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마당 > 글나라우수작품 > 우수작품

우수작품

제목 컴퓨터
작성자 배윤혜 작성일 2004-03-14
작성일 2004-03-14
컴퓨터

한자, 컴퓨터 등 자격증 시험을 보신 분들이면 아시겠지만 시험 공부도, 또 시험 치르는 일도 마냥 쉽기만 한 게 아니다.
특히 시험에 대한 막연한 공포증이 있는 나는 초등학교 때 보는 사소한 쪽지시험부터 숱한 시험들에 이르기까지 시험지를 보기도 전에 가슴이 떨려서 아는 문제도 툭하면 틀리는 일이 허다했다.
자격증 시험을 처음 보는 오늘도 그랬다. 정보처리기능사 필기를 턱걸이로 합격한 나는 실기 시험 전부터 잔뜩 긴장되어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렇게 평소에 좋아하던 컴퓨터 모니터도 왕왕거리며 머릿속을 맴돌기만 하였다.
"괜찮아, 떨지 말고 잘 해."
"그냥 떨어져 버려."
식구들도 아침부터 시험에 대해 장난스레, 또 한편으론 심각하게 얘기를 해주었으나 모두 나를 걱정하고 시험에 붙기를 기원하는 한마음인 건 알아볼 수 있었다.
"밑에 내려가 있을 테니까 아홉시 정각에 나와."
아홉시 십분쯤 전에 아빠께서 먼저 말씀하시곤 집을 나가셨다. 사십 분 후에 시험장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벌써부터 내려앉을 것 같았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챈 듯,
"괜찮아, 괜찮아. 평소 하던 대로만 해."
하고 엄마께서 말씀하셨다.
흔히 듣던 격려사였지만 어쩜 그렇게 새삼스럽고 포근하게 느껴지던지......
한참 눈만 깜박거리다가 아홉 시가 넘어서야 허둥지둥 집을 나섰다. 차를 타고 계속 가다 산업인력관리공단에 거의 도착해서야 너무 급히 나오느라 짬짬이 생각을 정리해 볼 컴퓨터 문제집도, 시험 공포증을 대비해 저녁부터 수선스레 챙겨 놓은 우황 청심환도 집에 그대로 놓고 나온 게 떠올랐다.
"어떡해."
내가 발을 동동 구르자 아빠께서도 당황하신 듯 열심히 진정만 하고 하라고 거듭 말씀하셨다.
시험장에 들어가서 문제를 받자마자 조금은 안도가 되었다. 모두 전에 연습하고 또 연습하던 새삼스런 문제들이였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마음을 차분히 하고 문제에 몰입하여 이삼십 분 만에 네 문제를 모두 풀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마땅히 어떤 답이라도 나와야 할 네 문제의 답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해지는 걸 꾹 참고 다시 검토했지만 틀린 부분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여유만만히 디스켓을 내고 4분의 3쯤은 시험장에서 빠져나가 있었다.
할 수 없이 디스켓을 팽개치듯 내고 나가 버렸다.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빛 아래서 다른 수검자들은 너무도 행복해 보였다.
"잘 봤니?"
나오자마자 초조하게 물어보시는 아빠를 보자 가슴이 찡하게 울려왔다.
그 후로 뭘 어떻게 대답했는지도 모른다. 오직 삼십 분 가까운 드라이브 속에서도 눈물이 나오지 않도록 눈에 힘을 꼭 주고 있었다는 것 밖에는.
집을 들어서자 엄마께서도 청소를 하시다가 뛰어나오시며
"잘 봤어? 안 어려웠니?"
하고 물음표를 연신 던져대셨다. 참았던 눈물이 왈칵 터져나왔다.
"어, 어떡해, 엄마, 어떡해, 흑, 흐, 흐윽, 나, 시험, 떨어지면 어떡해. 흑,"
"왜 그래, 시험 못 봤니?"
"어떡해, 어떡해, 흑."
엄마께서는 한참 나를 달래기만 하셨다. 처음 보는 자격증 시험인 만큼 기대가 나 못지않게 컸던 엄마도 서운하고 섭섭한 표정이었다.
"엄마한테 안 미안해도 돼. 그냥 열심히 좀만 더 해서 담에 합격해. 오빠도 시험 두 번이나 떨어졌잖아."
"......."
"괜찮아. 뭐 그것 떨어진 것 같고 울면 이 세상 어떻게 살으려고."
"......."
"진짜 괜찮다니까."
"뭐가, 뭐가 괜찮아!엄마는 모르잖아! 엄마가 떨어진 거 아니니까!"
순간적으로 막연히 화가 치밀어 올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곧 후회했지만, 엄마는 무척 속이 상하신 듯 잠시 바람 좀 쐬고 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엄마, 그러려고 하던 건 아닌데.......'
속으로 수만 번도 되뇌였지만 막상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야 나는 내가 공부를 완벽하게 하지 않은 결과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 진짜 실력 있는 사람이란 언제나 자만하지 않고 항상 100%를 향하여 끝없이 노력하는 사람일 거다. 그것도 모르고 애꿎은 엄마께만 화를 냈다니......
정말 내 자신이 바보같다. 하지만 그럴수록 지난 실수를 잊고 열심히, 더 열심히 노력해야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직 엄마께 하지 못한 말...

"엄마,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
삼천中1 배윤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