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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고독 속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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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소곤 내리는 비 소리에 창 밖을 내다보니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하얀 빗줄기가 촉촉이 내리고 있습니다. 어둠을 깨우는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마음이 왠지 그윽해집니다. 자연이 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해 지는 일입니다. 텅 빈 가슴이 되며 무심해지기까지 합니다. 한참을 그 내면으로 이어지는 소리에 촉촉이 젖어 봅니다. 마음에 평화가 오고 맑아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서로 미워하고 갈등에 괴로워하는 일들이 생깁니다. 이는 남과 비교하면서 오는 열등과 시기일 테지요. 이러한 소용돌이 마음을 편안하게 이끌어줄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합니다.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는 비 소리에 젖어들며 마음을 다스려 봅니다.
"세상에서 새들이 가을에 털갈이하는 털끝보다 큰 것은 없습니다."
평화로운 빗소리와 함께 장주 선생이 세인들에게 하였던 말이 은은하게 들려 옵니다.
"세상에 에베레스트 산보다 작은 것은 없습니다."
머쓱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에게 계속하여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말하기를 800년을 살았다는 팽조라는 사람을 오래 살았다고 부러워
하지만 그는 태어난 지 하루만에 죽은 갓난아이의 생명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람들을 향해 장주 선생은 웃는 얼굴로 말합니다.
"에베레스트산을 가장 작은 것이라고 하고 나면 이 세상에 더 큰 것은 없겠지요? 털갈이 새의 털끝을 가장 크다고 하고 나면 이 세상에 더 작은 것은 없겠지요? 그렇습니다. 세상에 과연 큰 것은 무엇이고 작은 것은 무엇입니까? 넓고 넓은 우주에서 바라본다면 지구 전체가 콩알만하게 보일 것입니다. 콩알만한 지구 안에서 에베레스트 산이 크다고 한들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리고 수 억 년을 살고 있는 해나 달의 생명 앞에 800년을 살았던들 그것은 순간에 불과한 것이지요."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무엇과 무엇을 비교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은 나름대로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을 터인데 말입니다. 이러할진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어리석게도...... .
이 어둠 속을 파헤치는 비 소리에서 억만년을 넘어선 존재의 힘을 느낍니다. 옛 선인의, 상식을 뛰어 넘는 혜안을 접함에 지니려 하였던 사소한 번민은 종이 한 장의 무게에도 미치지 못함을 깨닫습니다. 선인의 가르침을 음미하며 창가에 홀로 서서 긴 상념에 잠긴 나는, 어디에선가 이 빗소리를 함께 하고 있을 누군가를 생각하여 봅니다. 그 누군가를 알 수만 있다면 더불어 이 고독을 나눔으로 인해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는 마음까지도 지녀봅니다. 지금 내가 글을 써내려 가는 것은 바다 향 함께 하며 떠올렸던 그 시심이 아닙니다. 저녁나절 장엄하게 그려졌던 노을 빛을 떠올림도 아니랍니다. 이 시간 모든 것을 묻어 버린 깊은 어둠도, 더욱 그 강함을 뽐내는 비도 이제는 아니지요. 그것은 다만 인간의 아름다운 고독에 관한 것입니다. 한계와 상상의 경계선을 뛰어 넘어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려하는 선량한 마음에 대한 것 말입니다. 부드러우며 섬세한 마음으로, 나를 붙잡는 오만과 아집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쓰는 혼자만의 사랑나누기가 고독일 테니까요. 이제 비는 운동을 멈추고 어둠만이 나의 홀로됨을 지켜 줍니다. 나 역시 그 어둠을 응시합니다. 몇 번이고 내려앉은 공기를 폐 속 깊이 들여 마셔봅니다. 생각이 깊고 넓어짐을 느낍니다. 그 누군가도 내가 받아들이는 이 축복을 느끼기 위해 창가로 다가가 마음을 열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여기에 지혜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 지혜를 나의 것으로 할 수 있습니까?
학교에서 배우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것을 가진 자로부터 갖지 못한 자에게 건네 받는 것입니까? 이는 고독을 즐김으로 인해 얻어 가질 수 있는 철학이 아닐까요. 진정한 고독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진리가 곧 지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혼자만의 상념에서 찾을 수 있는 영혼의 흐름이겠지요. 바람 타고 떠돌던 순수한 영혼이 그제야 나에게 흘러 들어와 충만한 가슴을 지니게 할 테니까요. 이제 그로 인해 가슴이 뜨거워지고 지혜가 생겨났습니다. 당당하고 자유롭게 나아갈 것입니다. 빗소리가, 장자가, 고독이 가져다 준 축복입니다. 이제 이 얻어진 기운으로 말미암아 붉게 타오를 태양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아무리 볼품 없고 쓸모 없는 풀 한 포기도 누구와 견주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간다는 진리를 얻었으니까요. 이는 자연이 우리 인간들에게 주는 지혜일 터이지요.
누군가여!
우리 이 지혜를 공유합시다. 열등감과 시기심을 버리고 더불어 일어나시지요. 아니, 그대도 이미 깨우침을 얻었겠지요. 이제 그 깨달음을 마음의 빛으로 삼고 천천히 걸어가야지요.
우리 그럽시다. [2003.04.24 ] -수필집 '내 앞에 열린 아침'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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