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말기의 훌륭한 학자이자, 대 문장가였던 최치원은 헌안왕 1년(857) 경주 사량부에서 태어났습니다. 6두품 출신이었던 그의 집안은 신라 유교를 대표할 만한 많은 학자들을 내놓았습니다. 최치원 역시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해, 10살에 이미 '사서삼경'을 읽을 정도로 재주가 뛰어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총명하였던 최치원은 12살인 경문왕 8년(868)에, 당시 세계 문화의 중심지였던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당나라로 떠나는 어린 아들 최치원에게 말하였습니다.
  “당나라에 가서 10년 안에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다면 어디 가서 내 아들이라고 하지 말거라. 나 역시 아들이 있다 하지 않겠다. 가서 부지런히 공부하거라. 과거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노력해야 한다!”

당나라에 도착한 최치원은 아버지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유학간지 6년 만인 18살에 빈공과(당나라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과거시험)에 응시하여, 단번에 합격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안 당나라 사람들은 모두 놀랐습니다. 
  “우리도 합격하기 어려운 과거에 신라 소년이 합격하다니, 정말 대단해.”
  “최치원은 과연 천재구나!”
과거에 합격한 최치원은 선주 율수현을 다스리는 관리가 되었습니다.

이 무렵 당나라에서는 황하 유역에 큰 홍수가 나서 많은 사람들이 생명과 재산을 잃었습니다. 그러자 민심은 어지럽고 도적 떼가 들끓었습니다. 결국 산둥성에서 농민인 황소가 반란을 일으켜 중국 대륙은 전쟁에 휘말리고 말았습니다. 반란의 무리들이 당나라 서울인 장안으로까지 침입하자 당나라 왕 희종은 고변 장군을 불러 반란군을 토벌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이 때 고변은 문서를 다루는 사무관으로 최치원을 임명하여 황소에게 보낼 경고장을 쓰게 했습니다.

최치원이 보낸 <토황소 격문>의 힘 있고 구구절절 옳은 말에, 반란군의 두목 황소는 글을  읽다가 깜짝 놀라 침상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물러가지 않으면 큰 변을 당하겠다.”
황소는 군사를 거두어 후퇴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변의 군사들은 도망가는 황소 일당을 모두 토벌하여, 황소의 난을 진압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희종은
  “황소를 토벌한 것은 고변의 칼이 아니라 최치원의 글이었다.”
 라고 말하고는 최치원에게 궁궐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표시인 금실로 수놓은 주머니를 상으로 주었습니다.

그는 28살에 조국 신라로 돌아갈 뜻을 굳히고 885년 봄에 귀국했습니다. 신라의 헌강왕은 그가 돌아온 것을 크게 기뻐하면서 그에게 한림학사(왕실 문서 작성 업무를 담당함)의 벼슬을 주고 잘 대접하였습니다. 당시 신라 사회는 갈수록 기울어져 갔습니다.

진성여왕 8년에 최치원은 신라 사회를 새로이 일으키기 위해, 당나라의 과거 제도를 받아들여 인재를 등용하자는 등의 ‘시무 10조’와 같은 대안 책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제안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정치에 뜻을 잃은 최치원은 벼슬을 내놓고, 가야산 해인사로 들어간 뒤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최치원은 후세에 큰 영향을 미친 주옥같은 시와 글도 많이 남겼습니다. 당나라에서 한 고을을 다스릴 때 지은 글들을 모아 ‘중산복궤집’ 5권으로 엮었고, 고변의 종사관으로 있으면서 4년 동안 쓴 글들을 모아 ‘계원필경’ 20권을 편찬하였습니다. 특히 ‘계원필경’은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문집으로 한문학을 열어준 훌륭한 작품들이 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