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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은둔자들의 수용소
작성자 박남욱[中2] 작성일 2004-03-15
작성일 2004-03-15
                                                은둔자들의 수용소



  그러니까, 때는 전체주의가 만발하던 19세기 말이었다. 내가 기억한 바로는 그 때 내가 살아있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바로 그다. 그냥 조용히 살면서 때가 되면 죽는 게 인간이란 것에 대한 이론을 난 그리 중시하지 않는다.
  꿈을 꾸는가? 꿈은 생물학적으로 보자면 정신과 육체의 회복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단언하기에는 아직 모자란 점이 없잖아 있다. 이건 과학기술의 모자람으로 생기는 현상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것은 좀 더 연구를 감행하기로 학회에서 결과가 났다. 난 오늘도 그 족쇄를 풀 열쇠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증을 안고 잔다.
  족쇄란 무엇인가? 나는 학자지만, 족쇄란 것에 대해 대단히 흠취해 있다. 이것은 사람의 기본적인 바탕이 되는 어떤 무엇인가다. 심리의 깊이를 따져보자면 무한정이지만, 그 존재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현재까지는. 그래서 내가 흥미를 느낀다. 있을 수 없는 것을 좋아한다니, 우습지 않는가? 아니, 웃음이란 것도 이성이 아닌 감성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사실상 아무런 감정도 지니면 안 된다. 그게 옳은 길임에 나는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정신학 교수 중에 내가 아는, 그것도 아주 친한 사람이 하나 있다. 어느 날 내가 그를 찾아갔을 때,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은 자네 머리 속에 있어, 모든 것은. 세상이 머리 속에 있단 말일세.”
  그는 뇌의 모형을 내 코앞에 들이밀며 중추신경이 달려있는 뇌 깊숙히의 말렵을 쿡쿡 찔렀다.
  “바로 여기! 모든 세상이 들어있단 말일세. 과거도, 현재도. 하다못해 미래까지. 그러니까, 이것만 빼면 앞을 보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 있어. 들을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지. 자신이 느끼게 될 미래는 바로 여기 있으니까. 전생? 그건 타인의 정보일 뿐이야. 그 정보를 물려받는 거지. 그게 꿈이란 매개를 통하여 재현되는 거고.”
  말이 될 리 없다. 꿈이란 게 말 그대로 꿈인데 어떻게 그게 구체화 된 것이란 말인가? 게다가 그 정보만 추출하면 미래를 가늠할 수 있다고? 미친 작자다. 나는 화가 나서 재빨리 그 방을 나왔다. 난 애써 부인했다.

  꿈을 꿨다. 그러나 있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이것은 내 친구가 옳지 못한 주장을 폈다는 것을 근거하는 자료가 될 것이다. 말도 안 된다. 그것이 내 미래라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내가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없으니, 그것은 틀림없이 미래일 터인데 그게 가능하다는 것은 세상의 종말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금 상태로 보아 세상의 종말이 올 법 한가? 오류다. 가정상의 오류다.
  그 길로 나는 걸어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너무 버스가 늦는다 싶다. 10분, 20분이 재차 지나가고, 이윽고 30여 분 만에 버스가 온다. 버스 번호가 왠지 불길하다. 444번이라. 그러나 예정된 미래란 있을 수 없으므로, 불행이란 것은 사실상 없는 것이 아닌가? 재빨리 올라탔다. 그러나 주위엔 사람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 버스에 감히 오르려 하지 않는다.
그 버스에 앉은 승객은 나를 포함하여 단 둘 뿐이었다. 그러나 그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광음과 폭발이 내 몸채 휘감은 것은. 무슨 일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로 내 손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내 머리맡에서 퍽 하는 둔탁한 소음이 들렸다. 뭔가 토지기 나올 법 한 냄새가 감미롭게 코를 찌른다. 아프다기보다는 슬프다. 이성의 결합체인 내가 감정을 느끼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슬프다. 슬픔은 있을 수 없지만 내가 슬픔을 느낀다니.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언제인지 모른다. 다만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내 곁에서 빠르게 움직인다. 내 기억된 정보에 따르면 그들은 경찰일 것이다. 그러나 경찰이 왜 내 주변에서 움직이지?
  뭔가 기억이 날 듯 하면서 나지 않는다.
  내가 살아있다. 의식이 있다. 그러므로 힘껏 소리치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말할 수 없다. 손의 감각이 죽어있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데 어떻게 보일까. 아니, 보이는 게 아니라 그냥 느낌일 것이다. 직감으로 나는 그것을 알아냈다.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다.’
  광폭의 아이러니에 휘말려 나는 그만 의식을 놓았다.

  다시 머리를 추스린 때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감각이 없었다. 시각이 없었고, 청각, 촉감이나 후각도 없었다. 다만 뭔가 내 살갗에 닿는 것이 감촉이 좋다는 막연한 느낌만을 가질 뿐이다.
  기분이 좋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냥 느끼는 대로 정보는 내 동요 속에 차분히 정리돼 갔다. 그냥 정보가 오는 대로 자신이 수용한다. 절제할 맘도, 힘도 없었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서서히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득한 먼 옛날의 기억이 조각나서 내게는 빛으로 다가왔고, 그 빛이 앞을 서서히 밝혀준다. 이미 내게 시간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고, 자각하거나 가늠하는 능력은 상실한지 오래였다.
  뭔가 이상한 광경이 보인다. 분홍색의 살빛이 감도는 게 영양액 속에서 떠다닌다. 그게 여러 개가 한 줄이 되어 암실에 줄지어 놓여있었다. 어딘가 많이 본 광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막을 수 없다. 이 상태에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냥 잔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는다. 의식을 잃고 싶지도 않았다만 잃을 이유도 없었고 잃을 매개체도 없었다.
  슬슬 자각할 때가 왔다. 내가 그 뇌의 행렬 중 일부라고. 싫지만도 않다.
  두 남자가 내게 다가온다. 그리고 서로 뭐라 하더니 뭔가를 누른다. 그냥 느낌으로 그것을 봤다. 눈이 없으므로 시각은 죽어있으되, 느낌으로 봤다. 소위 마음의 눈이라 칭하는 것이 이건가.
내 무거운 생각의 상자를 달콤하게 해주는 액체가 그대로 빠짐에 따라 내 살갗은 따끔했다. 그리고 혼란스러웠다. 뭔가 잘못돼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소리치고 싶었다.
  ‘이봐, 제발… 그만 멈춰! 난 살아있다고!’
  왜 나만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는지 난 그 이유를 모른다. 무력했다. 난 그 액체 속에서 무력했다.

  잠에서 깼다. 난 팔다리가 있었고 그 끔찍한 암실에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푹신한 침대에서 내려왔다.
  꿈을 꿨다. 그러나 있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이것은 내 친구가 옳지 못한 주장을 폈다는 것을 근거하는 자료가 될 것이다. 말도 안 된다. 그것이 내 미래라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내가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없으니, 그것은 틀림없이 미래일 터인데 그게 가능하다는 것은 세상의 종말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금 상태로 보아 세상의 종말이 올 법 한가? 오류다. 가정상의 오류다.

  그 친구에게 이 오류를 증명하려고 재빨리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가려 했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에는 거울이 존재한다.
  거울속의 내 자화상이 날 보고 웃는 것을 나는 모른 척 했다. 그 자화상이 입을 연다.
  ‘모든 것은 네가 만들어 낸 세계야.’
  난 애써 부인했다.

  내 머리가 내게 말했다.
  ‘넌 곧 444번 버스를 타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