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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품

제목 '구운몽'을 읽고
작성자 안선경 작성일 2017-11-10
작성일 2017-11-10

  <구운몽>은 양소유가 8명의 여인을 만나 인연을 만들어가는 이야기이다. 성실한 불제였던 성진이 여덟 명의 선녀와 만나고 죄를 입어 인간 세상에 환생한 존재가 양소유이다. 성진은 환생 전에 꿈꿨던 현실적 욕망을 꿈속의 양소유를 통해 무궁하게 누린다. 그 현실적 욕망은 다름 아닌 애정에 대한 욕망이다. 화려한 출세와 그에 따른 부귀영화도 물론 현실적 용망의 하나일 수가 있다. 그러나 양소유의 삶의 궤적을 면밀히 살펴보면 애정 욕구가 핵심에 자리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양소유는 홀로 계신 모친을 남겨두고 먼 과거 길을 떠난다. 당시의 현실을 감안하면 과거는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는 출세의 가장 중요한 관문이다. 그런 만큼 과거를 통과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양소유는 과거 길을 떠나는 순간 오히려 과거를 도외시한다. 양소유는 과거를 낙관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집안이 화려한 것도 아니고 글공부를 열심히 한 과정도 언급되지 않는다. 다만 그가 하늘에서 환생한 존재라는 것이 유일한 방패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천을 유람하며 다니고 진채봉이란 여자를 만나 마음을 주고받는다. 다행스럽게도 이 과거는 난리로 연기된다. 연기된 과거가 일년 후 다시 시행되자 양소유는 두 번째 과거길에 오르는데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도중에 낙양에서 계섬월이란 기생을 만나 정을 통하고 정경패란 여인과 혼인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한다. 정경패를 소개한 사람은 두련사라는 도사이다. 두련사는 정경패의 집안이 대단하기 때문에 일단 과거에만 전념하라고 경고하지만 양소유는 과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예법을 어겨가며 정경패의 얼굴을 보기 위해 애쓴다. 이후 양소유는 과거에 장원 급제하고 정경패의 부친인 정 사도로부터 혼인 제의를 받고 기쁜 마음으로 수락한다.

  양소유는 전 생애를 통해 모두 두 명의 처와 여섯 명의 첩을 거느리게 된다. 두 명의 처는 정경패와 난양공주인 이소화이며, 여섯 명의 첩은 가춘운, 계섬월, 적경홍, 진채봉, 심요연, 백능파 등이다. 조선 시대 소설의 주인공이 많은 처첩을 거느리는 것은 낯설지 않다. 오히려 처첩을 많이 거느리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양소유는 이들 여인들을 만나면서 주위의 시선이나 윤리 규범을 돌아보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여인을 만나면 한순간도 참지 못해 당장 정을 통하려고 드는 성급함을 보여준다. 양소유의 이런 애정 행각으로 인해 <구운몽>은 훌륭한 연애소설 혹은 애정소설의 성격을 지닌다. 현실의 부귀영화를 성취하기 위해 심각한 위기와 고난을 헤쳐나가야 했던 다른 영웅소설의 주인공과 이 양소유의 삶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있다.

  <구운몽>은 중고등학생들뿐만 아니라 초등학생들도 만화로 한 번씩은 접해 보았을법한 조선시대 유명한 대표 소설이다. <구운몽>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일장춘몽그리고 인생무상’. 아마 학생들에게 <구운몽>을 읽고 독서 감상문을 써내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이 단어를 언급할 것이다. ‘세상의 부귀영화가 한 순간의 꿈과 같이 허무한 것임을 느꼈다.’라는 깨달음은 <구운몽>을 읽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느껴야 할 암묵적인 약속(규칙)이 되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 또한 중학교 때 그랬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지금 <구운몽>을 다시 읽으면서 생각한 것은 인생에 대한 허무함이 아니다. 현실적 욕망을 무궁하게 누리며 즐기는 주인공 양소유를 보면서 대리만족 같은 것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 열심히 공부를 하고 열심히 일을 하고 매일매일 고단한 삶을 사는 와중에 이 작품을 읽는 것은 일말의 일탈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이 작품은 도대체 작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썼을까? <구운몽>은 강직한 성격의 대결적 성향을 지닌 작가가 낙망한 상황에서 쓴 작품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꿈처럼 화려하고 편안한 삶을 산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녹여낸 것도 아니고 게으르고 한가한 사람이 지겨운 삶을 소일하고자 만든 작품도 아니다. 강직한 사람이라도 마음속으로는 부드러운 인간관계를 희망하며, 싸움닭처럼 계속 세상과 대결하는 사람도 그 마음 깊은 곳에서는 조화와 평화를 지향할 수 있다. 그리고 촌분을 아끼며 치열하게 삶을 사는 사람이라도 한가로이 거닐며 마냥 게으르고 싶어질 때가 있다. <구운몽>은 작가가 그런 고단한 상황에서 정신적 안식을 위해 쓴 작품이니만큼 소설에서 무엇을 배울까 어떤 교훈이 있을까 찾을 일이 아니다. 나는 이 말에 공감이 되었다. 무엇을 찾고 무엇을 배우기 위해서만 소설을 읽는가? 나는 이 소설을 읽고 인생의 진정한 깨달음을 얻지 못해도 소설을 읽는 과정에서 충분히 작품 속에 몰입하였고 즐거움을 느꼈다. 어떤 사람들은 현대 사회에서 너무 비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하여 비판할 수도 있지만 내게는 비현실적인 내용이라 더욱 더 나의 욕망을 충족시켜줄 수 있었던 것 같다.

  ‘환상적인 공간에서 8명의 부인과 사랑을 나누는 내용이 과연 교육적이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의 내용이 교육적인가, 비교육적인가를 떠나서 이 소설을 읽고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더 초점을 두고 싶다. 내가 예전에는 인생무상을 주제로 독후감을 써냈지만 똑같은 책을 읽고 이제는 책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잠시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은 저자 김만중이 자식의 유배를 걱정할 어머니를 위로하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쓴 것이라 한다. 책 속의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세계가 그의 지친 마음을 달래주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이해가 된다. 독자인 나도 충분히 꿈의 세계로부터 위로와 치유를 받았으니 그의 어머니는 오죽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독자들이 <구운몽>을 읽고 인생무상이니 허무함이니 뻔한 깨달음을 얻으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작품이 주는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독자가 어떻게 작품을 읽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내게 이 작품이 주는 의미는 꿈 같은 놀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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