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원년(1864), 조정에서는 적상산 사고(조선 시대에, 역사에 관한 기록이나 중요한 서적을 보관하던, 정부의 곳집)의 포쇄관(사고의 서책을 햇볕에 말리는 일을 맡아보는 직책)으로 이면광을 임명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사고의 수호사찰(친밀한 관계를 맺고있는 절)인 안국사가 너무 낡아 보수 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때 마침 조정에서 경복궁 중건으로 단청공( 전통 양식의 건축물에 여러 가지 빛깔로 그림이나 무늬를 그리는 사람)을 구할 수 없게 되어 절은 지었으나 옷단장을 하지 않은 형국이었다.

당시 주지승이었던 인아대사와 불자들이 백방으로 알아보았으나 단청공을 찾을 수 없어 낙담하고 있던 때에 늙은 몸을 간신히 지팡이에 의지한 노승 한 분이 주지스님을 찾아와 단청을 맡겨 달라는 청을 하는 것이 아닌가.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 결국 단청을 맡겼다.

노스님은 다시 마을로 내려가 며칠 후 지게에 잔뜩 짐을 진 장정을 대 여섯 명을 데리고 돌아왔다. 그런데 짐을 풀어보니 단청에 필요한 물건은 하나도 없고 쓰다 버린 홑이불과 휘장(둘러치는 막) 백 여장 뿐이었다. 노스님은 휘장을 극락전에 둘러치고서는 석 달 열흘 동안 일을 마칠 때까지 누구도 들여다 보지 말라 단단히 당부하고 노스님은 휘장 안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아대사는 궁금하기 시작하였고 한편으로는 공연한 일을 시킨 게 아닌가 하는 걱정으로 의구심을 참을 수 없어 석달 아흐래가 되는 날 그만 휘장을 들쳐 보고 말았다. 순간 새 한 마리가 극락전 뒷 추녀에 매달려 있다가 푸드득 소리를 내면서 휘장을 찢고 날아 올랐다. 깜짝 놀라 하늘을 보니 학 한 마리가 너울거리며 항로봉 너머로 날아가고 있었다.

휘장이 벗겨진 안국사 극락전은 마치 극락세계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그런데 학이 날아가 버린 극락전 뒷 편 추녀 밑을 보니 단청을 하다 미쳐 끝내지 못한 부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내가 하룻밤만 참았더라면...' 인아대사는 자신의 경솔함을 뼈져리게 뉘우치며 눈물을 흘렸다.

지금도 안국사 극락전 추녀 밑의 단청을 하다만 자리는 노승으로 변한 학이 단청을 하다 그친 자리가 그대로 남아 있고 단청을 하였던 노승을 학대사라 부르고 있다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