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좌도 병마절도사영(예전의 군대를 부르는 말)은 본래 토을마리라는 곳에 있었다. 절도사영을 옮길 적지를 조사하였으나 제일 적합하다고 생각된 곳이 기박산성 자리였다.

기박산성은 만리성의 맨 동쪽 끝으로 동대산의 한 정점이 되는 곳이며 동쪽으로는 산의 경사가 완만하여 적들이 양남면의 수념 등지에서 산을 넘어오기 용이한 곳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이 자리에 성터를 잡고 성을 쌓을 자리에는 그 둘레에 붉은 기를 꽂아 표시하는 한편 동, 서, 남, 북의 네 개 문을 내는 자리도 따로 표시하였다.

그리하여 장군의 지휘 하에 있는 군졸은 물론 가까운 고을에 영을 내려 장정들을 동원하는 일대 역사가 시작되었다. 가까운 산천에서 돌을 모아 나르는가 하면 날라 온 돌을 다듬는 석공들의 망치소리가 온 산천에 요란하게 메아리치며 성은 한 단 한 단 쌓아 올려갔다.

이러한 때 별안간 동해 쪽에서 광풍이 거세게 몰아닥치어 성터를 휘몰아쳤다. 성을 쌓고 있던 장정들도 다 일손을 놓고 바람을 피하고 있었고 성 둘레를 표시하던 기들도 다 넘어졌다.  그 가운데 기 하나가 회오리 바람을 타고 천공에 높이 떠 남쪽으로 날아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성을 쌓고 있던 사람들이 날아 가는 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점점 하늘로 떠올라 남쪽으로 갈 뿐 떨어지지 않았다.

이 때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장군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한 군졸을 시켜 말을 타고 그 기가 떠가는 곳을 뒤쫓게 하였다. 기를 쫓아 따라가던 군졸이 동천 가까이 오니 그 기는 별암산 위를 한바퀴 도는 듯 하더니 떨어지고 말았다. 뒤따르던 군졸이 말을 달려 산 위에 올라 기가 떨어진 곳을 보니 마치 소쿠리처럼 생긴 분지에 남쪽으로만 열려있는 지형이었다. 기가 떨어진 자리를 확인하고 돌아온 군졸은 이 일을 장군에게 소상히 보고 하였다. 장군이 축성공사를 잠시 멈추게 하고 참모들을 거느리고 기가 떨어진 곳을 찾아 가 보니 과연 성터가 될만한 곳이었으며 또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일진의 광풍이 몰아쳐 기를 이곳으로 날려 보낸 것은 아마도 신(神)의 가르침으로 이 곳에 성터를 잡으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이렇게 일어난 일련의 일들을 조정에 보고하여 성을 울산으로 옮겼으니 이 성터는 거마곡(巨磨谷)이라 하는 곳이며 때는 태종 17년(1417) 2월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