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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광해군, 그는 현군인가? 폭군인가?
작성자 김민준{중2} 작성일 2004-02-15
작성일 2004-02-15
요즘 광해군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한다. 옛날에는 광해군이 폭군이었단 말이 많았지만 요즘은 현군이란 얘기가 많이 나온다. 왜 그들은 광해군이 현군이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광해군이 왕으로 지내던 시대는 조선시대였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막 끝난시기로 민심은 불안정했고, 유교적인 정신도 매우 강했던 시기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광해군은 뛰어난 외교정책을 펼쳤다. 그 예로 일단 명나라와 청나라의 전쟁을 들수 있다. 명나라는 지는 해였지만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주었던 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청나라에 지원군을 보내는 것은 유교정신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명나라에 지원군을 보내자면 청나라는 뜨는 해였기 때문에 청을 건드리는 일은 무모한 일이었다. 조선은 이런 난처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광해군의 뛰어난 외교정책으로 무사히 그 상황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광해군은 계속 중립을 지켜나갔다. 그러나 명나라가 계속 지원군을 요구해왔고 왜란 때 명나라가 조선을 도와줬던 일도 있는터라 쉽게 거부하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 때 광해군은 강홍립을 불러 밀지를 내린다. 일단 명나라에 10000명의 군사를 내리나 청나라와 전쟁을 치루게 된다면 바로 항복하고 조선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하라고 지시를 내린다. 이에 청나라는 조선을 이해하고 화평을 가지게 된다. 위와 같이 명나라와 청나라의 전쟁사이에서 광해군은 뛰어난 외교정책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무사히 빠져나왔다.

그리고 또 다른 것을 예로 들자면 후금세력에 대한 대비능력이다. 후금의 압박이 들어오자 위협을 느낀 광해군은 대포를 주조하고 평안감사를 임명하여 국방강화에 힘을 썼다. 그 후에 후금이 들어오자 명나라와 연합하여 후금에 저항했다. 이러한 외교정책 또한 광해군의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파는 이렇게 뛰어난 외교정책은 쳐다볼 생각조차 하지않고 광해군이 자신의 형을 죽인 사건과 그 외의 몇몇사건으로 광해군을 폭군이라고 판단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광해군이 임해군을 죽인 일로 광해군을 폭군으로 몰아버린다면 세조가 고관이었던 김종서나 황보인을 철퇴로 내려찍어 죽인일과 그의 조카인 단종에게 사약을 내린일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세조의 이런 행위를 보고 권력을 잡아 백성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였으므로 그의 행위가 잘한것이라고 판단하는 사람도 많다. 광해군의 행위도 자신이 권력을 잡아 좋은 정책을 펼쳐 백성들에게 이익이 되었으므로 세조의 행위나 광해군의 행위는 같다. 광해군에게 권력이 있었으므로 중립정책이나 후금에 저항 할 수 있었으니 광해군의 그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무조건적으로 판단 할 수 없다.

그리고 광해군에 반대되는 정책을 펼치므로써 청에게 무릎을 끓는왕이 있는데 그가 바로 인조이다. 광해군의 권력이 약해지자 인조반정이 일어난다. 그의 반정은 성공하고 인조가 왕위에 오르는데 그는 명과 손을 잡는다. 그 후 청과 우리나라의 전쟁이 시작되는데 청의 2차침입 때 인조는 청에 항복하고 청의왕에게 3번을 절하고 9번이나 머리를 숙인다. 이런 예들을 봄으로써 광해군이 뛰어난 정책을 펼친 현군이라는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