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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현대시학』, 1994년 8월호

♣ 정현종(1939 ～ ) 서울 출생, 시집『고통의 축제』,『한 꽃송이』

♣  도움말
보통 우리 한국의 미를 이야기 할 때 ‘곡선미’를 빼놓지 않는다. 한복의 선이 그렇고, 초가의 선이 그렇고, 야트막한 산등성이의 선들이 그렇기 때문이다. 시인도 ‘그 굽은 곡선’을 ‘내 그지없이 사랑’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생명의 모습, 평화의 노다지’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못견디게’ 좋은 것이다.

♣  관련 내용
한국의 미를 한 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자연의 미’라고 할 것이다. 자연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것은 한국적 자연으로, 한국에서의 미술 활동의 배경이 되고 무대가 된 바로 그 한국의 자연이다.
한국의 산수(山水)에는 깊은 협곡(峽谷)이 패어지고 칼날 같은 바위가 용립(聳立)하는 그런 요란스러운 곳은 적다. 산은 둥글고, 물은 잔잔하며, 산줄기는 멀리 남북으로 중첩(重疊)하지만, 시베리아의 산맥처럼 사람이 안 사는 광야(曠野)로 사라지는 그러한 산맥은 없다. 둥근 산 뒤에 초가집 마을이 있고, 산봉(山峰)이 높은 것 같아도 초동(樵童)이 다니는 길 끝에는 조그만 산사(山寺)가 잇다. 차창에서 내다보면, 높은 산 위에 서 있는 촌동(村童) 2, 3 인의 키가 상상 이외로 커 보이는 곳은 우리 나라밖에 없다. 그만큼 우리 나라의 산은 부드럽고, 사람을 위압하지 않는다. 봄이 오면 여기에 진달래가 피고, 가을이 오면 맑은 하늘 아래 단풍이 든다. 단풍은 세계 도처에서 볼 수 있으나,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길을 뒤덮고 산을 감추어 버리는 그러한 거대하고 위압적인 단풍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인식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주장하지 않는 겸손 그대로의 단풍이다. 아니, 겸손하다기보다는 아주 자기의 존재조차 무각무인(無覺無認)하는 천의무봉(天衣無縫), 해탈성불(解脫成佛)한 것 같은 단풍이다. 단풍 든 시절의 한국의 산은, 보고 있으면 동심으로 돌아가, 산꼭대기서부터 옆으로 누워 데굴데굴 굴러 보고 싶은 그러한 산이다. 이것이 한국의 자연이다. 한국의 산에는 땅을 가르고 불을 내뿜는 그 무서운 화산도 없다.
또한, 한국의 하늘에도 구름이 뜨지만, 태풍을 휘몰아 오는 그런 암운(暗雲)은 없다. 여름에는 때때로 하늘을 덮고, 우레 소리로 사람을 놀라게 하지만, 추석(秋夕)이 되면, 동산에 떠오르는 중추 명월(中秋明月)에 자리를 비켜 주는 그런 구름이다. 세상 또 어디에 흰 구름 날아간 뒤의 맑은 한국 하늘의 어여쁨이 있을까!
이 맑은 하늘 밑, 부드러운 산수 속에 그 동심 같은 한국의 백성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미의 세계요, 이 자연의 미가 바로 한국의 미다. 여기에서 어떻게 사색을 요구하는 괴이한 미가 나타나고, 인공의 냄새 피우는 추상과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 되풀이하지만, 한국의 미를 한 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바로 ‘자연의 미’라 할 것이다.
(강원룡, 「한국의 미」)

♣  관련 어록 및 어휘
ꊱ 직선이 비약과 의지와 도전과 공리성과 물질주의의 미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곡선은 정체와 정감과 순응과 여유와 그리고 정신주의의 미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령》
ꊲ 항아리와 같은 원만한 곡선은 그 시대의 풍조와 이상을 가시적 여성미를 통해 승화시킨 전형이 아니었나 싶다. 여성이면 둥글둥글하게, 그 같은 시대적 미의식이 도예가들에게도 젖어 들었고, 그것이 항아리의 선으로 표현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항아리의 선은 그 당시의 여성의 옷맵시의 선이다. 현대의 도예가들은 현대의 여성 옷맵시의 선을 작품에 표현한다면 어떤 선으로 정착할 것인가. 《방기환 /항아리의 선과 그 원형(原型)》
ꊳ 향기도 있고 빛깔도 지닌 고운 선, 그것은 겉으로 나타내려는 마음이 아니요,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는 마음이다. 《조지훈/영원과 고독을 위한 단상》
ꊴ 직선은 인공적인 것이다. 자연은 언제나 직선을 피한다. 《P.세잔》

♣  생각 거리
1. 자연의 미를 잘 드러내고 있는 것들을 찾아 적어 보자.
2. 우리 민족의 삶과 곡선의 부드러움과의 관련성에 대해 친구들과 토의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