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마당 > 글쓰기마당 > 독서/영화감상문

독서/영화감상문

제목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고- 늙은 연쇄살인마의 말로
글쓴이 강유미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고

잡히지 않은 연쇄 살인마는 어디서 무엇을 하며 늙어 가고 있을까.
세상이 인정하지 않은 부도덕함을 일삼아 그것을 양분으로 자라나는 사람에게서는 아주 고약한 냄새가 풍겨온다. 시체가 썩어가는 냄새가 독하니, 그것에 마비되어 자신의 악취를 맡지 못하는 비겁한 신체 기관을 가지고 살아간다. 영원히 살인마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기분은 어떨까. 자신이 한 사람의 인생을 쥐고 흔드는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겠지만 아무에게도 부러움을 사지는 못한다. 살인의 성에서 영원히 썪어 가는 삶,
살인자의 기억법에서는 공소시효가 지나서 늙은 할아버지가 된 연쇄 살인마가 등장한다. 한국의 연쇄 살인마 유영철이 말하기를, 살인은 절대 끊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마치 살인은 중독이라는 듯 말했다. 책에서 등장하는 연쇄 살인마는 어떤 계기로 살인을 끊기는 했지만 한 때 살인에 중독되어있던 미치광이 살인마였다. 하지만, 알츠하이머라는 병과 치매가 겹치고 자신의 딸이 또다른 연쇄 살인마에게 위협받자 그녀를 지키려고 병과 싸우고자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유영철에게도 소중한 아들이 있는데, 그 소중한 아들은 평생을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오명을 덮어 쓰고 살아야 한다. 그런 인생의 굴레를 아들에게 주었다. 아무튼 보통의 사람들과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니 그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는 덮어두도록 한다.
끔찍하게도 살인마의 딸은 자신이 죽인 여자의 갓난아기를 데려다가 키운 것이었다. 딸은 어느덧 30대가 되어 엄마의 죽음에 대해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만 풀 수 없는 미로 속에 갖혀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 와중에 자신의 딸을 노리는 연쇄 살인마가 등장한다. 눈빛을 본 순간, 그는 확신한다. 저 사람은 나와 같은 동족이라고. 연쇄 살인마가 딸과 결혼 약속을 받으러 오자 몸을 가누기도 힘든 늙은 연쇄 살인마는 자신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그를 죽이고자 마지막 살인을 결심한다. 또다시 살인을 할 수 있다는 선택에 그는 다시금 옛날의 기분에 휩싸인다.
어떤 평론가가 이 책에 대해서 말하기를 폭주 기관차를 타고 달리다가 쾅 하고 벽에 부딪혀버리는 것 같다고 했다. 평론 한 줄을 먼저 읽고 책을 빌린 후 세 시간 만에 책을 다 읽었다. 평론가의 말에 공감을 한다. 정말로 폭주 기관차에서 내리지도 못한 채 세게 부딪혀버린 기분이었다. 기, 승, 전, 결의 깔끔한 구조로 이루어진 글이라기보다는 기, 미약한 승, 그리고 결 이라는 느낌 이었다. 결론은 이러 하다. 딸도, 그를 노리는 연쇄 살인마도 모두 가짜. 가짜. 자신이 꾸며낸 가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읽는 사람도 알지 못한다. 다만, 그가 연쇄 살인마 였다는 사실만이 진실로 남아 있을 뿐. 아니, 그것은 정말 사실인가? 치매 환자가 꾸며낸 가치관의 혼란인가? 여러 가지 혼란이 책을 덮은 후에 스며들어왔다.
아무튼 ‘살인자의 기억법’ 이라는 제목에 맞게 사람을 죽인 연쇄 살인마라는 것은 진실이라고 볼 때, 병과 늙음 앞에서 어떤 포악함도 건재할 수 없구나. 싶었다. 그는 여실히 보통의 사람과 같은 시간으로 늙어갔으며 부도덕함의 대가라기에는 누구에게나 평등한 병에 걸려 늙어 간다. 마지막에 오줌을 싸는 늙은 노인의 모습에서 연민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가 건실히 살아온 늙은 노인의 모습과 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연쇄 살인마를 미화하고자 하는 의도는 서사에서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작가가 의도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가 한동안 고민했지만, 스스로 결론을 내리기에는 책은 마치 종적을 감춘 살인마들에게 경고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너희들이 살인을 한다고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라고 여기지 말라, 우리는 어차피 다같이 늙어가는 인생이다. 라는 인생의 총체적인 결말을 시사하면서 살인에 대한 의욕을 한 풀 꺾어 버리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살아옴에 결국 늙음과 병이라는 거부하고 싶은 시간이 다가옴에 비관하자는 뜻이 아니다. 그 병이 자신의 죄악으로 얻은 병이 아니라고 평온히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건실하게 살자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