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마당 > 글쓰기마당 > 동화/소설

동화/소설

제목 마음의 문- 누구세요
글쓴이 김률희
요즘 부쩍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우리 가족 중에 이 소리는 나밖에 듣지 못한다. 문을 두드리는 게 아니라 내 방에서만 나는 소리였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오빠까지 끌고 내 방에서 두드리는 이상한 소리가 난다고 따졌다. 몇 시간을 기다려도 소리가 나지 않자 혀를 끌끌 차며 가버렸다. 이 소리는 나한테만 나는 게 틀림없다. 처음에는 옆집에서 나는 소리인 줄 알고 신경 쓰지 않다가 내 방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옆집이 내는 소리가 아니란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대체 내 방 어디에서 나는 소리일까.
잠 잘 때에도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꿈 속에서 어둠이 나를 갇힌 채 잠옷을 입은 맨 발의 소녀가 서 있었다.몇 발자국 걸으면 나무로 된 낡은 문 앞에 서게 되는데 누군가 애원하듯이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문 두드린 사람은 말이 없었다. 열어보면 아무도 없거나 어두워서 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나를 흘겨 한 번 보더니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돌아서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사람을 잘못봐서 가버린 건지 들어가기 싫어져서 가버린 건지 모르겠다. 가버린 사람 뒤로 다른 손님들도 와서 문을 두드렸다. 열어주려다 손을 멈칫했다. 아까처럼 내 모습을 보고 아무렇지도 않게 가버릴 것 같았다. 나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무시 당하기 싫고 기대하고 기다리다 문을 열어줬다가 실망한다거나 상대방의 살망하는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아 문을 열어주지 않기로 했다. 두드리는 소리를 듣기만 하고 열어주지 않으니 사람들은 지쳐 포기하고 더 이상 문을 두드리지 않게 되었다. 두드리는 소리의 환청을 듣지 않게 되어 불안했던 마음도 차츰 가라앉았고 이런 꿈을 꾸는 일도 없게 되자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푹 잘 자고 학교에 갔다. 교실에 들어가 의자에 앉는데 우리 반인 선하가 아는 척했다.
"희미야! 같이 점심 안 먹을래? 친구들도 너 되게 반가워 할 거야."
"아니야, 점심 같이 먹기로 한 애가 있어서."
4교시 마치고 쉬는시간 종이 울릴 때 선하가 잠시 날 쳐다보며 손 흔들어 인사하고 친구들과 모여 복도로 나갔다.
작년에도 같은 반이었는데 올해도 같은 방이 된 애다. 3월 초부터 나한테 아는 척하고 다닌다. 선하가 왜 아는 척하는지는 몰랐지만 꼴사나웠다.
학교가 끝나고 내 뒤로 따라오는 선하가 신경쓰였는데 선하가 같이 가자면서 달라붙었다. 신경쓰이는 게 싫었는데 하필 같은 방향이라 오랫동안 같이 걷는 수밖에 없었다.
집에 오자마자 피곤해 침대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누워서 쉬기만 한다는 게 그만 눈이 감기고 말았나 보다. 눈을 감는데 들리지 않았던 문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나기 시작했다. 꿈인데도 깨어나지 않고 귀를 막고 딴 생각을 해도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군지 궁금했지만 문을 열어주기 싫었다. 저번처럼 포기하고 갈 것이지 문을 열어주지 않을수록 더 세게 두드렸다. 꼭 열어주기를 바라는 긋이. 누가 이기나 해보자. 두디리는 네가 더 손만 아플 뿐이지.
"희미야."
잘못 들었나. 누가 내 이름 부르는 소리가 들렸는데."
희미야, 나야. 선하."
이럴 순 없다. 아까 같이 집에 갔던 선하가 내 꿈에 나오다니. 아무리 꿈이라도 선하와 얘기하긴 싫다.
"네가 나한테 경계심 품고 멀리 한다는 거 알고 있었어. 내가 싫은 것도 이해해. 작년에 왕따 당했을 때 괴롭힘 당하는 널 구해주지 못하고 보기만 해서 미안해. 많이 무서웠어. 제정신이 아니었니봐."
"알긴 아네. 알면 여기에 오지 말아야 할 것 아냐?!"
"올 수 밖에 없었어. 그 땐 올 수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오고 싶어서 왔어. 널 도와주지 않고 발로 짖밟히는 널 보기만 한 후로 잊혀지지 않았어. 그래서 선생님께 이를 수 밖에 없었어. 네가 어떻게 당했는지 일일이 하나도 빠짐 없이 설명했고 증거 사진도 보여드렸어. 이게 널 도와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으니까."
이유는 모른 채 일진과 그 밑 애들이 어느 날인가 갑자기 나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애가 되었다. 돈 뜯지 않고 짓밟아 괴롭히는 일도 창피 당하는 일도 없었다. 담임 선생님이 내가 왕따란 사실과 누가 날 괴롭혔는지 알게 되자 당연히 먼저 날 의심해 몇 번 만나 날 협박하거나 내가 아니면 딴 애 데려오라는 식으로 뺨을 맞았지만 예전처럼 심하게 대하진 않았다. 내가 아니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누가 일렀는지 수소문했지만 모른 채 넘어가버렸다. 날 괴롭히던 애들 중 딴 학교로 전학 간 애들도 있고 심한 애들은 증계를 받아 자퇴를 시켰다.
이제서야 자기가 그랬다고 밝힐 줄이야. 내가 학교생활을 보내게 된 이후에 선하는 평소에 사귀던 무리와 떨어져 혼자 지내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올해가 되서 새 친구를 사겨 새 무리들과 어울려 다니긴 한다.
"미안해. 용서해주면 안될까? 너랑 친해지고 싶었는데 어떻게 친해져야 할 지 몰랐어. 하지만 이젠 알겠어. 네가 문 열어줄 때까지 기다릴게. 다가갈 수 있게 두드리기도 하고."
문을 계속 두드리고 포기하지 않던 애가 선하였구나. 선하의 지금 모습대로라면 친하게 지내도 되지 않을까. 괴롭힘 당할 때 보고만 있었던 건 알고 있었지만 어찌할 바를 몰랐을 거다. 자기가 맞은 것처럼 아파하며 도와주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던 게 내 눈에 띄었으니까.
선하라면 나랑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어 봐야지. 선하를 믿어 보는 수밖에.
열지 않던 갇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열고 외쳤다.
"선하야! 우리 잘 지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