 눈여겨 본 적이 없다
도무지 매력 없어 보이는 저것들이
수많은 부품을 합치고 조이면
자동차가 되어 달려가고
비행기가 되어 달려가고
로보트가 되어 작동한다
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어쩌다 한 개의 숫나사가 빠지거나
한 개의 암나사가 부서지면
그 한 개의 나사 때문에
자동차의 엔진이 꺼지고
비행기가 불시착하고
로보트가 작동하지 않는다
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한 개의 나사 때문에
귀중한 목숨을 잃기 전에
그리고 한 개의 나사를 갈아끼우기 위하여
수천 개의 나사를 풀어야 하기 전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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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좀팽이처럼』, 문학과 지성사, 1988
♣ 김광규(1941 ～ ) 서울 출생, 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도움말
나사는 너무나 작고 흔해서 우리의 주목을 거의 끌지 못한다. 그러나 이렇게 작고 흔한 나사지만 그 나사는 거대한 기계나 로봇을 움직이는 역할을 한다. 이 나사로 인해 많은 사람이 곤란에 빠지거나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 삶 속에서 사소하게 보이는 많은 것들이 제자리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이 하는 구실이나 기능을 제대로 알아채지 못하고 때로는 무시하고 하찮아 한다. 그러나 미세하고 작은 것이라도 각각 자기가 맡은 역할이 있으며, 그 역할로 인하여 이 거대한 사회가 움직여 나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사회의 나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 관련 내용
조직 내의 인간이 인간으로서 성장하면 성장한 만큼 조직의 업적은 향상된다. 이 점에 대한 통찰(洞察)이 경영자의 육성이라든가 교육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자면, 조직체 자체가 성실면에서 격조를 높이고, 높은 목표를 지향하며, 탁월한 능력을 갖추게 된다면 그 조직 내의 인간이 인간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분야가 열리게 되는 법이다. 조직은 개인에 대한 지배력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자유사회에서는 조직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개인이 그 수단이 되는 일은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다. 조직의 개인에 대한 지배는, 조직체가 사회에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사회에 공헌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도에서 끝나야 한다.
(P.F.드러커, 「변모(變貌)하는 산업사회(産業社會)」)
♣ 관련 어록 및 어휘
ꊱ 조직체는 개인이 갖는 제약이나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 장점을 발휘하여 업적을 올릴 수 있도록 개인에게 봉사하여야 한다. 《P.F.드러커/경영자의 조건》
ꊲ 인생엔 영웅역과 악역, 시녀역, 순진한 처녀역 등 다양한 역할이 있게 마련인데, 모두가 훌륭하게 그 역을 해낸다. 《J.W.크루치/현대적인 기질》
ꊳ 거미는 작아도 줄만 친다. (＊생김새는 작더라도 저 할 일은 다 한다는 뜻) 《한국》
ꊴ 구멍을 파는 데는 칼이 끌만 못하고 쥐 잡는 데는 천리마가 고양이만 못하다. (＊무엇이나 제가 맡은 바 구실이 따로 있고 쓰이는 데가 각각 다른 것이라 하는 말) 《한국》
ꊵ 순망치한(脣亡齒寒) :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으로, 친한 사람 중 한 사람이 망하면 다른 사람도 그 영향을 받음을 말함.
ꊶ 사람은 맡은 역할에 합당한 구실을 해야 한다. 《M.레니에/풍자시집》
♣ 생각 거리
1. 자신이 학교나 사회의 조직 속에서 정말 필요 없는 존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2. 자기가 속한 조직이나 단체에서 자신이 하는 역할은 도대체 어떠한 것인지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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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속의 삶, 자기 역할-나사에 관하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