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움이 찾아 들었다.
나에게는 깊은 인연이 있는 한 무리의 악당들이 있다.
7년여 전에 책 가게를 할 당시, 인근에 위치하고 있던 고등학교 2학년들로 구성된 7-8명 정도의 학생들이다. 이들에게는 책방이 소위 그들이 말하는 '아지트'인 셈이다. 하교 길에는 당연하고 보충수업 틈틈이, 휴일에는 진종일 찾아 들어 즐거운 괴롭힘을 가하던 녀석들이었다. 사소한 다툼에 의한 우정문제와 설레임의 애정문제 더불어 진학문제까지도 스스럼없이 토로하며 그 답을 물어 왔었다. 어찌보면 자격미달인, 인생 선배인 나에게는 힘에 겨운 문제까지도 물음을 받았었다. 그때마다 알고 있는 경험담이나 지식을 총 동원하여 이야기 해 주기도 하고 다독거리기도 하고 그리고 야단까지도 친 것이 반항기의, 호기심이 가득한 그들에게는 많이도 공감되고 고마웠던 모양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졸업 후에도 가끔 만남이 이루어졌고 군대 생활때는 가게로 들러 휴가 보고를 하던 녀석도 여럿 있었다. 군 생활중 내가 보내준 편지가 큰 힘이 되었다며 집보다 앞서 가게로 달려왔던 녀석도 있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인지라 생활에 어려움이 있겠다 싶어 격려의 마음을 보낸것이 딴에는 많이도 감격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어리석고 착한 녀석들은 긴 시간 동안 자기들만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내쪽에서 훨씬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도 말이다. 그 악당 중 몇이 며칠 전 보고 싶다는 전화가 있었다. 그리고는 오늘 반가움을 앞세우고 들이닥친 것이다. 내색은 덜 하였지만 반갑기가 그지없다. 잊지 않고 가끔 찾아주는 녀석들이 마음을 찡하게 한다.

그 철부지들이 어느덧 장성하여 대학을 졸업하기도 하고 취업도 하였단다.
몇은 졸업반이기도 하고. 그 중 한 녀석이 월급을 탔다며 근사한 저녁을 대접하겠단다. 정말 빠른 것이 세월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예전을 회상하며 까까머리 동그란 얼굴들을 떠올렸다.

근사한 식당으로 안내한다. 오랜만에 소주도 한잔하고 옛 이야기들로 시간가는 줄 모른다. 시대의 어려움이 있어 순탄치 않은 인생이라며 안타까움을 이야기하고, 좁아진 취업문제도 토로한다. 자주 못 찾음을 이야기하며 머리 조아리는 녀석도 있다.
자신들의 고뇌를 꺼내놓고 나름의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이제는 조금은 삶이 담긴 논리를 펼치며 나름의 주장을 이야기하며 설득하려 한다. 그래도 인생 선배라고 한마디 거들면 고개 끄덕거림으로 받아주는 녀석들이 고맙다.

근사한 저녁을 대접받았으니 여흥의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근처 노래방을 찾아 들었다. 그래도 왕년에는 한가락(?)하던 몸이라, 건네는 마이크를 한두 번 사양 하다가 한 곡하였다. 안치환의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워'를 같이 노래하고 '열애'를 열창하는데 마음뿐, 고음 처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전에는 곧잘 부르며 앙코르도 유도했던 노래인데 고음 처리 미숙으로 '땡'이다. 녀석들은 서태지도 되었다가 H.O.T도 되어 어울려 춤추고 노래한다. 합창으로 옛 노래 몇 곡도 함께 한다. 나에 대한 배려인 듯 하다. 마음껏 망가진다. 취기가 조금 오른 한 녀석이
"이제 아저씨라고 안 부를 겁니다. 형님이라고 부를 테니 그렇게 아세요"
한다. 밉지가 않다.맏형 정도도 좋으리라. 모두들 즐겁다. 한차례 땀 범벅이 되어 춤추고 노래하며 서툰 몸짓으로 함께 하며 즐긴다. 땀을 식히고자 거리로 나서니 자정이 훨씬 넘어 있다. 녀석들을 갈무리해서 택시에 태우는데 한 녀석이
"제 월급날 다시 오겠습니다"한다.

느린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한다. 저네들은 나에게 있어 큰 행복이며 자랑인데, 나는 저들에게 어떤 의미로 자리 매김하고 있을까?
바라건대, 이 넓은 세상 어디에서 살아가던지 가끔은 생각나고 찾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
꿈속에서도 즐거움이 연결되기를 바라며 노곤해진 심신을 달래며 내일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