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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소설

제목 케이티의 전쟁 - 4
글쓴이 최효서
그들은 걷다가 언덕 하나를 넘었다. 케이티는 데이브의 키가 자기보다 크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덤불 속을 맨발로 걷고 있었다. 어스름한 빛 속에서 그의 발바닥에 푸른 불빛같은 것이 보였다.
언덕 꼭대기에 이르자 데이브가 걸음을 멈췄다. 케이티는 잠깐 쉴 수 있어서 좋았다. 데이브가 워낙 전투개미 같은 속도로 빠르게 언덕을 오르는 바람에 따라가기가 쉽지않았다.케이티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호수는 검은 안개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밤이 와서 모든 그림자를 덮은 뒤였다. 데이브가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 아름다운 경치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다시 길을 걸었다. 15분 쯤 더 걸었을 때였다.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와 주변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침에 마신 당근 주스 외엔 아무것도 먹지 못한 토비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동굴 안에 잘 다듬어진 둥근 통로가 보였고, 그곳에서 하얀 연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데이브가 문 쪽으로 가서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잠시 후에 그가 다시 문에 나타나서 소리쳤다. "들어오지 않을래?" 그녀는 비스듬한 경사의 통로를 올라갔다. 그곳은 창문도 굴뚝도없이 한가운데 작은 난로 하나만 있는 크고 둥근 방이었다.몇 군데에 커다란 사각형의 커튼이 내려져 있었다. 화사한 색깔의 알록달록한 커튼이 가장 먼저 케이티의 눈길을 끌었다. 그래서 잠시 후에야 불가에 앉아 미소짓고 있는 젊은 여인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안녕!"
"어..저..안녕하세요?"
"배고프지?"
"조금요."
케이티는 거짓말을 했다. 사실은 죽을 만큼 배가 고팠다. 엄마가 해주시던 밀빵에 수프를 찍어먹고 싶었다. 그녀는 불 곁에 앉아 데이브가 하는 대로 따라했다. 젊은 여인은 아이들에게 종이로 싼 접시 하나씩을 내밀었다. 케이티가 종이의 한 귀퉁이를 들어올렸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버터와 꿀과 견과류가 듬뿍 뿌려진 두꺼운 팬케이크가 나타났다.
케이티가 팬케이크를 먹는 모습은 솔직히 깨끗하거나 조신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젊은 여인과 데이브는 마치 재미있는 구경을 하는 것처럼 바라보았다. 드디어 그녀는 접시를 내려놓고 데이브가 내민 물 한사발을 벌컥벌컥 단숨에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말했다. "내 이름은 케이티야."
이 소식이 그들에게는 별로 놀라운 것이 아닌 듯 했다. 그들은 케이티를 아주 잘 알고 있는것 같았다.
"나는 꼬마 엘을 찾고있어." 이 말은 예기치 않은 결과를 가지고 왔다. 데이브와 젊은 여인이 한꺼번에 웃음을 터트린 것이다. 케이티는 영문을 모른 채 멍하니 있었다.
"그 소년을 아세요?"
이 말에 데이브가 대답했다.
"바로 나야. 내 이름은 데이브 엘, 여긴 우리 어머니고."
케이티는 너무 놀라서 사발을 떨어트릴 뻔했다. 고작해야 스물세살 밖에 안 되어 보이는 이 여인이 데이브의 어머니라니.. 그녀는 무척 젊어 보였다. 그녀는 납작한 얼굴에다 양쪽으로 땋은 머리를 둥글게 말아 머리 양편에 고정시켰다. 사람들이 봤다면 데이브의 누나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날 밤은 꿈같이 달콤했다. 세 사람은 오랫동안 불옆에 앉아 있었고, 케이티는 계속에서 두 모자를 웃게 만들었다. 케이티는 모자에게 무당벌레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알다시피 케이티의 아버지는 그 주제에 관한 위대한 전문가였다. 케이티는 아주 드문 곤충인 열세 쌍의 점을 가진 무당벌레에 대해 한참 이야기했다. 그러고는 장난으로 열세 쌍의 점을 가진 무당벌레의 학명을 가르쳐주며 따라해보라고 했다.
"카투오르데심 푸스투라타!"
데이브의 어머니는 더듬거리며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다가 깔깔 웃어댔다.
"카투오르트.....티스...카투옴데시르..푸트수라나?"
하지만 데이브는 단번에 그 긴 이름을 따라했다. 얼마 후 졸음이 쏟아지자, 세 사람은 화사한 색상의 사각 커튼 뒤에 있는 매트로 올라갔다. 데이브는 노란색, 케이티는 파란색 매트를 선택했다. 눈을 감는 순간 그녀는 몇 시간 전부터 걱정을 하며 그를 기다리고 있을 부모님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단지 꿈속에서 흥얼거리는 꼬마 엘의 노랫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카~투~오르~데~심~푸스~투라~타....."
다음날 데이브는 케이티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나오기전에 얼른 덤불 속으로 사라졌다. 이렇게 해서 케이티와 데이브 사이에 단 하나뿐인 우정이 시작되었다. 그 우정은 케이티의 유배 생활 동안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 플루 지역에 대한 애정을 꽃피우기에 충분했다.

케이티는 하수구 구멍 속에서 깨어났다. 곧 그녀는 자신이 어디 누워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플루에 대한 추억과 데이브와의 만남을 되새기면서 꿈속으로 도망쳤다.
새벽이 하수구 구멍 사이로 어스름한 빛을 던지기 시작했다. 케이티는 몸을 조금 움직여 보려고 애썼다. 왼쪽 다리가 몹시 아팠지만 그래도 다행히 움직일 수 있었다.
사람들은 대게 악몽에서 깨어나면, 아무런 위험이 없는 달콤한 현실을 발견하고 문 밑으로 새어 들어오는 불빛에 기뻐하기 마련이다. 데이브의 꿈은 악몽이 아니었지만 케이티가 처한 상황에서는 데이브에 대한 추억, 플루에 대한 추억 모든 것이 악몽이었다. 다시는 꾸면 안되는 그런 악몽. 짧았지만 달콤했던 그 추억은 아득히 꿈처럼 멀어져갔다.
자신을 덮쳐왔던 인간 사냥꾼들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누워있는 구멍에서 끌어올려질 뻔했던 무서운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몸을 살짝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통증이 찾아오는 것을 느끼고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그녀는 깨달았다. 그녀는 그때의 두려움과 고통 속으로 다시 빠질 뻔했다. 하지만 그녀의 온 신경을 더 강렬하게 끌어당기는 것은 배고픔이었다.
"인간의 두뇌는 저마다 왕성한 활동의 비결을 갖고 있는 법이란다. 내겐 잠이 바로 그 비결이야. 그런데 케이티 너에겐 먹을 것이구나. 그러니 넌 생각을 하기 전에 먼저 배를 채워야해. 아니면 옳은 생각을 제대로 하지 못할게다." 그녀의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 기운이 다 빠진 케이티를 보고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케이티, 네겐 먹을 것이 필요하구나."
케이티는 무릎을 꿇은 채 하수구 뚜껑을 살짝 제쳐둔 채 머리를 조금 내밀었다. 그리고 주변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러다 갑자기 조금 떨어진 곳에 사냥꾼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움찔했다.
배가 고팠지만 케이티의 두뇌는 여전히 합리적으로 움직였다. 만일 사냥꾼이 여기 있다면, 벌써 나를 덮쳐서 질질 끌고갔겠지. 그래서 케이티는 두려움 없이 머리 전체를 밖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축축한 하수구 뚜껑의 한 부분을 잡고 몸을 일으켜 보았다. 몸이 마치 나무로 만든 꼭두각시 같았다. 팔과 다리도 통나무에 붙어있는 나무 막대기처럼 뻣뻣했다. 상처가 죔 나사처럼 피부를 잡아당겼다. 그녀는 이 구멍 속으로 떨어지다시피 들어간 뒤에 무려 다섯 시간을 쉬지않고 달렸고, 수도 없이 어딘가에 부딪혔으며, 스무번도 넘게 넘어졌고 또 그만큼 일어났다.
구멍 속에서 나온 케이티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첫 번째 소식은 그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다시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첫 발을 떼자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것은 고통 때문에 나는 소리가 아니라 기쁨에서 나오는 외침이었다. 그녀는 아직 걸을 수 있었으며, 옴짝달싹 할 수 없는 밤을 보낸 후에도 더 걷겠다는 의욕이 여전히 불타올랐다. 몇걸음 걸은 후에 알게 된 두 번째 기쁜 소식은 커다란 갈색 버섯 한조각을 아침식사로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케이티는 이런 납작한 버섯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런 버섯에는 벌레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버섯으로 그라탱이나 튀김을 만들어 먹으려면 버섯을 오래 삻아야만 했다.
하지만 케이티는 버섯 한 조각을 뜯어 날것으로 삼켰다. 그리고 작은 웅덩이에서 개미처럼 물을 핥아 먹었다. 예상치 못한 식사를 한 후, 케이티는 머리가 다시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찬찬히 계획을 세웠다. 다시 희망이 솟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