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느다란 그리움 하나가 불씨를 피웠습니다
옥녀봉을 기억하는 그리움들은 저마다 고운 사랑 머금고서
이 아름다운 단풍 숲 그늘에서 한 마음이 되려 합니다
가슴 메이도록 동무들이 보고 싶음에 요 몇 날이 힘들었음을 고백합니다

사랑의 계절
황홀한 가을날입니다
마당에 붉은 고추 늘어놓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깨 웃음 머금은 채 맨살로 벗들을 그리던 시간이었습니다
추억의 시간을 펼쳐 보리라는 기대감으로 잔잔하게 가슴이 뛰었습니다

우리들의 헤어짐은 자연의 섭리 같았습니다
하여, 그 이별의 겨울은 기억에도 희미합니다
하나였던 우리는 기약 없이 뿔뿔이 흩어져 험난한 길들을 걸었습니다
시대가 주는 고통으로 때론 넘어지고 때로는 깨어지며 서러운 눈물도 흘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릴 굴복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열심히 살았습니다
앞만 보며 달렸습니다
그러다
참기 힘든 외로움이 밀려 올 때면 고독 속에서 그대들을 떠올리기도 했음을 나직이 고백합니다

삶의 절반을 등 뒤에 두고도 무겁다 하며 숨차게 걸어온 길
그 세월들이 모여 어느 듯 30여 년이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입니다
보고 팠습니다
무척이나 그리웠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이 시린 가을날의 아름다운 축가는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벗들의 웃음소리 폴짝대며 멀리 숲 속을 흔들어 깨웁니다
단풍의 향기 되어 깊숙이 스며듭니다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서투른 이별은 한 번으로 족합니다
모든 나이테가 채워 질 그날까지 잊고 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굴레를 틀어 얽히고설켜서 부대끼며 살아갈 것입니다

오늘의 만남은 축복입니다
진정 환희의 날 우리들의 날입니다
아름다운 입술로 사랑스런 눈으로
어제를 떠올리며 힘찬 내일을 이야기합시다
촘촘해 지려는 나이테를 느슨히 풀어놓고서 이 밤이 다 가도록 말입니다
여명이 반기는 그 시각까지 말입니다

우리 그럽시다
하나 되어 사랑을 나눕시다
애틋한 사연들을 봇물처럼 쏟아냄에 심장이 익을 것입니다
눈부신 아침이 열릴 때쯤이면 우리네 심장엔 새살이 돋을 것입니다

노동이 닻을 내리는 휴일 시간이건만
삶의 모습들이 다름에 함께 못한 많은 벗이 있습니다
실타래처럼 얽힌 일상을 훌훌 털어 내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들도 잔잔한 바람결을 타고서 마음만은 동무들 옆자리에 함께 앉아 있습니다
이름 석 자 떠올리면 불혹을 넘긴 그 모습이 소리 없는 파도로 밀려듭니다
삭혀지지 않는 그리움 때문입니다

우리 그럽시다
한 올 한 올 그리움 풀어내며 모두 하나 되어 사랑을 나눕시다
한마음 되어 피어나는 꽃향기를 노래합시다
모두 어우러져 아름다운 굴레를 틀어 나갑시다

우리 그럽시다.




얼마 전 고향 친구들과 30여 년만의 만남을 가질 기회가 있었으나 사정이 여의치 못해 겨우 축하 글만을 보내며 위안을 삼았었다.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시금 펼쳤다. 누군가를 만나서 가슴을 열고 착한 목소리로 정을 나눌 수 있음은 얼마나 행복인가. 그 누군가가 오랜 벗이라면 더할 나위 있겠는가.

그리움이 있었다. 오랫동안 대하지 못했던 친구들이 그립고 그리고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내 고향이 그리웠다. 며칠 전 택배로 보내온 김장김치와 함께 배달된 어머니의 겨울연가는 더욱 그리움이 사무치게 하였다. 하여, 조금은 분주한 일정이겠지만 그들과의 만남을 미루지 말자는 결론을 내렸다. 일을 마무리하니 오후 5시, 조급한 마음이 되었다. 초겨울의 어스름 저녁은 빠를 것이다. 어머니께 전화를 넣어 길떠남을 전하니 화들짝 반기면서도 밤길을 염려하신다. 주중이라 함께 동행하지 못하는 아내의 정성이 담긴 선물을 받아 싣고서 한달음에 고속도로에 차를 올려 달리니 그제야 마음에 안정이 온다.

라디오 볼륨을 올리니 안치환의 소금인형이 잔잔히 흐른다. 노랫말이 주는 의미가 깊단 생각이 들었다. 바닷물이 썩지 않는 것은 3%의 소금이 녹아 있기 때문이라며 깨우침을 전한다. 누군가에게 이러한 의미를 주는 삶이라면 얼마나 값질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이내 어둠이 내리며 갈 길을 재촉한다. 3시간 여를 달려 고향집 어귀에 당도하니 꼬부랑 산길은 오히려 경쾌함을 준다. 서치라이트에 비치는 단풍들이 이미 지고만 낙엽과 더불어 곱고도 화려하다.

그 자리 그곳에서, 자식들 보고픔을 숨기고 그저 나들이 장소가 고향집이기를 바라는 어머니 아버지가 맨발로 반기신다. 자주 들르지 못하는 죄송함을 감추고 반가움만으로 당신들을 대하려 무던히도 어금니를 깨어 문다. 못난 자식 들이닥치면 허기를 채워 줄 요량으로 정성으로 차려내신 늦은 저녁상은 그리하여 참으로 곱기도 하다. 이것저것 물어오는 어머니께 밥 좀 먹게 내버려 두라는 아버지의 질투 어린 일갈에 어머닌 눈흘김을 하신다. 꾹꾹 눌러 담은 머슴 밥을 억지 춘향 다 먹고 트림으로 마무리하니 그제야 흐뭇한 미소를 지으신다. 찻잔을 앞에 놓고 사는 얘기 들추어 들러주니 너무도 좋아라 하신다. 정담은 곧이어 이부자리 위로 옮겨 이어졌다. 이 시간 응석받이 막내아들이 되어드림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에 다른 방에 마련해 주신 잠자리에서 베개만을 들고 부모님 이부자리로 끼어 들었다. 이편저편 번갈아 끼어 들며 긴 이야기로 사랑을 나누었다. 깜박 잠이 들었을까. 새벽에 도란도란 나누는 말소리에 깨어 시계를 보니 새벽 5시다. 노인네들이 잠도 없느냐며 고운 투박을 주고는 밤과는 달리 집안의 묵직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내 동이 튼다. 상쾌한 마음으로 바다를 찾았다. 일출을 맞이하는 새벽바다를 보며 소금인형의 노랫말을 새삼 떠올려 보았다.

아침상을 막 물리고 돌아앉을 때였다.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낚시를 즐긴다는 오래된 친구였다. 떠나오기 전 흘리는 말로 낚시를 했으면 좋겠단 내 말을 귀에 담아두었던 모양이다. 젊은 날 인연이 닿아 오랜 시간 정을 나눈 친구다. 근래 들어 십 수년간은 만나지 못해 그리움만 익혀가던 친구라 반가움이 컸다. 약속장소에서 만난 벗은 삶의 여유가 느껴지는 중후한 중년이 되어 있었다.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미안함으로 포옹을 나누었다. 금세 예전의 모습 그대로 하나가 되어 목적지를 향했다. 그리하여 푸른 섬 가자도를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을 때는 월척을 꿈꾸었다. 거제의 싱싱한 외딴섬에 유유자적하며 낚싯대 드리우고 옛 벗과 나란히 앉고 보니 추억이 새록거린다. 이 낚시꾼은 오늘이 물때가 좋지 않아 고기 구경 힘들 거라며 사전에 연막을 친다. 아니나 다를까. 손맛을 느낄 기회도 주지 않고 바다는 잠잠하기만 하다. 고기가 무언 대순가? 덕분에 살아온 이야기며 살아갈 이야기를 나누며 한나절을 보낼 수 있어 너무도 좋았다. 돌아오며 늘그막에 이렇게 바다에 낚싯대 드리우며 살아가리라고 마음속으로 무던히도 다짐해 두었다. 고기 맛은 보아야겠다는 내 말에, 친구는 푸른 바다가 내다보이는 한적한 횟집으로 안내한다. 근처에 삶터가 있다는 군대 동기를 불러내어 또 다른 반가움으로 셋이서 군대 이야기로 추억을 나누며 고소한 점심을 나누었다. 자주 만나자고 약속을 하여 두었다.

형님댁에 잠깐 들렀다 친구들과의 저녁모임을 위해 약속 장소로 향했다. 먼저, 자리한 친구 몇이 화들짝 반겨준다. 얼마 전에 만난 벗들도 있었고 30여 년 만에 만나는 친구도 있었지만 모두가 그저 반갑고 정겹기만 하다. 이야기 나눔 속에서, 살아온 모습도 살아가는 삶의 모습도 모두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지만, 친구들이기에 보듬어주고 하나가 되려 한다. 눈을 감아보았다. 그들의 마음이 보였다. 중년을 넘기고 있는 그들의 기쁨과 애환과 삶의 무게가 느껴져 왔다. 이야기 나눔 속에 누구나 하나쯤은 아픔을 겪었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미덕인 다른 이를 배려하는 마음들이 순간순간 오간다. 시간이 점점 흘러감에 술에 취하고 사랑에 취해 가면서도 정신은 또렷해지며 가슴은 훈훈함으로 젖어들었다. 살아가는 이유를 알기위해 어디에 자신을 던져야 할지에 대한 생각과 함께.

우정에 취해 새벽 이슬을 맞고서 고향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어머님의 품속으로 들어가지만  벗들의 품도 무척이나 따스함을 느꼈던 하루였음을. 그들이 내게 준 훈훈한 정으로 말미암아 그대들도 내 품으로 안아줄 수 있겠다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벗들이 이를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된다. '소금인형' 노랫말의 의미처럼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친구들의 마음을 함께 나누기 위해 벗들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도 그것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버릴 수만 있다면 좋겠단 생각을 하여 보았다. 시간의 아침은 오늘을 밝히지만 마음의 아침은 내일을 밝힌다고 하였다. 소금 3퍼센트가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듯이 우리 마음 안에 있는 3퍼센트의 고운 마음씨가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옛 친구들을 통해 거두어 담아둔다.

정성으로 끊여내신 얼큰한 동태 찌개로 울렁이는 속을 다스리고 준비된 일정 때문에 귀가를 준비했다. 분주히 움직이는 내 앞으로 어머니는 언제 준비해 두었는지 여러 개 보따리를
내민다. 텃밭에서 손수 가꾼 야채며 쌀자루도 보이고 노랗게 잘도 익은 솥뚜껑만한 호박 한 덩이도 보인다. 손을 잡았다. 이 거친 손 안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꼭 껴안아 드리고 따스한 눈맞춤으로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서는데 마음이 무거워 온다. 펼쳐진 들녘과 앞산을 바라다보니 언제나 거기 그대로 남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진 아까부터 아무 말 않고서 그저 바라보고만 계신다. 이번 나들이에서 마주했던 고향땅, 부모님, 친구들 모두 오래도록 굴레를 틀어 함께하기를 소망하면서 부산행 배에 몸을 싣고 일상으로 복귀하였다. 두툼한 호주머니가 느껴져 손을 넣으니 잘 말려진 고구마 쫀더기가 만져진다.
아! 어머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