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백은 백제 말기의 장군으로, 일찍이 벼슬길에 올라 660년(의자왕20)에 달솔이라는 벼슬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 백제는 신라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긴 상태였습니다. 백제는 북으로는 고구려, 남으로는 일본과 손을 잡고 신라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다급해진 신라는 당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여 백제에 맞섰습니다. 그러나 백제의 의자왕은 그 무렵 잔치만을 즐기고 나라 일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신라는 이 틈을 이용하여 660년 5만 명이 넘는 나당 연합군을 결성하여 백제를 공격하였습니다. 김유신과 당나라 소정방이 이끄는 나당 연합군이 백제의 요충지인 탄현과 백강으로 쳐들어오자 계백은 좌평 충상, 달솔 상영과 함께 결사대 5천여 명을 이끌고 황산벌(충청남도 연산)로 나가 싸웠습니다.

싸움터로 나아가기에 앞서 계백은 가족들을 불러 모아 놓고 비장하게 말했습니다.
 “만약 이 싸움에서 진다면 우리 백제는 망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 백성들은 개처럼 질질 끌려 다니며 모욕을 당하거나 평생 종으로 살게 될 것이다. 어떠냐? 너희는 종으로라도 살아남길 바라느냐?”
 “적의 손에 사로잡혀 종의 노릇을 하면서까지 구차하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아버님께서 죽을 각오로 싸움터로 나가신다면, 우리 모두를 죽이고 떠나십시오. 살아서 종이 되느니 차라리 떳떳하게 백제사람으로 아버지 손에 죽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아버님. 저희들을 죽이고 가셔야 가족 걱정을 하지 않고 끝까지 싸울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들 고맙구나. 너희는 모두 자랑스러운 백제의 아들, 딸이다. 내 죽을힘을 다해 한점 부끄럼 없이 싸우다가 너희를 뒤따라 갈 것이다. 잘 가거라.”

계백은 떨리는 손으로 칼을 꺼내어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의 목을 하나하나 베었습니다. 그리고 병사들을 모아놓고 
 “옛날 월나라 왕 구천은 5천 명의 군사로 오나라 왕 부차의 70만 대군을 무찔렀다. 전쟁의 승리는 군사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력에 있다. 오늘 마땅히 각자 힘껏 싸워 승리를 거두어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라.”라고 외치며 격려하였습니다. 목숨을 버릴 것을 맹세한 5천 결사대의 용맹은 신라의 대군을 압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처음 신라군과의 네 번에 걸친 싸움에서 백제는 모두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계백은 먼저 공격해 온 화랑 반굴을 죽이고, 두 번째로 반굴의 원수를 갚기 위해 홀로 공격해 온 화랑 관창을 사로잡았습니다. 계백은 어린 관창의 용기를 높이 사 여러 번 살려 보냈지만, 관창이 계속 공격해 오자 할 수 없이 관창의 목을 베어 말안장에 매달아 신라 진영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신라 장군 김유신이 울부짖듯 외쳤습니다.
 “신라군이여, 저 두 화랑의 값진 희생을 헛되이 하려는가! 일어서라, 나가자. 진격만이 살 길이다. 저 두 화랑의 혼백을 앞세우고 진격, 또 진격이다!”

두 화랑의 용기 있는 죽음을 보고 분노하여 사기가 오른 신라군은 총공격을 펼쳤습니다. 황산의 넓은 벌판은 5만의 신라군으로 뒤덮였습니다. 이들과 대적하기에는 백제군의 숫자가 너무 적었습니다. 결국 계백 장군과 5천 결사대는 모두 황산벌에서 장렬히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계백장군의 황산벌에서의 패전은 백제에 결정적 타격을 입혔습니다. 계속 공격해오는 신라군을 막기 위해 백제군은 사비성 외곽 20여 리 지점에서 최후의 항전을 벌였으나, 1만여 명의 전사자를 남기고 도망가야 했습니다. 마침내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게 함락되면서 백제는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한편 나라가 망하고 성 곳곳에 불길이 일어나자, 궁 안에 있던 3천의 궁녀들은 우왕좌왕 하다가 백마강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궁녀들은
 “적군에게 몸을 더럽히고 구차하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 상감마마, 만수무강하소서!” 라고 말한 뒤 대왕포의 절벽 위 벼랑 끝에서 하나 둘씩 몸을 던져 꽃처럼 떨어졌습니다. 뒷날 3천 궁녀가 강으로 뛰어든 바위를 ‘낙화암’이라고 불렀습니다. 

조선시대의 유학자들은 나라를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온몸을 다 바쳐 싸운 계백 장군을 충절의 표본으로 삼았습니다. 특히 조선의 유학자 서거정은 백제가 망할 때까지 절개를 지킨 계백의 행동을 높이 평가하여 ‘나라와 더불어 죽은 사람’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계백장군은 높은 칭송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현재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충청남도 부여 읍내에는 말에 올라 출정하는 장군의 모습을 한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부소산 기슭에는 백제 말기의 3충신인 계백과 성충, 흥수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삼충사’라는 사당이 있습니다. 황산벌 전투가 있었던 논산시 부적면의 충곡서원에는 계백장군의 위패를 모셔 기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