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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품

제목 내 자유와 권리를 찾아주세요 -'내가 나인 것'을 읽고-
작성자 김영우 작성일 2004-03-28
작성일 2004-03-28
저녁 늦게 엄마가 퇴근하셨다. 나는 얼른 컴퓨터를 끄고 책을 보는 척했다.
하지만 엄마는 컴퓨터 모니터의 뒷부분을 만져보시더니, 내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으며 버럭 화를 내셨다.
“6학년이 되어서도 만날 게임만 하냐? 빨리 공부하지 못해!”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가슴이 뜨끔해진 나는, 부끄러운 얼굴을 가리듯 책을 펼쳐들었다. 6학년에 올라와서 제일 먼저 결심한 것이, 바로 게임시간을 줄이겠다는 거였는데......

이 책의 주인공인 히데카즈(秀一)는 이름만 근사할 뿐, 공부도 못하고 늘 실수만 저지르는 말썽꾸러기이다. 그런 히데카즈한테 엄마는 마귀할멈이나 다름없었다. 손톱만큼의 실수도 히데카즈에겐 허락되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런 히데카즈 엄마를 보고, 우리 엄마와 조금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우리 엄마는 히데카즈의 엄마처럼 심하게 잔소리하고 간섭하시진 않지만, 내가 공부를 게을리 하거나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 땐 히데카즈 엄마와 똑같이 마귀할멈처럼 변하기 때문이다.
히데카즈는 여름방학이 가까워지자 엄마의 권위에 도전하기 위해 가출을 계획한다. 하지만 그 계획은 금세 여동생인 마유미에 의해 동네방네 소문나버린다. 나는 허구한 날 오빠의 잘못이나 비밀을 캐내서 엄마한테 고자질하는 동생 마유미가 너무 미웠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런 여동생이라도 좋으니 나한테 형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여름방학이 되자, 히데카즈는 엄마의 간섭과 권위로부터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어귀에 세워져 있던 트럭 짐칸에 숨어 가출을 시도했지만, 깜빡 조는 사이에 집으로부터 너무 먼 곳까지 가게 되었다. 게다가 히데카즈는 타고 있던 트럭운전사의 뺑소니 사건까지 목격하게 된다. 겁에 질려 도망치던 히데카즈는 민가에 숨어들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던 외로운 소녀 나츠요를 만나서 우정을 쌓게 된다. 히데카즈는 나츠요의 집에 머물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줄 알았던 자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과, 자기 자신도 꽤 쓸만한 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게다가 나츠요가 맹장수술을 받았을 때,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간호해주는 등, 좀 더 의젓해지고 성숙해진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히데카즈는 이제 엄마의 잔소리가 무섭지 않다. 오히려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사생활에 사사건건 간섭하며 자식을 자기의 소유물 정도로 생각하는 히데카즈의 엄마는, 전혀 변할 줄 몰랐다. 여전히 히데카즈에게 지나친 보호와 간섭을 행사했다.
물론, 우리 어린이들은 부모나 어른들의 보호를 받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존재다. 하지만 나는, 우리 어린이들에게도 그 나름의 자유와 권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히데카즈의 엄마가 마유미를 시켜서 편지를 몰래 빼돌린 것은, 자식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은 것이나 다름없다. 나츠요와의 우정이 담겨있는 편지, 즉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츠요에 대한 히데카즈의 마음을 손톱만큼도 존중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참, 히데카즈 엄마의 집(히데카즈는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에 불이 나서 홀랑 타버렸을 때, 맨 처음엔 쌤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히데카즈의 엄마가 불쌍하고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히데카즈가 보이지 않는다며 미친 듯이 불 속으로 뛰어들려 했다는 대목에선, 가슴이 뭉클해지며 눈물이 나려했다.
왜냐하면 얼마 전에, “너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수 있단다”라고 말씀하셨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정말 우리 엄마는 날 위해서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손발이 퉁퉁 붓도록 열심히 일하신다. 어제도 엄마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주무시는 모습을 보았다.
불쌍한 우리 엄마!
그런데 내가 알기론, 진정한 자유는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라고 배웠다. 책임을 지지 않는 자유는 방종이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 어린이들은 아직 자유와 권리를 누릴 나이가 되지 않았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자유와 책임, 권리와 의무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것일까? 왜 히데카즈 엄마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들지 않고, 또 사과하려 들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부모님이나 어른들은 아이들과 의견충돌이 일어났을 때, 왜 자기들의 의견이 무조건 옳다고만 생각하는 것일까?
자식의 모습이 안 보이자 불 속으로 뛰어들려한 히데카즈 엄마의 행동과, 누가 뭐래도 나는 엄마의 아들이라는 것을 이해시키고 말겠다는 히데카즈의 결심이, 나의 의문들을 대신할 수 있을까?

(광주 효동초 6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