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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설악산을 다녀와서
작성자 김영우 작성일 2003-01-22
작성일 2003-01-22
금요일 저녁,
갑자기 아빠가 설악산 여행을 가자고 말씀하셨다.
나는 어리둥절한 채, 좋다 싫다는 표현을 할 틈도 없이 엄마아빠 손에 이끌려 집을 나섰다. 잠시 후 기차역 휴게실에서 엄마한테 자세한 얘길 듣고서야, 이 게 미리 계획된 여행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럼 그렇지, 아빠가 느닷없이 여행을 가자고 하실 분이 아니지.’
엄마 말씀을 듣고 보니, 이번 여행은 나에게 굉장히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이번 여행은 순전히 날 위한 여행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얘기를 하자면 솔직히 부끄럽기도 하지만, 이번 여행의 목적을 밝히기 위해선 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사실 난, 방학을 하자마자 고래(?)를 잡았다. 아빠 말씀으론 진정한 남자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하는데, 난 그 말씀의 깊은 뜻까진 모른다. 하지만 어차피 한 번 거쳐야할 관문이라면 남자답게 하기로 마음먹고, 이번 겨울방학을 택해서 수술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부모님께선 내 고래 잡은 수술 자국이 다 아물면, 그 기념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는 것이다. 아빠 말씀으론 평생에 한 번 있는 일이니 기념할 만하다고 하시지만, 글쎄... 그게 그토록 대단한 건가? 후훗, 좀 우습다.
수원으로 가는 야간 열차에서 참 많이도 재잘거렸나 보다.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가 “너, 말 참 잘한다. 그런데 아저씨 좀 자면 안 될까?”라고 말씀하셔서 창피한 마음에 입을 꼭 다물고 가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수원역에 내리니 작은 아빠와 민우, 건우 형, 그리고 하리 누나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할머니께서 작은댁에 계시기 때문에 식구들이 모두 작은 댁으로 모였다. 오랜만에 시끌벅적 재미있게 얘기를 나누고 어른들과 아이들은 끼리끼리 모여 놀았다.

토요일 오후(1월 12일)
수원 터미널에서 강릉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설악산 앞에까지 곧바로 가는 차를 타려면 서울로 가야하기 때문에 일단 강릉으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아빠 말씀이 설악산 구경을 하려면 어차피 내일 해야하는데, 설악산 근처는 숙박료가 비싸니까 강릉에서 자고 내일 아침 일찍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대관령 고갯길이 멋이 있을 거라고 해서 차창 밖으로 구경을 하려고 했으나,  날이 이미 저물어서 어둔 탓에 밖이 잘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아빠한테 다음부턴 낮에 차를 탔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어딜 다니면 매 번 밤에만 차를 타는 바람에 창 밖 구경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앞으론 그렇게 하마!”라고 말씀하시며 엄마와 함께 크게 웃으셨다. 내 앞자리에 앉은 꼬맹이는 영문도 모르며 같이 따라 웃었다.

일요일 아침(1월 13일)
일찍 일어났다. 서둘러 움직였는데도 설악산 입구에 도착하니 거의 11시가 다 되었다. 신흥사에 들러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구경을 하고, 부처님께 절도 드렸다. 그런데 신흥사 입구에 있는 다리가 신기했다. 나무를 잘라서 짜 맞추어 만든 다리였다. 콘크리트나 돌로 된 다리는 많이 보았지만 목조다리는 처음이었다. 아주 근사했다.
도토리묵, 더덕구이, 산채나물로 점심을 먹고 권금성에 올라가기 위해서 케이블카를 탔다. 난 케이블카는 처음 타봤는데, 차처럼 생긴 것이 외줄에 매달려서 한 대가 올라가면 다른 한 대는 산꼭대기에서 내려온다. 사람도 많이 타서 꽤 무거울 텐데 줄 하나로 어떻게 버티나? 참 신기했다.
권금성에서 좀 가파른 길을 타고 산꼭대기에 오르니 경치가 대단했다. 내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산밑에 있을 때는 여기저기 눈이 녹아서 보기가 별로 안 좋았는데, 산꼭대기에서 본 경치는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기암절벽 위에 모자를 쓴 듯이 덮여 있는 흰 눈, 여기저기 송곳처럼 솟아 오른 바위들, 절벽 밑을 내려다보니 정신이 어질어질하여 내가 아득한 저 밑으로 떨어져 내릴 것만 같았다. 설악산은 단풍이 드는 가을이 가장 절경이라고 하지만, 난 가을단풍경치는 못 봐서 모르겠고 지금 본 겨울경치 만이라도 최고였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속초에 도착하니 날이 어두워졌다. 지금 서울에 가려면 또 밤차를 타야 되고, 서울에서 광주까지......? 어휴~!
그런데, 이게 웬 일? 아빠가 오늘은 속초에서 자고 내일 가자고 하신다. 나랑 엄마가 너무 피곤해 보여서 일정을 하루 연기한다는 것이다.
“야호, 신난다! 아빠, 감사합니다.”

월요일(1월 14일)
늦잠을 잤다. 우리 가족 모두 피곤했나 보다. 아침 겸 점심은 속초항 근처에서 먹고, 방파제 구경을 했다. 방파제 아래쪽을 보니 집채만한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서로 끌어안고 맞물려 있었다. 방파제를 때리는 파도의 힘이 얼마나 세기에 저렇게 거대한 구조물로 막아 놓았을까? 그렇게 해놓아도 태풍이 몰려오면 제방이 무너져 내리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자연의 위대한 그 힘을 가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우리는 겨울바다의 세찬 바람과 맞서 싸우며 방파제 끝까지 걸어가서, 작은 등대도 구경했다.
서울로 올 때엔 갈 때와 다른 길인 한계령으로 왔다. 고갯길이 하도 구불구불하여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내 머리까지 빙글빙글 돌 지경이었다. 그러나 눈 덮인 한계령의 경치는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내게 깊은 감동을 안겨줬다. 차창 밖의 경치를 구경하라고 일부러 일정을 하루 늦춰준 부모님께 다시 한 번 감사함을 느꼈다.
서울역에서 광주행 기차에 몸을 실으니, ‘이젠 정말 집에 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집에 간다는 안도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차창 밖 구경을 많이 하겠다고 벼르던 내 의지와는 달리, 기차가 출발하자마자 금세 잠이 들어 버렸다.
이번 여행은 바쁜 일정에다가 겨울여행이라 힘이 들기도 했지만, 할머니를 비롯하여 여러 친척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우리 가족이 행복한 외출을 했다는 점에서도, 결코 지울 수 없는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되었다.

(작년 겨울방학 때 설악산에 다녀와서 써 놓았던 기행문을 제가 다시 정리한 글입니다. 그러니 날짜와 요일이 맞지 않더라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