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는 끝이없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지도 알수없다. 빗방울이 온통 가시가되어 내머리에 박히는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어김없이 떠오르는 숨겨진 기억,,,,
"강은후~ 같이가~ !!" 가쁜숨을 몰아쉬며 지후녀석이 다가선다. 이젠 제법 찬기운이 느껴지는 계절이라 현우녀석의 숨에 입김이 피어났다

강지후,, 나의 쌍둥이,,, 그래도 내가형인데,, 꼬박꼬박 반말이다. 뭐,, 그것에 대해서 불만을 느낀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내가 아는 지후는 착한 아들과 귀여운 동생 역할에 충실한 나의 가족이였다. 그렇게 활달하지도 소심하지도 않은 그런 평범한,, 아직도 내 머리는 그런 내동생 지후를 그릴뿐이다. 주말을 보낸 월요일의 교정은 다소 산만하게 느껴진다.

마치 몇달간의 방학을 마친 그런날처럼.. 여느 쌍둥이들이 그러하듯,, 지후와 나역시 같은 학교로 진학했고 반은 나뉘어 졌다.학교로 들어선 우리 둘은 짜여진 각본처럼 간단한 인사를 뒤로하고 각자의 생활로 스며들었다. 내가 지후에 대해 모르는게 있다면 친구관계정도를 꼽을수 있겠다. 난 녀석의 친구를 몰랐고 지후역시 나의 친구들과는 어울리기를 꺼려했다. 형제간의 사생활보호였을까,, 나역시 이편이 훨씬 편하다. 남자라고 남의 얘기를 즐기는건 예외일리 없으니,,

그날하루동안은 지후와 한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리 이상할건 없지만 이런 경우는 드물었기에 신경이 쓰이는건 어쩔수 없었다. 방과후엔 자연스럽게 각자 서로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기에 굳이 지후를 찾지 않았다. 나도 친구들과 늦게까지 어울려 다니느라 밤이늦은 시간에야 집에 들어왔다. 그런데.. 지후의 흔적이없다. 있어야할 신발이 없고, 있어야할 모습이 없다. 이렇게 늦을리가 없는데.. 걱정이 되는만큼 괜한 배신감에 화가치밀었다. 그렇게 앉은 자리에서 나는 지후를 기다리며 밤을 꼬박 지새웠다 '오기만 해봐라' 싶던 마음이 이제는 제발 오기만 하라,'는 마음으로 어느새 바뀌어있었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오던 순간, 낮동안 한번도 마주치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의 그예감이란,, 아직도 생생한 느낌에 다시금 소름이 끼친다. 나는 튀어오르듯 일어나 온 시내를 활보했고 붉게 충혈된 나의 눈동자는 어디선가 불쑥 나타날지 모를 지후의 모습을 찾는라 허둥거렸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도록 우린 아무런 소식도 들을수가 없었다.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몇일새 일어난 살인사건때문에 많은 병력을 지원해주지는 못하는듯 하였다. 답답한 마음을 어찌할지몰라 TV를 켜보아도 온통 최근 몇일동안 일어난 잔혹한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뉴스로 떠들썩했다.

동생 지후가 사라진지 어느덧 1년여가 훌쩍 지났다. 아무런 성과없이 지나버린 세월이 야속하기만 했다. 동생이 사라진 집과 학교는 허전함으로 밖엔 표현할수 없도록 느껴졌다. 가족의 빈자리가 이렇게나 큰것인가,, 새삼 서러움에 눈물이난다 대체 어떻게 왜 무엇때문에,,,,  내가,, 내동생이,, 나의 가족이 이런 고통을 맛봐야하는 것인가..

어느 덧 졸업식 날짜가 다가왔다.차라리 다행스러운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하루라도 더 학교로 향해야했다면 나역시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랬을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일은,, 그충격은,, 1년이나 지난,, 늦은감이 없잖아 있는듯 느껴지는 나의 졸업식날 생겨났다. 물론 바로 알아차리진 못했지만,, 역시 학교의 행사장은 개인의 감정은 무관하게 소란스럽게 들뜬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졸업이 무슨 큰죄인것 마냥 서로 눈치만 살피며 고개도 제대로 못든 채 각자 소리없이 눈물만 삼키는걸보면 가족들은 아마,, 평생토록 지후녀석을 가슴에 짊어지고 죄책감으로 살아갈것이 뻔하다. 내가 지후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것과 같은것이겠지..
의례 챙겨오는 사진기도 그날은 제몫을 못하는듯했다.

그 때 친구 녀석이 다가와 사진기를 들이밀며 내옆으로 붙어섰고 그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졸업기념 사진이 되었다.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온건 한달가량이 지나서였다. 약간은 황당한듯,, 다급한듯,, 하지만 뭔가 조금 설레는 듯한,, 그런 느낌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흘러들어왔다.
"은후야, 빨리 이리로 와봐! 심각해."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진건 확실했다. 곧장 친구녀석에게 달려가 전해받은 사진은 실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사진속에,, 내가 그토록 찾아헤매였던 지후녀석인듯한 모습이 저멀리 비춰져있었던 것이다. 마치 원래 있어야하는 풍경같은 모습으로,, 왜 그날은 눈치채지 못했을까.. 이렇게 가까이 있었는데,, 쌍둥이끼리는 텔레파시도 통한다는데,, 이건 너무하잖아. 일단, 지금 시급한것은 지후의 생사였다. 나는 내눈으로 직접확인하기 전까진 그무엇도 믿을수 없었다. 나를 말리는 친구녀석을 뒤로하고 나는 곧장 어둠이 깔린 학교로 내달렸다. 사진속 지후의 위치를 불빛하나 없는 학교운동장에서 가늠해 낸다는건 그리 쉽진 않았다. 그러나 내겐 그만큼 절실했다. 얼마나 헤매었나,, 지후의 위치를 찾아내었고 나는 그곳이 철거작업중 학교의 예산문제로 중단되었던 오래된건물의 지하실로 향하는 작은 철문이 있는 곳이란 걸 알게되었다. 지후가있다,, 지후가있다,, 내동생 지후가있다!!!!'

무엇에 그런 확신이 생겨났는지는 지금도 알수없다. 막연히 간절한 바람이 굳은 믿음으로 바뀐게 아니었을까,, 난 조심스럽게 철문을 끌어당겼다. 다행히도 잠기지 않은채였다. 예상대로 안은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같은 어둠으로 휩싸여 있었고 나는 조심스레 한발한발 앞으로 내디뎠다. 안은 꽤나 넓은듯 느껴졌다 들어서면서 온몸을 휘감는 찬 기운이 그랬고 내딛는 내 발자국 소리의 울림이 그랬다. 얼마나 파고 들었을까,, 넓은 강당같은 느낌은 사라지고 좁은 복도를 지나게 되었다. 양팔을 벌린채 벽을 따라 한참을 걸어나갔다. 오랜시간 어둠속에 노출되면 희미하게나마 보이기 마련인데도 이곳은 빛한점 없이 어두워 그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렇게 온 신경을 곤두세운채 앞으로 나아가는중
스슥_  슥_______
무언가 내손끝을 스치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작은 벌레라기엔 내몸의 떨림이 너무 컸다. 아마 그때부터 공포라는 감정이 시작되었던것 같다. 물체의 움직임은 끊어질듯 이어졌고 움직일수록 더욱 날렵해지는 느낌이었다. 몇번을 스칠듯 날 감싸고 돌더니 이윽고 난 귓바퀴 가까이에서 울리는 녀석의 울음소리마저 듣게되었다.
크르..크르릉…크___'
아찔한 공포감에 비명이라도 지르지 않으면 미쳐버릴것 같았지만 그뒤에 따라올 상황에 대한 상상때문에 난 턱이 얼얼하도록 입을 굳게 다물수 밖에 없었다. 잠깐일지도 모를 그 시간이 내겐 평생처럼 길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 무언가는 한참을 날뛰며 살피더니 이내 고요해졌다. 한참을 귀기울였지만 아무런 소리도 미동도 느낄수 없었다. 그제서야 난 한숨을 내쉬며 안도를 했다.
아차!!'
그순간 나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 한가지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린 후 였다. 동물은 본능적으로 경계태세의 먹잇감은 건드리지 않는법 그래서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차리면 산다 그러지 않는가. 하지만 안도하는 순간 그냥 고깃덩어리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것이다. 옛 선조들의 말씀을 절절하게 실감할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예상대로 이녀석은 나를 향해 날렵하게 도약했고 나는 피할새도 없이 꼼짝없이 놈의 공격을 당하게되었다.
그런데 이순간 더 두려운것은 잡히는 몸통의 형체가 사람의 것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내몸의 이곳 저곳이 물리고 찢기고 피가 솟아오르는 와중에도 고통보다는 이녀석에 대한 궁금증이 내자신을 지배했다.

출혈이 많았던가.. 점점 기력이 다되어간다.그제서야 난 녀석이 우물거리는 것이 나의 살점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서서히 눈이 감기기 시작한다. 있는힘을 다해 녀석의 얼굴을 낚아챘다. 지후,, 지후다. 내동생 지후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쿵쾅거림.. 사람들이 내지르는 단말마의 비명.. 뭐지.. 환청인가,, 아,, 햇빛,,,,, 꿈인건가,.. 아니면 이게 죽음인건가.. 지후.. 내동생 지후는……. 다음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전부이다. 눈을 떴을때는 온통 새하얀 방의 침대위였다. 지후! 퍼뜩 기억이 떠올랐다. 지후를 찾아야 한다. 침대에서 내려가려 발버둥쳐봤지만 쉽지가 않다. 어쩐일인지 내 온몸이 묶여있고 입혀져 있는 새하얀 옷에는 상처에서 베어나온 붉은 핏물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 때 문을 열고 가족이 들어섰다. 무슨일인지 다들 말도 없이 물끄러미 날 바라보는데 다들 울었던건지 부은 눈들이다. 그래.. 지후가 잘못된거야,, 지후때문에 또 슬퍼하는거야.. 그런데 그순간,문밖으로 지후가 보인다. 분명히 지후다! 난 지후를 소리쳐 부르기 시작했고 가족들은 나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랐는지 그자리에 붙어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뒤돌아서 자리를 떠났다.
대신 그자리엔 하얀 가운을 입은 여러명의 사람들이 자리한 채 내게 많은 질문과 약물을 쏟아부었다.
"당신은 누구죠?"
"강은후..아니, 강지후.. 강은후… 강은후야…."
"강은후씨 강지후는 누구죠?"
"내동생.. 강지후.. 내동생.."
"당신은 동생이 없습니다. 그날 그곳엔 왜 가신거죠?"
"지후.. 내동생 찾으러…"
"휴… 다중인격증상 같습니다 가상의 인물들을 만들어내서 자신의 콤플렉스를 위안하려는 심리가 가장 큰 요인이 된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연쇄살인도 모자라 자신의 살점을 잘라 먹으면서 경찰에 자진신고까지…"

…………………….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간다. 지후는 여전히 그곳에 서서 물끄러미 날 바라보고 있었고 친구녀석 역시 어느 새 내옆에 다가와선 재미있다는 듯 웃어보인다.

자료제공: '장은호 공포연구소' 에서 제공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