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난 회색 콘크리트 안에서의 탈출을 꿈꾸려 한다.
이 꽉 막힌 각진 도시를 벗어나면 세상은 꽃향기로 넘실거리고 있으리라.
둥근 파도가 자유를 찾아 너울댈 것이며 연인들은 부드러운 모래 위를
발자국 촘촘히 찍으며 깔깔거리겠지. 그리고 에메랄드빛 고운 하늘은 개나리 노란 향기에 반하여 그를 닮으러 노랗게 서성거리겠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둥근 세상을 생각한다.

밀려 있던 일들을 겨우 마무리하고서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길을 나선다.
도시인의 탈출 갈망.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한 줌 자유로의 목마름을 위해 향기 가득할 자연의 품속으로 가려한다. 향하는 발걸음이 그다지 가볍지 않음은 반대편 차선의 느린 움직임 때문이리라.

이내 도심을 벗어난 나의 행보는 금새 활기를 찾는다. 늦게 나선 길이라 한산하기까지 하다. 확 넓어진 시야가 된 길은 텅 빈 머리가 되게 하며 빠르고 신나게 달린다. 위험 속의 아름다운 질주이며 삶의 자신감마저 가져다 준다. 이내 길가로 차를 붙이며 속력을 낮추었다.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피어오르던 나른한 기운들이 내 몸을 감싼다.
감미롭다!

불혹을 넘긴 사내가 꽤 오랜 기간 느끼지 못했던, 미세한 감동을 내 몸 속 세포더미들이 이 봄 유달리 민감하게 요동치고 있음을 감지하며 사뭇 당황스럽다. 이 화사한 춘삼월을 맞아. 봄타는 시인의 마음이 이럴까......
흙 한 줌에도 느낌이 새롭고 풀 한 포기도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코끝에 와 닿는 상쾌한 한 점 바람에도 소중함이 느껴진다.아마도 깊은 사랑에 빠지려나 보다, 이 봄에...

바다를 등에 지고 돌아서니 나지막한 야산은 온갖 들꽃과 풀들로 아롱지게 펼쳐진다.
진정 축복이다. 완연한 봄의 정취는 쉽사리 사람들의 발걸음을 돌아서지 못하게 잡고 있는 듯 하다. 한가로이 즐기는 가족 단위의 풍류객들은 그리하여 즐겁고 행복하다. 저들도 모두 내 마음 같으리라. 자연의 순수가, 영혼의 음영이 함께 한 추억을 만들고 싶은 것이리라.
혼 속에 잠재되어 있는 순수가 평화와 사랑을 원하고 있다. 나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아니,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다고 소리 죽여 뇌까린다. 아! 시인이고 싶어라.

내 피부에, 얇은 외투에 묻어 있는 봄 향기를 털어 내지 않고 가지런히 정리하고서
힘찬 내일의 일상을 준비하기 위해 조용히 눈을 감는다.
봄을 즐기는 나비의 꿈을 만나기 위해 장자의 꿈을 청하여 본다.
새로운 아침을 눈뜨기 위해...... . [2003.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