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왕은 백제의 마지막 왕입니다. 그는 무왕의 장남으로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어 '해동증자'라는 칭송을 들었습니다. 641년에 왕위에 오른 그는 무왕의 업적을 이어받아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친인척 4명과 내좌평 기미 등 40여 명을 섬으로 추방하여 귀족의 기세를 꺾어 놓았습니다. 외교적으로도 의자왕은 고구려와 화친 관계를 수립한 후 당과 밀착되어 있는 신라 공격에 나섰습니다. 

642년 의자왕은 친히 군사를 이끌고 신라를 공격하여 미후성 등 40여 성을 빼앗았습니다. 이어 윤충에게 대야성(경상남도 합천)을 치도록 하였습니다. 이때 성주로 있던 김춘추의 사위 김품석을 죽이고 신라의 요충지인 대야성을 빼앗아 신라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또한 645년에는 신라 서쪽의 7개성을 빼앗는 등 의욕적으로 나라를 이끌어 나갔습니다.  이렇게 하여 왕권이 안정되고 신라와의 싸움에서도 여러 번 승리하자, 의자왕은 승리감에 빠져 차츰 교만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재위 15년부터는 술과 여자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나라 일은 뒷전이 되었습니다.  
“상감마마,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밀려오고 있다 합니다. 속히 잔치를 거두시고 중신 회의를 열어 대책을 의논하소서.”
충성스러운 신하 성충은 충심으로 왕에게 충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의자왕은 귀에 거슬린다하여 오히려 성충을 옥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성충은 오로지 나라 걱정에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지내다가 마침내 죽고 말았습니다. 이때 죽기 전에 외적의 침입을 예감한 성충은,
“신이 살펴보니 곧 전쟁이 있을 것입니다. 만일 적이 침입해 오면 육로는 탄현에서 막고,  수로는 기벌포에서 막아 험한 곳에 진을 치고 싸워야 합니다.” 라는 상소를 올린 뒤 숨졌습니다.

그 무렵 백제에서는 나라의 멸망을 예고하는 징조가 여기저기서 나타났습니다. 궁중의 느티나무가 밤마다 울기도 하고, 여우가 떼를 지어 궁중으로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비 오는 어느 날에는 귀신이 나타나서 ‘백제는 망한다. 백제는 망한다.’고 소리치고는 땅 속으로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의자왕이 이상하게 여겨 땅을 파보게 했습니다. 그러자 거북이 한 마리가 나왔는데, 그 등에는 ‘백제는 보름달과 같고 신라는 초승달과 같다’라는 글귀가 있었습니다. 의자왕이 무당을 불러 그 뜻을 물었습니다. 무당이 말하였습니다.
  “보름달은 가득 찬 것이니 점차 기울며 초승달은 가득 차지 않은 것이니 점점 차올라 강성해집니다.”
의자왕은 화가 나서 무당을 죽여 버렸습니다. 또 다른 무당이 불려 왔습니다.
  “보름달은 왕성하다는 뜻이고 초승달은 미약한 것이니, 이는 백제가 왕성해지고 신라는 쇠약해진다는 뜻이옵니다.”
무당은 살아남기 위해 거짓으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의자왕은 기뻐하며, 그에게 상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사치와 향락만을 일삼았습니다.   

때는 660년. 백제의 의자왕이 임금의 자리에 오른 지 2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신라의 태종 무열왕은 김유신을 총사령관으로 삼아 소정방이 거느린 당나라 군사와 연합군을 짜서 백제를 공격하였습니다. 그제서야 위기감을 느낀 의자왕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신하들과 대책을 세우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병법에 뛰어난 자가 없이, 말다툼만 요란하였습니다.
  “아, 이럴 때 성충이 있었더라면 이토록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을 텐데…….”
의자왕은 비로소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며, 성충을 그리워하였습니다.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당나라 군사들이 어느새 백강에 들어섰다는 보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의자왕은 명장 계백장군으로 하여금 황산벌로 나가 신라군과 싸우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계백 장군이 이끄는 5천명의 결사대마저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에 패하게 되자, 백제는 더 이상 싸울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나당 연합군들은 그 기세를 몰아 사비성을 공격하였습니다. 이렇듯 상황이 위급하게 돌아가자 의자왕과 태자 융은 연합군이 사비성을 공격하기 전에 몇 명의 신하들을 데리고 웅진성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나마 부여성을 끝까지 지킨 것은 둘째 왕자 태였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형이 피난길에 오르자 스스로 임금이 되어 연합군과 싸웠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성문을 열고 소정방에게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웅진으로 도망갔던 의자왕과 태자 효는 이 소식을 듣고 사비로 와 항복하니 백제는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의자왕은 백성 76만 호와 37개 고을과 200개의 성을 당·신라의 연합군에게 바침으로써 600년 넘게 버텨온 백제 왕국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그 뒤 의자왕은 태자 효 등과 함께 당나라로 압송되어 그곳에서 병사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