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넣어둘수록 커지는 것이 고민이라고 하였던가. 마음속에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 고민을 털어 내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 일을 위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되었다. 언젠가 스치듯 들렀던 간절곶, 그곳이 떠올랐다. 얼마 전 시를 즐겨 쓰는 벗이 이곳을 다녀온 뒤 노래한 시를 읽으며 조만간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후라 문득 떠오른 것이리라.

가깝지 않은 거리로 기억하고 있는지라 이것저것 준비하여 나가려다가 혼자만의 길 떠남보다는 벗과 함께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웃하고 있는 고향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의 제의에 흔쾌히 승낙의 뜻을 밝혔다. 은근히 동생도 무료한 터라 잠시의 길 떠남을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하여 동생의 딸아이와 더불어 집으로부터의 벗어남이 이루어졌다. 일상탈출은 삶에 활력을 가져다 주는가보다. 차 안은 활기차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그곳은 오래

전 기억과는 또 다르게 다가왔다. 입구에 펼쳐져 있는 기암들이 전에도 있었던가 하는 의문을 주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오르는데 낚시꾼들이 바위 곳곳에 앉아 낚시를 즐긴다. 요즘 바다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 짜릿함을 알기에 그들의 수고를 위로한다. 전망대에 도착하여 바다로 눈을 향했다.

바다는 지향점을 잃은 물이라며 목표를 지니고 흐르는 강을 더욱 사랑한다는 한 벗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벗이 강물을 예찬하는 뜻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강은 질곡의 고통을, 고난의 역사를 담고 있지 않은가?  엎어지고 뒤틀리고 갇혔다 풀려난 그 모든 애환을 담아 오면 바다는 묵묵히 보듬어 안아주기에 이 그윽한 바다를 바라보면 생각이 깊어진다. 바다는 가장 낮은 물이지만 하늘로 떠올라 푸른 하늘의 뭉게구름이 되려 승천할 것이기에 평화가 함께한다. 표면에 천착하지 말라는 경계의 뜻인 ‘무감어수無鑒於水’ 라는 경구가 떠오름은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지 말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비추어 보라는 ‘감어인鑒於人’을 실천하라는 바다의 가르침이리라. 시인이 떠올랐다. 이 간절곶을 노래했던 벗이 이곳에서 뿜어내었을 감정의 소용돌이들을 되뇌어 보며 나를 비추어 본다.

끝 간 데 없는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와 하늘의 연결점을 찾고 있는데 아이가 넓은 잔디밭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이끄는 바람에 잠시 상념은 끊겼었다. 시인은 이 바다를 보며 간절함을 노래했다. 그 당시의 벗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하였다. 나도 시 한 수를 읊어 보리라 마음먹으며 아이를 아빠 손에 옮기고 자세를 취해본다. 긴 숨을 쉬어보았다. 표현의 한계에 도달한다. 애절함이 없다. 간절함이 부족하다. 어느덧 고민은 사라져 버리고 애초에 없다. 그 가벼웠던 고민은 이 위대한 자연을 대하는 순간 사라져버렸음이다. 벗의 시를 떠올린다. '눈물 날 때는 간절곶으로 가라'라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여기에 찿아 들었음이리라.

한참을 수평선으로 마음을 보내며 상념에 빠져든다. 이내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에 평온이 온다. 이제는 즐거움을 느껴야겠다.  돌아섰다. 한눈 가득 넓은 잔디밭이 들어온다. 이미 아이와 동생은 즐거움이 한창이다. 사진을 찍으며 아이는 모델이 되고 아빠는 추억을 낚는 사진사가 되어있다. 얼른 그 즐거움에 끼어들었다. 잠자리 떼가 하늘을 날며 즐거움을 같이한다. 까치 한 마리도 임을 잃은 것도 잠시 잊고 즐거움을 노래한다. 울창한 소나무 숲이 우거진 곳에 당도했다. 나무의자들이 군데군데 자리하여 휴식을 청한다. 간단한 짐을 풀고 소나무 향과 산림이 주는 신선한 공기를 흠뻑 마시며 그렇게 거기서도 한참을 즐겼다. 아이의 재롱과 함께.

새 천년을 맞으면서 이곳을 소개했던 글이 있다.

"새 천년은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창조하는 것입니다. 여기 천년의 문이 있습니다. 새 천년의 첫날 7시 31분 17초 한반도와 동북아 대륙에서 가장 먼저 수평선에서 찬란한 태양을 맞는 울주군 서생면 간절곶입니다. 그 문은 열려있는 것도 닫혀있는 것도 아닙니다. 절망한 사람에게는 늘 닫혀있고 희망을 가진 사람에게는 늘 열려 있습니다. 미움 앞에는 늘 빗장이 있고 사랑 앞에는 늘 돌쩌귀가 있습니다. 천년의 문이 있습니다. 지금 이 문이 이렇게 활짝 열려있는 까닭은 희망과 사랑으로 우리가 그 앞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새 천년은 오는 것이 아니라 맞이하는 것입니다. 새 천년은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한다는 것입니다. 빗장 없는 천년의 문이, 활짝 열린 사랑과 희망의 문이, 아침 햇살처럼 여기 있습니다."

늘 사랑하며 사람들과 더불어 살라는 뜻을 접하며 경건한 마음이 된다.

우리나라 방방곡곡 아름답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이곳의 풍광과 자연은 뛰어나다. 초입의 안내판에 '새벽이 좋은 곳' 이란 문구를 떠올리며 조만간 새벽이 좋음을 느끼러 와야겠다는 생각을 굳힌다.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돌아오려는 마음인데 거대한 안개의 이동이 시작된다. 산허리를 돌아 소나무 숲을 덮치더니 빠른 속도로 잔디밭을 점하고 이내 바다 한가운데로 밀려나가 운무로 자리 매김 한다. 안개가 이렇게도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 중에 우리는 온통 안개 속에 갇혀있다. 이 상쾌함, 신선함,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느낌들이다. 여기를 찾아들게 한 마음속의 고민. 그 해결책을 얻었고, 신선이 되어 안개 속을 경험도 하였고, 시인이 되게도 하여 자연을 노래할 수 있어 아주 즐거웠던 일상 탈출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생각이 자유로워야겠다는 마음을 하게 된다. 그리하면 거칠 것이 없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곳을 찾게 해준 시인에게 감사를 전하는 마음이 되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