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1. 그 여자의 집

한 여름

햇살 뜨거운 날

처녀의 집 화단에 핀 잡초마저

기절하여 잎을 늘어 뜨리고 쳐진 날

온 집안이 떠들썩한

분주함 속에서

늘 그렇듯 남자는 산책을 나서고

처녀는 황토마당에서 잔치 준비로 소란스럽다

집을 나선 남자는 옛 추억을 더듬어

처녀의 집에 인사차 처음 오던 날

긴 시간 시골 버스에 시달리다

낮선 길에 내려 걸었던

코스모스 흐드러지게 피었던 길을 찾는다.

30년 동안 너무 많이 변해

길은 바뀌고 기억에 없는데

아직 남아 있는 산길을 찾아 반가움에 걷는다.

오랜 시간 방치된 길에는

8월의 뜨거움을 먹고 자란

노랑, 빨강, 흰색의 갖가지 꽃들이 피어 있었다.

높은 나무 사이에는

거미가

여전히 큰 집을 짓고 있었고

길의 끝에는

30년전

처녀의 집으로 가기위해 내린

산골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때는

청명한 가을

남자는 건강하고 늘씬하였으며 잘 생겼지만

건방지게 청바지에 흰 티 셔츠, 운동화가 전부였어도

처녀는 자부심으로 충만하여 남자를 데리고 집으로 갔다

처녀의 집에는 올망졸망한 어린 동생들의 눈동자가

하나, 둘, 셋, 넷... 그렇게 있었고

장인인 촌부는

남자 앞에서 말이 없으셨다.

도시물에 젖은 하얗고 늘씬한 모습에

마음이 끌렸어도 내색하지 않으셨다.

처녀는 그 남자가 자랑스러웠다.

남자에게는 처녀의 집이 멀고 갑갑했다.

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들녘

넓은 논밭의 단순한 풍경

올망졸망한 어린 눈망울들

말없는 어르신들

남자에겐 흔치 않은 일상일 뿐이었다.

그리고 남자는 너무 어렸다.

그 뒤로도 오랫동안 남자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처녀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남자를 자랑스러워 했다

말 없던 장인은

끝내 남자와 깊은 대화 없이 사랑을 가슴에만 묻은채

20여년전 떠나고

오늘은

장모의 팔순 잔치날

그날 저녁

처녀의 집 위를 환희 밝히던

별 하나 떨어져

남자의 가슴속 깊이 박히던 날

남자는 비로소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 처녀의 자부심에 비하면 자신은 도무지 할말이 없었다 .....

2. 남자의 집

남자는 여자가 사랑스러웠다.

가정을 꾸리며 책임지는 것이 좋았다.

처녀가 집으로 오던 날

모든 사람들은 처녀를 예쁘다고 했다.

처녀는 남자의 관심만을 요구했다

자신의 자부심에 어울리는

사랑이 필요했다.

그 뿐이었다.

가족을 이끌어가고

그리고 예쁜 사내 아이를 낳았다.

녀석이 자라

여자가 생기면

자부심 가득한 며느리를

사랑으로 맞이 하리라

느끼면서

온 세상을 살았다.

처녀의 별이 진다.

- 「풍경」여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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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긴 시간

긴 여행을 하다 보면

만족하겠지만 그래도 불만족도 많아

그럴땐 가까운 가족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간 살아온 여정을 뒤돌아보니

후회와 반성할 것이 많았던가 보다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썼던 것으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