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리 고개 아래 마을에 한 처녀가 살고 있었다. 이 처녀는 다른 마을에 사는 도령과 함께 장래를 약속한 사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도령은 처녀를 뒤로하고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떠나게 되었다. 한양으로 떠나던 날, 도령은 처녀에게
  "과거에 급제하고 꼭 돌아오겠소.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돌아올 날을 기다려 주오."
라고 말하며 그러겠노란 처녀의 답을 받은 후  발걸음을 옮겼다.

그 이후부터 처녀는 날이 저물면 도련님이 넘어 간 고개에에 올라 산굽이를 돌아 흐르는 강줄기를 바라보며 도련님이 올 날만 기다렸다. 그러나, 장원급제를 하고 돌아오겠다던 도령은 소식이 없고 어느덧 세월만이 흘러 다음 해로 흐르게 되었다.

도령이 한양으로 떠난 다음 맞이한 첫봄에 처녀는 자기 키와 같은 소나무를 골라 버선목을 매달아 놓았다. 그렇게 기다리기 십 년. 소나무는 겨울에도 흰눈을 이고 키가 크고 줄기는 굵어졌으나 도련님을 기다리는 처녀의 일편단심은 변함이 없었다.

어느 날 처녀는 빛이 낡은 도련님의 꽃 버선을 새로 만들어 소나무에 매달려고 나무에 올라갔다가 발을 헛딛는 바람에 그만 절벽으로 굴러 강물에 빠지고 말았다. 해가 지는 산굽이의 물에 빠진 그녀를 구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이내 처녀는 조용히 숨을 거두고 말았다.

처녀가 죽던 날, 도련님은 장원급제하여 돌아왔다. 장원급제 하였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려고 달려온 도령은 처녀가 죽었다는 말에 가슴이 무너졌다. 그는 처녀가 죽은 자리에 쫓아가 보았으나 그 자리에는 초록색 물새가 처녀의 넋인 양 슬피 울뿐이었다.

도령은 자기를 기다리다 숨을거둔 처녀를 위해 벼슬을 버리기로 결심했다. 그는 양지바른 곳에 처녀를 묻고 그 옆에 초가를 짓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이 때부터 이 일대는 해마다 풍년이 들었고 마을 사람들은 이 동리 이름을 ‘풍산리’라 짓고, 처녀의 명복을 빌기 위해 그녀가 버선목을 매달았던 소나무를 성황으로 모시고 이 고개 이름을 ‘처녀고개’ 라고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