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기억이 납니다. 마음이 조려옵니다. 태풍의 무서움을 놀라는 가슴으로 느낀 일이 있었습니다. 지붕이 날아가고, 학교 가는 유일한 길이었던 다리가 부서지고, 옆집 아저씨가 불어난 냇물을 건너다 유명을 달리 하였습니다. 어린 마음으로 자연의 그 광기를 콩알만한 가슴이 되어, 물바다가 된 세상을 느껴 본 기억이 있습니다.

 농심들은 허탈해하였고 어부들은 찢어진 배를 부여잡고 탄식을 하였습니다. 이런 기억으로 남아 있는 자연의 위력을, 지금 느끼고 있습니다. 걱정이 되었습니다. 다시 전화를 넣었습니다. 오히려 자식놈 걱정을 더 하십니다. 아직도 당신에겐 철부지 아들입니다. 아파트 일 층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기에 걱정이 태산이랍니다.

 잠시 후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흠뻑 젖어 들어옵니다. 옷을 갈아 입히고는 기억 속의 태풍이야기를 잔잔히 들려주었습니다. 학원에 간다는 아이를 그냥 우산만 받쳐들고 가게 하였습니다. 차를 태워주려던 마음을 접었습니다. 아이에게 이 느낌들을 추억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평온한 자연의 고마움을 또한 느끼게 말입니다. 돌아 온 아이는 또 흠뻑 젖었습니다. 우산은 부러져서 못쓰게 되었습니다. 또 옷을 갈아 입히며 생각합니다. 쌓여 있는 옷들은 세탁기의 수고스러움이 있겠지만, 아이에겐 훗날 기억 속 배경 지식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TV를 켜보았습니다. 온통 물바다이고 아우성입니다. 인간의 나약함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생각했습니다.
자연의 움직임은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반드시 이유 있는 활동입니다. 태풍이 몰아닥침은 정화의 힘이 담겨 있는 듯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던지는 참살이의 교훈을 주는 깨우침의 메시지입니다. 오염된 세상을 정화하여 새로운 다짐으로 삶을 영위하라는 지도령 입니다. 자연의 위대함입니다. 아마도 내일은 활짝 개인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맑고 고운 햇살이 새 삶을 비출 것입니다.

 TV를 켜려다 그만두었습니다. 많은 고통과 눈물들을 함께 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태풍이 지난 뒤의 인간 군상들이 내 뱉을 한숨과 어지러운 상념들이 밀려듭니다. 자연의 억센 충고에,정화의 움직임에 대비하고 준비하는 마음들이 이 고통 뒤에는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이 됩니다. 하루빨리 일상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지나가는 '에위니아'를 그저 원망해 봅니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거두어 담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한낱 감정에 치중하는 깨우침이 부족한 인간이기에 가슴이 아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