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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영화감상문

제목 가려진 시간을 보고
글쓴이 강유미
타인과의 접촉의 상실과 교육의 부재의 환경에서 어린 아이들은 어떻게 컸을까? 사실상 시간 속에 갖힌 3명의 아이들 외에는 서로 접촉할 수 없었고, 기본적인 중등, 고등 과정을 거치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물론 책을 통해서 스스로 배우기는 했지만 독학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 테면, 논쟁의 부재나 이해력의 부족 등등의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이들이 어떤 성인으로 자라나갈지 걱정이 되었는데 생각보다 기형적으로 자라지는 않은 것 같았다. 가치관이 나름대로 확립되어있던 중학생이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성민이의 정신적인 나이는 몇살쯤 될까 궁금했다. 멈춰있는 시간 속이긴 했지만 결국 신체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나이를 먹은 것은 맞으니까.
또한, 섬이라는 배경은 시간 속에 갖힌 고립을 더 잘 느끼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노를 저어도 배가 나아가지 않는 상황들이 숨이 막혔다. 만약 배경이 섬이 아니고 서울이었다 하면 뚜벅이로 이참에 못봤던 곳들도 다가보고, 자유로움이 조금 더 길고 많이 그려졌을 것 같다.
알을 깨서 시간 속에 영향을 받는 반경은 작아 보였다. 요괴의 알을 깨서 영향을 받은 영역은 반경 10m이내의 친구들 뿐이었고, 동굴 속에 있는 수린이도 시간에 갖히지 않았고, 마지막에 성민이가 알을 깼을 때도 절벽 위의 수많은 경찰들이나 떨어지고 있는 형사와 수린이에게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마지막에 절벽에서 알을 깼을 때 처음에 멈춰있는 파도 앞에 서있는 수린이와 성민이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래서 수린이도 알의 영향을 받아서 같이 시간 속에 같이 갖혔구나 싶었다. 솔직히 안도감이 든 게 나는성민이가 알을 깨지 않길 바랬다. 그게 최선인 걸 아는데도 너무 끔찍했다. 시간 속에 갖혀서 노인이 되어버릴 성민이를 생각하니까. 수린이가 같이 들어가서 성민이가 외롭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구나 생각했어. 알고 보니 수린이의 꿈이었다.
감정 이입을 잘하는 사람들은 무섭게 느껴질 영화이다. 몰입해서 보다보니 멈춰 있는 세상 속에 기약 없이 갖혀버린 다는 게 무서웠다. 만약 내가 성민이었다면 미쳐버리거나 자살했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극단적인 상황이었다. 물이 고체처럼 떠지고 물건이 떨어지지도 않고 공중에 떠 있는게 기괴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우주 속에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또 일방적인 희생이 그려지는 부분이 너무 불쌍했다. 감동이라기보다는, 그저 불쌍했다. 이 영화를 늑대소년과 비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그 영화도 기다리거나 인내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아 매우 괴로웠었다. 기다리거나 인내하는 한 방향의 사랑은 너무 괴로운 것 같다.
가려진 시간이라는 책은 어떻게 출간하게 된 것일까? 책을 내는 데 도움을 준 선생님은 수린이 담당 정신 의학과 선생님이고 가려진 시간이라는 책을 출간하는 저자였다. 책에는 수린이의 이름이 아니라 민xx이라는 선생님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몇 년을 지나서는 수린이의 말이 받아들여질 만큼 비현실적인 걸 믿는 시대가 된걸까?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래서 나는 이걸 단순 소설으로 발간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단순하게 생각해봤을 때 (수린이 속사정 아무것도 모르고 겉모습만 보자면) 소아성애자에 의해 납치된 망상증 환자로 보이는 여중생 한 명이 정신 의학 선생님을 만났고 그 선생님은 수린이의 (일반 사람이라면 도저히 믿기 힘들, 이 세계의 어른들은 망상이고 했던) 말을 수용했고, 수린이의 말을 적은 책을 발간했다. 몇 년이 흘렀다고 오컬트 적인 부분이 수용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을까? 그렇다면 수린이의 말은 현실적으로 거의 망상증 소녀의 말을 책으로 엮어낸 거니까 수필이 될 수 없고 사람들도 호기심에 읽을 순 있겠지만 비난이 많았을 것이다. 만약 뉴스만을 통해 이 사건을 알고 가려진 시간이란 책을 수린이라는 친구 입을 통해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자면 한 사춘기 소녀의 망상 같이 느껴질 것이다. 수린이의 진실이 담긴 말에도 영화 속의 모두가 믿어주지 않았던 것처럼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저자도 민xx으로 선생님의 이름을 담고 있었으니까 소설으로 출간했다는 부분이 가장 현실성 있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은 소설로 믿을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성민이와 수린이에게는 가장 현실적인 수필이고, 그런 의미에서 책을 출간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둘만이 서로를 시간을 기억하고 서로를 알아보듯이 그 책은 둘을 담고 있는 진실한 기억의 그릇인 걸거야.
마지막에 등장하는 성민이의 뒷모습은 너무 멋있었다. 수린이가 뒷모습을 보고 차에서 뛰어내려서 쫒아갔는데 없었기에, 설마 이렇게 끝이 나는 건가 싶었다. 수린이가 배를 타고 나가는데, 수린이가 배를 타고 나가면서 자기가 있던 섬을 돌아보는 장면 후에 섬안에서 배를 바라보고 있는 성민이를 비춰주는 건 아닐까? 상상했다. 그럼 더 여운이 있긴 하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결말이었을 거다. 근데 배 안에서 성민이의 모습을 발견하고 쫒아가는 부분에서 아, 길고 긴 시간을 넘어 드디어 만나는구나 싶었다. 마지막 씬에서 결국 수린이와 성민이가 만났을 때 함께 배를 타고 섬 밖으로 나가는데, 너무나 마음에 드는 엔딩 이었다. 드디어 고립된 시간의 섬을 둘이 벗어나는 구나 했다. 초록의 영상미가 너무 예뻤고 스토리적으로도 많은 상상을 하게 해주는 영화였다. 정말 어딘가에 성민이가 시간 속에 멈추어져 있을 것만 같은 상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