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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할아버지
작성자 배윤혜-초등 6학년 작성일 2003-11-23
작성일 2003-11-23
할아버지
(초등 6학년)
영안실을 나오면서 나는 계속 울었다. 할아버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람이 한 명 죽는다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일인 줄 몰랐다.

그제, 내 외고 합격으로 온 가족이 가을 여행을 떠났다. 그리 먼 곳은 아닌 청주 할아버지 댁이었다. 청주 신성동에 가려면 대전에서 한 시간만 달리면 된다. 굽이굽이 산모룽이를 넘어야 가는 길은 아니다. 단풍이며 벚꽃이 계절마다 흐드러지는 곳도 아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할아버지 댁에 가는 것을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흐뭇한 웃음만을 차 안 가득 띄우고 있었다.
신성동에 도착하자마자 노인정 앞에서 기다리시는 할아버지 모습이 보였다. 환한 웃음이 가득하신 얼굴이었다.
"어이구, 우리 손자 왔니?"
하시던 할아버지.
"얘, 동욱아, 네가 그 어렵다는 외국어고등학교에 합격을 했다면서?"
장기를 두시던 모과나무집 할아버지가 거들자 할아버지께서는,
"그럼, 그럼. 얘가 누구 손잔데. 얼마나 공부를 잘 한다고."
하고 맞장구를 치곤 하셨다.
할아버지 댁에 온 지 하루가 지난 일요일이었다.
"동욱아, 너, 고등학교 교복은 이 할애비가 사 주마."
갑자기 할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니 헬멧을 하나 꺼내 오토바이 위에 오르셨다. 머뭇거리는 내게 할아버지는 꼬깃꼬깃 모아 두었던 용돈을 내보이시며
나를 손짓하셨다.
헬멧이 하나밖에 없었기에 할아버지께서는 헬멧을 내 머리 위에 씌워 주셨다.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받아쓴 나는 할아버지의 넓은 등을 안고 오토바이에 따라 올랐고, 오토바이는 시내 양복점으로 출발했다.
양복점이 바로 앞에 보이는 네거리였다. 우회전을 하기 전, 신호가 바뀜에 따라 할아버지께서 멈추어 섰는데, 그 때 갑자기 "끼익-!"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중국집 철가방과 오토바이가 흐릿하게 눈에 들어오는가 싶더니 그대로 오토바이가 넘어졌다. 중국집 배달원이 우리 오토바이의 옆구리를 그대로 달려든 것이었다. 정신이 희미해지면서도 나는 할아버지가 걱정되었다. 헬멧이 땅에 거세게 부딪치는듯 싶었다.
병원이었다. 눈을 떴는데 옆에 부모님께서 눈물을 훔치고 계셨다.
"하,할아버진?"
"동욱아, 일어났니?"
"할아버지는? 응? 다치신 거 아니지? 괜찮지? 집에 먼저 가 계신 거지?"
할아버지께서 손자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절대 그냥 집에 가실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자꾸자꾸 물었다. 부모님은 고개를 숙이시며 눈물을 떨구셨고, 나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먼저...먼저 가 계신 거잖아요. 집에 먼저 가 계신 거잖아요!"
그대로 눈앞이 흐릿해지면서 나는 다시 침대 위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날 오후, 나는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다. 땅에 헬멧이 거세게 부딪치긴 했지만 그나마 헬멧 덕분에 머리 살갗에 가벼운 타박상만 입었다는 게 다행이라고 했다. 할아버지께서는 결국 돌아가시고 말았다. 하나밖에 없는 헬멧을 손자에게 씌워 주시고, 당신은 그만 돌아가시고 만 것이다. 흰 천으로 할아버지의 찡그려진 이마를 덮는 동안, 나는 할아버지의 차가운 손을 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