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학원 갈 겸 산책도 할 겸 방학인데도 집을 나선다.
접이식 우산을 들고 나간다. 우산이 '촤르륵' 하면서 펴진다.
언제부터였을까. 우산을 펴는 것이 좋아진다. 비는 싫은데 우산은 좋다.
비가 내리면 식물도 살고 먼지도 씻겨 내려가는데 한번씩 내려앉는 내 마음의 먼지는 씻겨 나가지 않기 때문에 괜히 샘이 난다. 내 마음 속의 먼지는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답답하고 짜증날 때 쌓인다.
하지만 비오는 날, 우산을 펴는 소리를 들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는다. 비를 맞지 않는다는 마음에 안심해서일까.
집을 나서 골목길을 걷다 보니 얼마 전 까지는 눈에 띄지 않던 꽃 한 송이가 보인다. 딱딱한 아스팔트 위에 꽃 한송이. 신기해서 내려다보다가 차 경적 소리에 얼른 비켜선다. 차가 지나간 뒤 당당하게 피어있는 꽃 한 송이를 보니 괜히 엄숙해진다. 집을 나설 때만 해도 비가 싫었던 나에게 '부끄러운 줄 알아!' 하는 마음이 든다. 이렇게 단단하고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살아남은 꽃 한송이를 보니 비는 소중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는 사이 신호등 불이 켜진다. 꽃 한송이가 마음 속에 그려지고 표정이 밝아진다.
빗방울이 얇아지기 시작한다. 봄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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