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이 다가온다.

광복절을 기다림도 좋겠지만 이 날은 일 년에 한번은 치러야 하는 집안의 벌초하는 날이다. 계획성 없이 서로 연락 취해 행하여 오던 연례행사를 매년 이 날로 정하여 놓은 지도 벌써 15년이 되어 가는 것 같다. 뜨거움의 절정인 여름의 중간에 행사를 치름을 반대하는 이가 많았으나, 집안에 공무원이 여럿 있는 관계로 하여 이 날로 결정을 하게 되었다.

내 사촌으로 구성된 정예요원 15명, 뒷짐 지고 물러나 계셔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분의 감시단, 언제인가부터 은근슬쩍 이 그룹에 속해져 버린 나, 참석율이 저조한스무 여섯 명으로 구성된 조카 군단 그리고 다수의 진행요원인 아주머니 여단, 쉰다섯 명 정도의 그야말로 대규모의 집단이다. 김수로왕의 두, 용, 곤 자 돌림의 3대가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다. 바라보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가득하게 만족스런 미소가 가실 줄 모르신다. 이 정도 번창하였으니 당신께선 조상님들에게 도리를 다하였음을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여름의 한 중간이라 이 날 하루는 땀범벅이 되어 곤욕을 치른다. 3개조로 나누어 오후 2-3시경이면 마무리된다. 워낙 조상님이 많고 또 왜 그렇게도 떨어져 사시는지 후손들은 원망도 한다. 풀 깎는 기계의 등장으로 수월해진 작업이지만 그 전에도 작업의 빠르기는 여전하였다. 평생 농군이셨던 아버지의 낫질 솜씨는 언젠가 '풀베기 대회' 거제 챔피언 타이틀을 가졌던 분이고 보니 후손들의 낫질 솜씨도 그렇게 뒤지지는 않는다. 모두들 조상 돌보는 일이라 게으름은 없다. 흩어져 있는 묘소들을 한곳으로 모시는 계획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면 우리네 후손들은 조금 수월하게 조상들을 돌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큰 행사에는 사촌들 친목회가 있어 지원한다. 형제들 몇은 참석하지 못하는 이도 있으나 불참 시 부과되는 과태료가 무서워(?) 빠지는 이는 거의 없다. 끈끈한 정을 느낀다. 일가친척 간의 만남이 어려워지는 현실에서 이러한 자리가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매년 여름휴가를 이즈음 정해 놓고서 고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즐겁고 가벼운데 아내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서울에서의 신혼시절, 여름휴가가 다가와 분주한 마음인데 마실 다녀온 아내가 베시시 웃으며 전한다. 이웃들이 어디로 피서 가냐는 질문에 거제도라고 하였더니 모두 부러워하더란다. 그래서 시댁이 그곳이라고 하였더니 그길 왜 가냐는 말에 한참을 웃었단다. 천혜의 피서지인 거제도이건만 매년 정해져 있는 여름휴가이니 즐거울 리가 없겠다 싶은 마음도 있다. 벌써 15년이 넘게 이러하였으니, 내년에는 다른 휴가계획을 세워야겠다.

늦은 점심을 먹고 나면 물놀이 캠프에 들어간다. 캠프라고 해야 집 앞 바닷가에 천막 드리우고 아이들은 물놀이하고 어른들은 음식 마련하여 둘러앉아 정담 나누고 하는 것이지만 소중하고 즐거운 시간이다. 저녁에는 계모임이 있다. 순번을 정하여 하루 저녁을 책임지고 치러내야 한다. 그래서 즐거움은 이어진다. 올해도 어떤 정담들이 이어질지 기다려진다.

점점 묵어가는 묘들이 많아진다는 지난해 아버지의 말씀이 기억나 씁쓸함과 함께 퇴색되어져 가는 조상 숭배 정신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마음이 된다. 아직은 공자가 살아 있어야 한다고 한다면 잘못일까. 부모 안 계신 내가 존재할 수 없음이 자명하니 말이다. 내 부모님의 부모, 그 부모님의 부모님들인 것을...... .

조상을 기릴 줄 아는, 따뜻한 사회가 되기를 조그맣게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