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조국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민족에게 2006년의 가을은 갈등과 반목으로 점철되고 있다. 과연 민족주의는 이 시대에도 그 기능을 가지는가. 베네딕트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에서 밝힌 것과 같이 대중을 동원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이며 폭력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최근 불거진 북한의 핵실험 소식은 그야말로 가공할만한 파장이 되어 우리나라는 물론 국제사회에 심각한 최대 이슈로 연일 매스컴을 강타하고 2차 핵실험으로 이어질 전망이어서 민족의 자유와 통일을 위해 우리의 판단은 어떠해야 할 지가 정부의 고민이고 최근의 화두로 국민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모 일간지에 '글쟁이는 나라의 위기가 오면 말할 책임이 있다'는 제하의 글이 올랐다. 대다수 문인들이 침묵하는 지금, 중진 시인 정현종씨는 한반도에 죽음의 재를 드리운 북핵의 반 생명, 반 자연, 비 인간을 질타한 시로 북한을 향해 직설적으로 내지르고 있다며 지식인들의 침묵을 질타하고 있었다. 글에다 음풍영월만을 표현함을 자제하라는 다산 선생의 가르침을 뒤로하고라도 이 땅에서 문학하는 사람들이 회피할 수 없는 임무이자 운명임에도 간과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무릇 문인은 잠수함의 토끼여야 함을 게오르규는 일찍이 말하였다. 분연히 일어나 온 동포와 세계인을 향해 어떤 형태로든 소신있게 일갈해야 하지 않겠는가!
 
신동엽 시인은 '껍데기는 가라'에서 통일 문제에 대해 우리 민족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말한다. 그는 남녀가 초례를 치를 때 어떤 가식도 없어야 하듯이 통일에 있어서도 어떤 가식이나 이해타산 없이 순수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모든 쇠붙이, 다시 말해 무기를 버리고 서로를 맞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남과 북이 서로 적으로 대하지 않기를 애절하게 부탁한 것이다.
 
이 시간 미국의 한 도시에서는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참상을 다룬 뮤지컬  '요덕스토리’가 뜨거운 몸짓으로 북한 인권 유린을 고발하고 있다. 이번의 핵실험과 뮤지컬 공연은 북한 실상의 양극단을 보여주는 충격적 요소이다. 요덕스토리의 연출가 정성산은 그러기에 예술인으로 위대하다. 탈북자 출신으로 북한에서 경험하였던 공포 통치와 불굴의 저항 정신이라는 진실을 이 뮤지컬에서 보여주며 현실을 고발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한반도의 마지막 지옥 요덕의 땅에서 자유를 갈망한 그들에게 실낱같은 희망도 사치였다.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오직 저주받은 땅에서 펼쳐지는 갈등과 연민 그리고 사랑이었음을 전한다. 요덕스토리는 확실히 독특한 뮤지컬임에 틀림없다. 레미제라블처럼 19세기의 가난, 수용소, 전쟁을 시대 배경으로 한 게 아니라 21세기 동토의 땅에서 벌어진 사실을 담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하기에 연출가 정성산은 요덕스토리 제작과정의 초인적인 노력에 대해 박수를 받을 만하다. 더구나 뮤지컬 형식을 취함으로써 북한의 인권유린에 대해 관객들의 의식을 깨우치는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지구는 하나가 되었고 이제 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인데 민족 중흥이나 우리 국가만의 발전은 어렵다. 그렇다면 민족의 고유성이나 독창성 그리고 민족주의 이념은 사라져야 하는 것인가? 세계화의 이면에 숨어 있는 강자의 논리에 의해 또 다른 형태의 종속화, 식민화가 될 가능성이 있는 한 맹목적 세계화만을 추구할 수만은 없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백범 김구 선생의 민족주의의 의미를 재 조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려움이 큰 이때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바를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다른 무엇보다도 통일이라는 과제가 있다.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민족'이라는 관점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물론 민족은 피를 나눈 집단만이 아니라 역사를 공유하는 집단이라고 할 때, 서로 단절되고 심지어 서로를 적대시하며 전개되어 온 50여 년의 역사를 메울 방법이 필요하다. 바로 그것이 50년의 100배에 달하는 시간을 함께 해 온 지난 역사 및 공유해 온 언어, 문화를 되새기며 동질감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민족주의가 시대에 역행함을 주장하지만 백범이 주장한 민족주의는 결코 배타적이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역사를 돌아볼 때 서구 제국과 일본처럼 다른 약소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빼앗고 억압하는 '제국주의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피압박 민족들이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해 민족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민족 해방적 민족주의' 이다. 그러기에 전자에 대한 비판 논리를 적용해 우리의 민족주의를 상상의 공동체라고 그 의미를 축소, 비하함은 잘못이란 생각이다. 북한 동포는 우리 민족이다. 부모 형제가 살고 있는 땅이다. 과연 그들을 포기하고 저버릴 수 있는가. 얼마 전 감상한 영화 '태풍'의 주인공 씬(명신)의 절규를 기억한다.
"동무! 개 같은 사실이 뭔지 아지메? 자네하고 나하고 말이 통한다는 사실임메."
이 영화에서 탈북자 씬은 남한의 특수 공작원 세종과의 목숨을 건 결투에서 한 민족임에도 서로 죽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괴로워한다. 왜인가? 한 민족, 한 핏줄이기에 그러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민족 독립을 위한 이념으로, 분단시대에는 민족 통일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이념으로 역사적 소임을 갖고 있기에 민족주의는 굳건히 지켜져야 한다. 더불어 세계화 시대에 새로운 형태의 식민화를 경계하고 인류 평화에 기여함에도 그 순기능이 남아 있기에 민족주의는 여전히 필요하다 하겠다.

우리의 백범선생이 오직 한없이 갖고 싶어하였던 높은 문화의 힘에 대해 생각해 본다. 홍익인간의 기치아래 우리 한 민족이 세계 열강들에 맞서 당당히 문화적으로 우뚝 설 때 민족의 위상은 재고 될 것임을 일찍이 설파하신 것이다. 여기에서의 문화는 '한류'나 '김치' 또는 '한복의 선' 같은 표피적인 것을 말함이 아니다.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를 주창한 것이다. 일찍이 백범은 인류가 불행한 근본 이유가 인의, 자비, 사랑의 부족이라 하시었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을 배양하는 것이 오직 문화라 하였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우리 민족에게서 시작될 때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하였다. 어디에서도 옳은 일과 의로운 일을 행하여 민족의 자긍심을 온 세계에 불어넣을 때 문화의 힘은 세계를 보듬어 안을 것이다. 이질적인 것에 대해 적으로 생각하거나 무기를 들 것이 아니라 배타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것이 곧 통일과 세계화를 동시에 맞는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 정신이라 여겨진다. 남도 북도 깊이 인식하고 이 시대 정신을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에 큰 위기가 왔다. 위기가 곧 기회라 하였다. 북의 정권도 민족의 이름으로 심사숙고하여 행동해야함을 말하고 싶다. 남,북이 교류 과정에서 서로 자기의 이익만 취하려 한다면 민족의 하나됨은 요원할 것이다. 예고된 핵실험이지만 그 파장은 깊고 넓다.북한 정권은 인류 공멸의 원인이 될 핵무기를 하루빨리 이 강토에서 제거 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각 나라마다 손익을 계산하겠지만 무절제한 경제 제재에 무비판적으로 우리가 동참하는 것보다는 북 핵 문제를 보다 신중하게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더욱 절실해졌다. 요덕스토리가 공연을 거듭할수록 북한 인권이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 자명하다. 미국이 북한 인권법의 적용을 확대해 나가려는 시점에서 이 공연이 자국의 안보 위해 북한 인권 문제를 이용하게 될 부정적 시각도 갖게됨은 인지상정이다. 우리는 바란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공격하는 이 형국을 지혜롭게 대처하기를. 하여, 강대국의 경제 논리가 아닌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 인권이 다루어지게 되기를 말이다.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지만 우리는 민족이 하나됨을 소망해야 되며 그러한 결실을 위해 포기함 없이, 분열됨 없이 일관되게 민족의 지혜와 슬기를 모아가야 할 때이다. 사랑과 평화의 힘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