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은 개령군에 책봉된 뒤 981년 6월, 병석에 누운 경종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습니다. 그해 7월 경종이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올랐는데, 이때 그의 나이 스물두 살이었습니다. 직계가 아닌 성종이 즉위할 수 있었던 것은 경종이 스물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고, 경종의 맏아들 송(목종)은 이때 겨우 두 살로 왕위를 잇기에는 너무 어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경종은 죽기 전에 왕족 가운데 가장 덕이 높은 성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

어느 날, 성종은 달밤에 별감과 함께 경회루 연못을 거닐다가 연못가에 있는 사람을 발견하였습니다. 성종은 그에게 다가가서 물어 보았습니다.
  “누구인고?"
  “교서관 교리로 있는 구종직이라고 하옵니다."
  “교서관 교리라면 대궐 안에 함부로 들어올 수 없거늘, 어이하여 들어왔는가?"
  “소신은 시골에서 자라나, 경회루를 구경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특별한 공무가 아니면 들어올 수가 없어서 아무도 없는 밤중에 몰래 구경하려고 들어왔사옵니다. 벌을 내려 주옵소서." 
구종직은 땅바닥에 엎드려 쩔쩔매었습니다.
  “괜찮다 고개를 들라. 달 밝은 좋은 밤이니, 노래나 한 곡조 불러 보아라."
  성종은 낮은 벼슬아치의 마음을 가라앉혀 주고 싶었습니다. 구종직은 시골에서 부르던 노래를 불렀습니다.
  “시도 지을 줄 알거든 지어 보아라."
  구종직은 그 자리에서 시도 한 수 지었습니다.
  “노래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시도 썩 잘 짓는구나. 이 책에 있는 것을 외울 수 있겠느냐?" 
성종은 손에 든 <춘추>를 내보였습니다. <춘추>는 수십 권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성종은 별감에게 술상과 함께 <춘추>를 모두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자, 술을 마시고 천천히 외워 보아라." 
구종직은 성종이 시키는 대로 <춘추>를 술술 외웠습니다. 성종은 감탄을 하였습니다.
  “이런 인재가 교서관의 교리로 파묻혀 있다니!” 
이튿날, 성종은 구종직에게 홍문관 부제학의 높은 벼슬을 내렸습니다.
 
성종은 밤이면 자주 미행을 나가 민정 시찰을 했습니다. 

어느 날 성종이 대궐 밖에 미행을 나갔다가 어떤 사람이 까치집이 있는 나무를 베어 자기의 문 앞에 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관을 시켜 그 연유를 물었습니다.
  “까치집이 있는 나무를 무엇 하러 집 앞에 가져다 세운 거요?”
  “예로부터 대문 밖의 나무에 까치집이 있으면 과거에 급제한다는 말이 있소이다. 우리 집 앞에 까치집    이 있는 나무가 없어, 이것으로 대신하여 좋은 징험이 있기를 바라는 뜻이오.” 
성종이 그를 불러 직접 물었습니다. “선비는 강송을 잘하오?”
  “예, 나를 아는 선비들은 잘한다고 하오.”
  “제술(글짓기)은 어떻소?”
  “잘하오. 그런데도 수십 년 동안 과거에 억울하게 떨어졌소이다.”
  “다음에 과거를 보면 반드시 합격할 걸세.”  성종은 가난한 내외를 위해 며칠 뒤에 과거를 보겠다는 어명을 내렸습니다. 이 날, 가난한 젊은이도 과거장에 나왔습니다. 글제를 받아 본 젊은이는 소스라쳤습니다. 며칠 전에 뵌 분이 임금이라는 사실을 그때서야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상감마마, 황공 하여이다!” 젊은이는 혼자만 아는 글제인 “사람내외 까치”에 대해 멋진 시를 지어 합격하였습니다.

이처럼 성종은 실력 있는 자에게는 기회를 주었고, 그 누구보다 백성을 아끼고 사랑한 어진 임금으로 불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