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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품

제목 하얀 눈 내리는 겨울
작성자 이지현(5학년) 작성일 2003-12-31
작성일 2003-12-31
작은 시골마을 구름촌.
특이한 이름으로 주위에 잘 알려져있는
가난하지만 평화로운 마을.
방황하는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아무 기차나 붙잡아 여기저기를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가보았을 것 같은 그런 마을.
어린 철이는 구름촌의 푸른 들판을 뛰어놀고있었다.
누구도 함께하지 않은체 혼자서.
인제 추수가 막 끝나 마을은 잔치분위기였다. 할아버지와 아저씨들은 함께 어울려 술판을 펼치고 있었고 아주머니들은 곳곳에서 수다를 떨고 할머니들은 밖으로 나와 젊은 날을 회상하며 춤을 추고 있었다.  어떤 수염이 더부룩한 아저씨 하나가 슬며시 잔치무리들에서 나와 철이가 놀고있는 들판으로 뛰어들어갔다.
"어! 영철이 아저씨."
철이가 반가운듯 외쳤다.
수염이 잔뜩 얼굴을 감싼 영철 아저씨가 베시시 웃었다. 그러자 철이도 들판에 풀썩 주저 앉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영철이 아저씬 바보.
철이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도 영철아저씨는 그저 웃기만 하며 철이를 번쩍 들어 자기 무릎위에 앉혔다.
"철이 인제 몇살?"
"아저씨 오에다가 일을 더하면 얼마야?"
철이가 되물었다.
"육이지."
"그럼 난 여섯살"
철이가 아저씨 무릎에서 살며시 내려오면서 말했다. 철이는 이번엔 들판에 벌러덩 누웠다. 하늘에는 보름달이 두둥실 떠있었다. 주위에는 빛나는 별들도 환히 찍혀있었다.
"아저씨 저기 별이랑 달이랑 싸우면 누가 이길까?"
철이의 어이없는 질문에 영철아저씨는 그냥 궁금하단 표정을 지으며 철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글쎄다 달이 이기지 않을까? 달이 별보다 더 크니까."
"아냐 아냐!"
철이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별이이겨요 별이. 별이 더 반짝이고 이쁘잖어."
"그래 그래, 철이 말이 맞아."
아저씨가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
"철이는 충청도 사투리 왜 않써?"
"철이는 충청도 사투리가 뭔지 모르니깐."
이번엔 영철아저씨도 들판에 누으며 말했다.
"철인 아저씨 나이 않궁금해?"
"궁금해할거야고."
맞춤법에 전혀 맞지 않는 철이의 대답에 영철 아저씨는 다시한번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는 스물세살이야. 후우......"
영철아저씨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때 철이 어머니가 달려왔다.
"영철아 니는 여서 뭐하는것슈? 철아 일루 와. 오늘 같은 날에넌 베락이 친당께."
그러고 보니 고새 하늘에 구름이 몰려가있었다.
철이는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영철이 아저씨 내일 또 만나?"
"그래그래. 철이 어머니 안녕히 계세요."
"안녕 잘가."
"그래 너도."
영철이 아저씨는 처음 만날때 처럼 부드럽고 상냥하게 베시시 웃었다.
"철아 니 으른 한테 무슨 말버랏이고. 얼라가 으른한텐 높임말을 써야제. 미안하데이 영철학생 인제 밤이니까 집에 영철학생 안들어가는감? 더 놀거면 저기 장기판이 열리고 있다마는...."
"예. 철이 어머니.. 조금있다 가볼게요."
영철이 아저씨는 뒤돌아서서 여전히 느린 팔자걸음으로 조용히 멀어져갔다.
"엄마 엄마 난 왜 사투릴 안써?"
철이가 인제 작은 점처럼 보이는 영철 아저씨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모른다 니 아부지가 그래 가르쳐났으니 글체. 포준말 쓰는게 존긋치 사투리 쓰몬 존게 없당께..."
철이 어머니는 알수없는 말을 철이에게 남기곤 철이의 머리칼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철이야 넌 알고있었니?
널 위해 어머니가 밤마다 표준말 공부를 하고 계셨다는걸.
어린 철이는 엄마와 함께 신나게 노랠 부르며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갔다.
집에 가는 내내 철이 어머니는 말없이 철이를 바라보았다.
철이는 행복해 보였다. 너무 행복해보여서 그냥 바라만 보아도 기분이 좋은 그런 철이. 철이는 이 이야기 저 이야기하며 아무곳에서나 주워들은 이야기를 계속 조잘거렸다.
"엄마 엄마 그제에 순이가 나더러 사탕을 줬어 되게 맛있어서 괜히 아껴먹었어.
그리구 서영이네 집에 다른사람이 이사오고 서영인 서울에 간대.서영이네가 도망다니는 거라고 가희아주머니가 말씀하셨어. 또 융조 할배가 나한테 기엽다고 하면서 까맣고 물컹한 걸 주었는데 먹는거래 그래서 먹었더니 달콤했어."
"그건 쪼꼬렛이라 하는거여. 고라고 서영이네는 도망다니는게 아니니깐 괜히 실때읍는 소리 허지 말어."
벌써 늦가을인지라 많이 쌀쌀했다.
철이 어머니는 철이의 커다란 눈망울을 바라보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철아.영철이 아저씨가 많이 힘든께 너무 괴롭히지말어. 너의 그 행복한 모습을 보면... 영철학생도 많이 힘들어 할껴. 영철학생도 많이 노력했지만..
그럴 수 없었던거여...하...."
철이 어머니는 눈물이 자꾸만 솟아서 더이상 말 할 수 없었다.
철이는 흐느끼는 어머니를 가만가만 바라보았다.
철이는 알 수 없는 슬픔에 사로잡혔다.
뭔가 있는거야...뭔가가....
철이는 그렇게 그렇게 생각했다.
"엄마...."
철이는 집에 도착해 오랫동안 별이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섯살이지만 나이에 비해 너무 알아버린게 많은 철이...
철이 어머니는 그런 철이는 말없이 안아주었다.
철아..여기 엄마가 있잖혀...더이상 너 슬프게 않할껴...더이상은...
너 이대루 행복하게 내버려 둘껴...영철학생두 인제 널 보며 행복해 질껴..
꼭 그럴껴... 우리 모두 행복해야만 할껴.....
그날은 달빛이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철이는 이불위에 가만히 누워서 자신이 겪은 일들을 떠올렸다.
어린 철이가 겪은 여섯살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일들... 철이는 자신이 다 컸다고 생각했다.
"영철아저씨두 내가 지켜줄꺼야."
철이는 옆에 누워있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팔을뻗어 촉촉히 젖어든 엄마의 눈을 닦아주었다. 철이 어머니는 철이의 손길을 느끼고는 잠에서 깨어났다.
"철아...아직 안잤니?"
철이 어머니는 환히 웃으며 어설픈 표준말로 철이에게 말을 건넸다.
철이는 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몰라. 몰라. 나 혼잔 안되요."
"고게 뭔 말이래?"
"핏"
이유없이 철이는 어릿광을 부리기 시작했다. 인제 어른이 됬다고 생각한것도 어디로 간건지. 철이는 아버지가 자신이 어릿광을 부릴때면 항상 안아주곤 했던게 기억난것이였다.
"철아....."
철이 어머니는 겨우 그친 눈물을 다시 흘리며 철이를 끌어안고는 말했다.
"철아.... 엄마가 있잖혀.. 엄마가.. 우리 인제 울지 마유..인제 우리...니두 날 믿고 살구 나도 니 믿구 살구 그래야혀... 엄만 아빠자리두 메울 수 있구..
자신있슈...."
철이 어머니는 흐느낌을 그치지 않았다.
철이는 영문을 모른체 그냥 엄말 따라 울었다.
그냥...그냥 서러웠다. 철이는.....
철이는 새벽이 되도록 엄마 품에 얼굴을 묻고 엄마와 함께 목놓아 울었다.
서러워서...아무런 까닭없이 서러워져서.

다음날 철이 어머니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밝게 철이를 깨웠다.
"철아 일어나야제. 열두시가 넘었구마잉..."
철이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엄마가 힘든걸 숨기고 있구나.. 가슴으론 아파하고 있으면서..일부러 저러는구나....
철이는 착하게 굴려고 애를썼다. 또다시 자기가 영철이 아저씨와 엄마의 보호자란 생각이 든것이다.
"엄마 나 잠시만 영철아저씨집에 갔다올래요."
철이 어머니는 철이가 영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깨닫고는 승낙했다.
"허지먼 퍼뜩 와야혀."
"걱정말아요."
철이는 헉헉 거리며 영철아저씨의 작은 컨테이너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예전에 왔을때 보다 더 지저분하고 더러워진 느낌이었다.
구석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영철 아저씨가 반갑게 웃으며 소리쳤다.
"철이구나!"
"응. 철이 왔어. 아저씨 보려구 왔어."
"정말? 얼른 들어와. 밖이 많이 추워."
"응. 근데 집이 많이 더러워. 아저씨 청소해요."
영철 아저씨는 보일락 말락한 작은 미소를 입가에 띄우더니 말했다.
"오냐 철아. 조금만 있다가. 알겠지?"
철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집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아저씨가 앉아있던 방구석에 작은 책더미들이 있었다.
"와! 영철이 아저씨 저게 뭐야?"
철이는 책더미 사이로 가서 펼쳐보았다.
"글씨가 많아. 아저씨 공부해?"
영철아저씨는 약간은 슬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가봐."
철이는 궁금한게 많은지 그 책에 대해 그리고 공부에 대해서 이것 저것 물어보았다. 그때였다. 영철 아저씨가 철이 앞에선 한번도 보이지 않았던 눈물을 한방울 두방울 떨어뜨리는 것이였다. 영철은 울고 있었다.
"아저씨 아저씨 왜울어? 왜 울어....울지 말어..."
철이가 다가가자 영철은 철이를 갑작스레 끌어안고 더 슬프게 울었다.
"공부가...너무..너무 하고 싶었는데...그랬는데...가난해서 않된대... 가난하면 대학 못 가는거래...부모님이 없어두 않되는거래...그런거래..."
영철은 눈물이 고인채 멍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 혼자 중얼거렸다.
철이는 그런 영철 아저씨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세상엔 슬픈게 참 많구나...그렇구나...
철이는 그렇게만 생각했다.
철이는 울고있는 영철을 어찌할바 몰라 그냥 그대로 영철에게 안겨있었다.
영철의 울먹임이 좀 갈아안자 철이는 영철의 품에서 벗어나 말했다.
"아저씨 울긴 왜 울어.... 대학이 뭔진 몰라두 갈 수 있을거야
그리고 지난 번 처럼 밥 안 챙겨 먹구 그럼 안돼 알았지? 라면이라두 먹어. 그리구 방두 청소하구 공부두 하구.... 그럼 나 갈게..."
영철은 다시 눈물이 나오는 것을 가리려는 듯 얼굴을 푹 숙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그래.."
그리곤 다시 눈물 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올려 애써 미소짓는 영철.
철이는 급히 신빌을 고쳐 신으며 조용히 말했다.
"안녕...약속 지켜!"
"꼭 지킬게..."

철이는 빠른 걸음으로 집에 들어갔다.
"철아 인제 오냐? 아니...옷이 왜 그리 젖었디야! 영철학생이 널 때리디?"
철이는 엄마가 엄마 답지 않은 말을 던지기에 깜짝 놀라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아니! 그냥...."
"그냥 무엇이래냐?"
철이 어머니는 많이 흥분 한 것 같았다.
철이는 처음보는 엄마의 모습에 놀라 계속 같은 말을 중얼 거렸다.
"아냐 아냐 안때렸어. 아니아니 그냥 운것 뿐이야...아니란말이야... 영철 아저씨는 아무것두 않했어...안했어..."
철이 어머니는 점점더 놀라며 계속 철이를 다그쳐 물었다.
"누구냐! 누구! 운것이 누구더냐! 말해라 철아 말해!"
"영철 아저씨가 울었어! 아저씨가 날 안고 웃었어! 그래서 옷 젖었어.. 영철 아저씨는 아무것도 않했어. 안때렸어!"
철이는 숨까지 헐떡거리며 소리쳤다. 그리고 방안에 뛰어들어가 이불로 몸을 돌돌 말고는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철이 어머니는 후회가 되었다.
"철이 저 어린것이 무엇을 알것냐..구리구 영철 학생이 우리 철이를 때릴 이유가 읍지...영철 학생이 많이 속상하것댜...그럴것댜...내가 잘뭇 한거여...그런 거여..."
철이 어머니는 철이가 말고있는 이불을 조심스레 풀어서 철이를 와락 안았다.
"철아 엄마가 미안혀...미안혀...암것두 몰르구 엄마가 화내기만 허구 미안혀..."
철이는 그제서야 일어나 엄마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영철이 아저씨는 착해."
그말은 철이 어머니의 가슴 아픈곳을 정확하게 뚫어버렸다.
철이 어머니는 조용히 일어나 마루에 가서 앉았다.
"영철 학생은 어쩔건지...여기 계속 남아선 일두 못허구 공부두 못헐그구...
여서는 농사꾼 밖에 더되남... 낼 불러 말해봐야제..."
벌써 날이 어슴푸레 하졌다. 철이 어머니는 이것저것을 생각했다.
철이는 잠이 들었는지 희미한 코고는 소리가 방을 저쪽을 채웠다.

철이 어머니는 다음날을 기다리지 못하고 영철을 집으로 불러들였다.
철이 어머니는 중요한 이야기라 긴장이 되었던지 미리 연습해 두었던 표준어 말도 이상하리 만치 꼬여버렸다.
"영철학생 자네 어머니 미숙이 하구 나랑은 잘 아는 사이였다네마는.."
"예.."
"미숙이가 그렇게 빨리 가버릴 줄은 나두 몰렀어. 그해가 우리 철이 아빠가 하늘나라로 간 해와 같지....그해는 내게 너무 큰 상처였다네... 그러던중 난 미숙이가 남긴 종이 쪽지를 봤는디...거기엔 내가 자네를 맡아 돌봐달란 내용이 있었다네..."
영철은 큰 충격을 받았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동안 내가 자네에게 너무 소홀히 했네 미숙이가 남긴 유언을 지켜야 할것을... 그래서 난 지난 몇해동안 돈을 꾸준히 모았네만... 그돈을 자네 서울로 공부하는데 썼음한다네..."
영철은 이번엔 너무 놀라서 작은 비명을 질렀다.
"어떻게 제가...서울로....그돈 전 죽어도 못 받겠습니다. 저 혼자서두 공부는 할 수 있어요."
"내가 어떻게 자네 사정을 몰겠나... 자네 이렇게 자존심만 내세우다간 자네 꿈 반도 못 이루네... 빨리 받게나..."
철이 어머니는 언제 꺼냈는지 하얀 돈 봉투를 내밀었다.
영철은 잠시 말이 없었다.
"...."
"왜 말이 없나...얼른 받지 않고!"
영철은 조용히 돈 봉투를 철이 어머니쪽으로 다시 밀어넣었다.
그러나 철이 어머니는 고집스럽게 영철의 주머니속에 그 봉투를 넣으려 했다.
영철은 할 수 없이 말했다.
"나중에 이돈 모두 갚을테니 두고보세요."
"다시 받으려고 모든 돈이 아니네..."
영철은 조용히 미소지으며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 모두 모르는게 하나 있었다.
어느새 철이가 깨어나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버렸다는것...
철이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영철이 곧 떠날것임을....
영철 아저씨는 그날 이후 일주일이 넘도록 모습을 들어내지 않았다.
철이는 영철 아저씨가 벌써 어디론가 가버린 것은 아닌지 하고 가슴을 졸였다.
어린 철이는 가슴속에서 치솟는 그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영철 아저씨를 보고 싶다. 너무 보고싶다. 만나고 싶다...'
철이는 마침내 자신이 영철을 직접 찾아가기러 결심했다.
철이는 영철을 찾기 위해서 가방을 쌌다. 여태 차곡차곡 모았던 돈도 챙기고 영철 아저씨와 같이 찍었던 사진도 넣고 일기장같이 생긴 공책도 넣었다.그토록 애지중지 아끼던 다섯번째 생일날에 받았던 필기구 세트도 챙겼다.
철이는 엄마가 고모네 집에 갈때 항상 옷을 챙기던 것을 생각해냈다.
철이는 방에 들어가 겨울 잠바 한벌과 긴 윗 셔츠 그리고 긴 바지를 챙겼다. 그리고 혹시나 여름까지 영철 아저씨 찾기가 계속 될것을 걱정하여 짧은 팔 셔츠도 챙겼다. 철이는 내친김에 속옷도 챙겼다. 그리고 엄마가 자주 읽어주던 동화책 한권도 챙겼다.
"자 인제 다 챙긴 것 같다."
철이는 가방을 싸들고 새 운동화를 꺼내 신었다. 엄마가 지금 신는 신발 다 떨어지고 난 다음에 신으라고 한 신발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철이는 엄마가 알아채지 못하게 조심스레 밖으로 나갔다.
철이는 먼저 영철이 그곳에 없으리란 것을 뻔히 알면서도 영철의 컨테이너 집으로 뛰어갔다. 그곳에는 영철이 머물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컨테이너 집 뜰에 항상 놔두던 영철의 라벤더 화분과 낡은 선풍기도 어디론가 다 사라지고 없었다. 철이는 집 문을 열어보려고 애를 썼지만 자물쇠가 걸려 열리지 않았다.
철이는 가희네 집 부터 동네 구멍가게 까지 구름촌을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영철의 자취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철이는 옆 마을인 능원촌까지 가보려고 했지만 벌써 날이 저물어 갈 수 없었다. 철이는 융조할배 집에서 자려고 했다.
집에 돌아가면 엄마가 붙잡아 더이상 못가게 할 것 같았다.
철이는 융조 할배 집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철이야,철이요! 문 문!"
융조 할배가 졸린 눈을 비비며 문을 열었다.
융조 할배는 깜짝 놀랐다.
"아이고! 철이 니 으디 갔던게고! 얼렁 안 들어올라카나!"
경상도 출신의 융조 할배는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를 강하게 쓰면서 철이를 집안으로 들여 보냈다.
"철이 니 엄마가 을마나 찾았는지 알라카나 모를라카나! 니 집에서 울고불고 난리가 난거 니 모르나!"
철이는 융조 할배의 말을 그저 듣고만 있더니 겨우 말을 했다.
"영철 아저씨...어디 있어?"
융조 할배는 기가 막힌 다는듯 말했다.
"니 고라문 영철이 찾으러 여태껏 나댕겼단 말이가! 아이고! 내 정신 좀 보게! 철이 니 여 가만 있그라. 내 고마 니 집에서 니 엄마 델꼬 올테니까네."
철이는 울며 융조 할배를 말렸지만 융조 할배는 막무가네로 철이 어머니를 데리고 왔다. 철이 어머니는 눈물을 많이 흘려 벌게진 눈으로 철이에게 달려가 철이를 힘껏 안았다. 철이 어머니는 또다시 엉엉 울었다.
"철아 철아 내 니 을마나 찾았는데...니 어디 갔던게냐.,, 그런 거냐....
니 또 영철이 찾으러 간거라매 영철이 서울갔다. 니 인제 영철이 몬찾는다 몬찾아! 아이고...아이고...."
철이 어머니는 철이를 집에 데리고 가는 내내 흐느꼈다. 철이도 침묵했다.
철이는 조용히 생각했다.
'영철이 아저씨 서울 갔대요...철이를 나두고 혼자만 서울갔대요...'

[12년 후]

철이는 건장한 청년이 되었다.
인제 거의 할머니가 된 철이 어머니는 건강하게 자란 철이를 흐뭇하게 바라 보았다.
철이는 아침부터 어린애 같이 들떴다.
"오늘 영철 아저씨 오는날이다."
철이는 제일 먼저 마을 광장으로 나가 영철을 기다렸다.
겨울이라 날씨가 많이 추웠다.
정확히 오후12시.
영철의 까만 승용차가 마을로 들어왔다.
차를 자주 못본 구름촌 사람들은 계속 웅성대었다.
드디어 차 문이 열렸다.
덥수룩하던 수염을 깨끗히 깎고 단정하게 머리를 빗은 영철이 차에서 내렸다.
모두들 완전히 변한 영철의 모습에 깜짝놀랐다.
철이는 참을 수 없어서 영철에게 막 달려나갔다. 철이는 영철을 꼭 껴앉았다.
"영철 아저씨 너무 보고싶었어요."
영철은 처음 그날 처럼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철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철이...어른이 다 되었구나.."
"영철 아저씨 되게 부자인가봐요!"
"허허 녀석 거참!"
그때 하늘에서 하얀 눈송이가 구름촌에 하나 둘 내리기 시작했다.
철이는 인제 완전히 어린 철이가 되어버렸다.
"아저씨 눈이 오네요.. 눈이다! 눈!"
"녀석! 완전 어린애구만!"
철이와 영철은 마을광장을 지나 들판에 접어들었다.
둘은 같이 풀밭에 누워 옛날을 회상했다.
행복했던 그시절 들을....

그날은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