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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생활문/수필

제목 숲과 생태계의 죽음 그리고 우리의 미래
글쓴이 노윤
얼마전 나는 가족들과 함께 휴가로 내원사 안의 천성산(원효산)계곡에 다녀왔다.
수심이 깊은것도 아니었고 이미 놀고 있는 아이들이 많아서 물에 몇번 들어갔다가 나오기만을 반복했다. 이러고 있자니 시원하기는 했지만 무언가 마음속에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열정이 생겨 앉아있기만은 싫었다. 그래서 4시간정도 계곡에 있었던 끝에 아빠랑 산길을 올라가 보기로 했다. 산을 올라가면서 아빠가 천성산과 내원사의 유래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신라시대에 유학을 가시던 중 해골물 일화로 깨달음을 얻으셨던 원효스님은 수행중 불길한 조짐을 느끼고 기와장에 무언가를 적어 멀리 던지셨다고 한다. 그 순간 당나라의 한 절에서는 많은 승려와 수행자들이 모여있었는데 이때 그 기와장이 날아와 절 마당 앞에 쿵! 하고 떨어졌다고 한다. 그 때 절 안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나와 이 기와장을 보게 되었는데 그들이 절을 나오는 순간 절이 폭삭 가라앉았던 것이다. 그들이 깜짝 놀라며 기와에 적힌 무언가를 읽어보니 해동원효척판구중(海東元曉擲板救衆) 즉 신라의 원효가 널판자를 던져 대중을 구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러자 당나라 스님들은 원효대사가 보통 스님이 아님을 깨닫고 가르침을 얻기 위하여 직접 신라로 찾아갔는데 그들이 도착했을 때 원효스님은 천명이나 되는 이들을 먹여살릴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그들과 수행을 하기 위하여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이 내원사이고 그 산을 천명의 성인을 낳았다 라고 하여 천성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이야기 자체도 신기했지만 원효대사의 높은 덕과 뜻을 다시금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설화 였다. 또한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나라의 산과 그 속의 숲에는 옛 조선들의 기상과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이렇게 산과 그속의 숲은 그 자체로도 이전에 옛 선인들의 살림이자 배움터였으며 지금도 우리에게 수많은 이로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숲은 보존이 되기보다는 현재 계속해서 파괴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빠른 현대화와 동시에 수많은 지역개발이 이루어지면서 하루에도 수많은 숲과 그 생태계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이러한 개발에 대해 내 생각은 이러하지만 사실 나 자신또한 그곳을 이용하고 편리함을 느낄 때가 있다. 하물며 이러한 생각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떠할까? 나 자신도 개발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에는 개발이 필수적이며 어쩔 수 없는 자연 파괴가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꼭 필요한 개발외의 다른 불필요한(필수적인 공공시설을 벗어나 많은 사람들이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는, 즉 소수의 사치만을 위해 건설되는 그러한 개발 예를 들어 골프장과 같은.) 개발이 무모하게 진행되는 것이다. 순간순간의 이익을 생각하기 보다, 보다 넓은 시각으로 우리나라 국토와 그 국민들의 미래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또한 아무리 필수적이라고 생각되는 개발시설이라고 하더라도 개발을 하기 전에 국민들의 충분한 동의와 그 효율성이 높은지 판단해보아야 한다. 4대강 사업과 같이 준비성이 부족하고 투자되는 시간과 비용에 비해 효율성이 많이 떨어지는 개발은 비록 우리에게 필요하기는 하나 말했듯이 국민들의 동의와 보다 꼼꼼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아 일어난 참담한 개발이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4대 강이 엉망이 되었고 이 주변에 살고 있던 수많은 생명체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오염 생명체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볼때에 우리나라 각 지역에 개발되어 있는 여러가지 시설물에 비해 실제로 우리가 필요성을 느끼고 이용하는 시설은 얼마나 될까?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아무리 많아보아야 50%를 넘는 가구가 드물것이다. 이것만 보아도 각 지역에 불필요한 시설이 꽤 있음을 말해준다. 우리의 편리함을 위해 우리의 생존을 위해 숲을 비롯한 수많은 생태계의 희생 되었이며 지금도 그 희생이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에 대해 최대한 미안해하고 감사하는 것이 이성을 가진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명체와 생태에 비해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더욱 발전했기 때문에 더 뛰어나고 우리 때문에 그들이 희생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어서는 절대 안된다고. 오히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존재하지 못했고 지금 우리가 갈망하는 모든 것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능력 소유의 차이를 떠나 그들이 우리보다 훨씬 거대하고 고마운 존재가 아닌가? 인간의 삶은 자연으로 인해 유지되고 있다는 순리를 생각하지 못한채 계속해서 편익만 요구한다면 우리가 희망하는 밝은 미래란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생태계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실현해야 할 수 있는 것에는 무언이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우리의 주권을 조금더 행사하는 것이다. 저번 수필 선거와 우리의 권리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국민이 주권을 가지고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국토보호에 대한 권리를 충분히 행사할 수 있다. 국토는 정부의 단순한 소유가 아닌 우리 모두의 공생체이다. 어떠한 개발이 이루어질때 그 지역 주민들은 보다 꼼꼼히 개발에 대하여 살피고 필수적으로 개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과연 그 개발이 효율성이 뛰어난지 명확하게 탐색할 필요가 있다. 이렇가 우리가 국민의 주권 행사와 우리의 공생체이자 은인을 보호하기 위함을 목적으로 무모한 개발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생태계의 파괴를 막고자 노력한다면 더이상 그들의 무의미한 죽음은 생기지 않을 것이고 옛 조상들의 영혼이 담긴 맑은 숲과 그 수호신들인 생명체들 그리고 우리 모두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이며 미래 또한 실제 우리의 희망에 조금 더 가까지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