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하였다. 고요하다는 표현은 약하기까지 하다. 절기상으로 처서가 지난 지가 여러 날인데, 늦여름 밤은 뒤늦은 더위로 그리하여 도통 잠이 오질 않았다. 도시의 밤거리가 왜 이다지 적막할까. 모두들 어디로 빠져나간 걸까?
이 시간쯤이면 폭주족의 요란함도, 술기운에 뒤섞여 비틀거리는 이도 한 둘은 있을 듯도 한데. 오늘따라 그런 이 마저도 하나 없이 고요하다. 더위에 약한 이에게 이 미동도 없는 여름밤은 침묵으로 엄습한다.

아침나절에는 소나기도 뿌리고 아파트 정원에 있는 배롱나무 잔가지의 흔들림도 있었지만 오후 늦게부터는 그 마저도 가고 없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여름달만 흐르고 있었다. 늦은 밤인가 싶어 시계를 올려보니 막 자정을 넘기고 있다. 냉장고를 열어 얼음 한 조각을 물었다. 그다지 얼얼한 느낌도 없다. 아이들은 꿈에서나마 개울물에 첨벙거리는지 바닷가 백사장에서 모래탑을 쌓는지 미소를 머금고 잠들어 있었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거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선풍기 바람을 조그맣게 하여 놓고는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정말이지 딱 한 오라기의 바람도 없었다.
숨이 턱 막혀왔다.
밤바다가 떠올랐다.
지척의 바다를 향하였다.
늦은 밤바다는 아직도 휘황하게 밝아 있었다. 지금이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인지 잠시 착각이 왔다.
바다는 바람을 안고 사는가? 작게나마 시원함을 가져다 주었다. 자리를 꺼내 바람이 닿을 것 같은 백사장 한 쪽에 길게 펼치고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누웠다. 다 채우지 못한 달은 구름에 가려 숨었다 나왔다를 되풀이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
다 채우지 못한 목마름이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일어서며 두리번거리니 주위는 한적하게 변해 있었다. 다시금 갈증을 느끼며 한숨을 짓다가도 이것이 여름 맛이려니 위로하니 공연히 술술 웃음이 나온다. 내일은 일상의 고달픔을 식혀 줄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날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지니고 내 묵을 둥지로 향했다.
서쪽하늘로 기운 달만이 새벽을 안고 나를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