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별다른 감응 없이 주어진 삶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느껴오는 각각의 느낌들에 무디게 반응하며 말이다. 법정스님의 벗에 관한 경구를 떠올린다.
"친구란 내 부름에 대한 메아리이다. 좋은 친구를 만나고 싶거든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 사람은 끼리끼리 어울리는 법이다. 그리고 친구의 영향을 알 듯 모를 듯 젖어 든다. 마치 안개 속에서 모르는 사이에 옷이 젖듯이."

몇 날을 청명함을 뽐내던 가을 하늘도 늦더위의 기승 앞에서는 그 자태를 감추고만 늦은 오후, 인터넷상에서 수업 자료를 준비하느라 분주히 오가고 있는데 고향 친구가 반가움을 앞세우고 전화를 걸어왔다. 이런저런 화제들로 이야기꽃을 피우다, 중학교 친구들이 드나들며 정을 나누고 있는 인터넷상의 카페가 존재함을 반가이 알려 주었다. 통화가 끝나고 벗이 일러준 대로 그곳에 들러보니 "입장하려면 중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의 존함을 입력하시오." 하며 어름장을 놓고 있었다. 당황함도 잠시, 이내 복성(?)스러우셨던 보고픈 선생님의 얼굴과 존함이 스쳐감과 동시에 카페지기의 지혜가 고맙게 다가왔다. 이렇게 예 은사를 떠올림을 시작으로 만남을 갖자는 의도가 담긴 듯하여 각별한 정성이 느껴지며 고마운 마음이 되었다. 동기들이라면 선생님을 떠올리지 못할 벗이 없을 정도로 각별한 인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을 것이기에.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그분을 잊고 살아가지 않는가. 그러기에 이곳은 각별한 정이 느껴졌다.

맑은 미소를 머금은 채 반가움으로 그들에게 다가서니 아련한 기억의 벗들이 도란도란 나누었던 흔적들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카페지기를 비롯하여 닉네임과 실제 이름을 연결하는 노력을 끝낸 후에야 그들의 면면이 떠오르며 얼굴 가득 동그란 미소가 떠오른다. 추억이 이렇게도 소중한데 왜 잊고 살아갈까? 추억을 되새기며 여기저기 둘러보니 사소한 즐거움을 주기 위한 글부터 삶의 지침이 됨직한 이야기며 만남의 활성화를 촉구하는 독려의 글과 더불어 안타까운 소식들도 여기저기 남아 있어 서로 희로애락을 나누며 지내고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참다운 벗은 좋은 때는 초대해야만 나타나고 어려울 때는 부르지 않아도 나타난다.'는 보나르의 말이 떠오른다. 아! 지금껏 나는 이 모든 사연들과 멀어져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자책감이 밀려왔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읍내로 도회지로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야 함이 시대의 조류인 냥 그리고 자연의 섭리인 줄로만 받아들였던 시골내기였지 않은가. 몇몇과는 만남도 가졌었지만 대개는 희미한 기억만을 지닌 채 지낸 30여 년의 세월이 그저 원망스럽다. 잠시 눈을 감으니 흙먼지 속에서 함께 뛰놀았던 예 시절이 동그랗게 회상된다. 과연 이들 중 내 존재를 몇이나 기억해 줄 것이며 또한, 어떻게 기억해 줄까? 자못 의구심을 가진 채 인사말만을 남긴 채 황망히 빠져나왔다.

다음날 콧노래를 앞세우고 찾아 들어보니 반겨주는 댓글이 서너 개 꼬리를 달고 있었다. 고맙고 반가운 마음이 되었다. 그들의 사랑이 느껴왔다. 준비한 글을 올려놓고 더한 사랑을 기대하는 마음을 가져 보았다. 다음날에는 촘촘해져 가는 나이테 속에 감쳐 둔 이야기를 들려줌도 그리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이르러 동안의 삶에서의 내 시련도 들추어 내보였다. 측은지심으로 받아들이는 벗들이 고맙다. 되돌려받은 사랑으로 이즈음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시간만 나면 카페에 기웃거리는 내 모습을 보고 큰 녀석이 대뜸
"아빠. 향수병 또 시작이군요."
하며 놀리는 듯 한마디 한다. 가끔은 벗들을 떠올리기도 했음을 나직이 고백하며 보내주는 사랑을 차곡차곡 개켜 담아 둔다. 구름 사이를 나는 파랑새의 마음이 되어서. 단풍의 계절에 있을 총 동기회 발기식 때 축하의 글을 부탁했던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시심이 부족하기에 황급히 거절했으나 친구의 정성이면 족하다는 말에 승낙을 해 두었다. 친구 말대로 부족하지만 벗들에 대한 마음을 담아 보리라는 용기를 내어본다.

둥그런 한가위가 다가오고 있었고 고향에서의 만남, 일명 번개가 추진되었다. 추석 전날 간간이 내미는 달빛을 받으며 삼삼오오 모여들었고 어느새 열댓 명이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러면 만나는 것을 30여 년을 평행선으로만 달려왔었다고 생각하니 적잖이 미련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하나가 되어 둥근 한가위를 만끽하였다. 아름다운 입술로 사랑스런 손으로 서로 어루만지며 나누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 만남이 가능하게 해 준 우리들의 카페가 고맙고 미덥기만 하였다. 이렇듯 일상에서 예기치않았던 어떤 존재가 삶을 충만하게도 하고 희열을 느끼게도 함을 언뜻언뜻 내보이는 애잔한 보름달 아래서 동그랗게 음미하여 보았다. 카페의 존재가치에 의미를 부여하는 벗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동무들이여! 둥글둥글 늘 둥그소서.                                      [200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