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통이 굉장했다. 금요일 오후부터 느닷없이 시작된 통증이 토요일엔 심해졌다. 평소에 내 몸에서 보내오는 여러 통증에 대해서는 다소 무감각한 경향이 있었다. 늘 통증과 불편함을 지니고 사는 삶이어서 그럴까. 오랜 병마를 경험한 사람이 지니는 오만이랄까….

그러다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계획되어 있는 일을 하였다. 상비약으로 준비해둔 진통제로 밤을 겨우 보냈다. 새벽엔 빗소리가 들려왔다. 일요일이 되었다. 오전에 아이들과의 계획된 수업을 마무리 하고 나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엄습해 왔다. 휴일이라 병원은 휴진일 것이 자명하다. 한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인근에서 치과 병원을 운영하는 고교 동창이 있는데 이 순간 그의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응급조치하는 방안이라도 물어볼 요량으로 손 전화를 눌렀다. 어찌 된 영문인지 계속되는 신호음에도 답이 없다. 통증은 더해가 또 진통제를 먹었다. 별 효과가 없었다. 이른 잠을 청해 보았으나 잠이 올 리 만무하다. 속담에 ‘치아 건강은 복 중의 복이다.’라는 것이 있었던가. 정말로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그제야 내 미련함에 분통이 터졌다. 고통은 계속 되었고 또 진통제를 먹었으나 치통은 가라앉지 않았다. 냉장고의 얼음을 떠올렸다. 시간은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얼음 주머니를 볼에 대고 마사지를 하였더니 조금 나은 듯하였다. 언뜻 잠이 들었다가 통증에 잠에서 깨니 새벽 다섯 시가 지나고 있었다. 진통제를 먹고 얼음 주머니를 움켜쥔 채 병원 문 열기만을 기다렸다. 9시 30분. 인근의 병원 중에 가장 빨리 진료를 하는 곳에서 서성이다 첫 환자로 진료를 받았다. 의사 선생은 고생깨나 하였겠다며 위로를 한다. 다음부턴 참지 말고 바로 병원에 오란다. 그 충고가 그렇게도 와 닿을 줄이야…….

치통이 가라앉기가 무섭게 원무과 직원인 듯한 사람이 조목조목 치료해야 할 부분을 설명한다. 생각보다 치료비가 만만찮다. 보험으로 안 되는 부분이 많은 것이 치과 분야인 것 같다. 이래서 치아 건강이 복 중에 복이라 하였나 보다. 비싼 치료비를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하나만 봐도 그렇다. 집안 살림 경제가 어려워졌다는 말을 집사람에게 들은 터라 병원 문을 나서면서 걱정이 앞섰다. 보험이라도 적용되면 나으련만…….

보험에 대한 인식이 널리 확대되고 있는 것이 요즘이다.

“동일한 우발적 사고발생의 위험에 직면해 있는 다수인이 사고로 말미암아 생기는 경제적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일정한 과학적 기초에 의해 산출된 금액을 미리 갹출하여 공동재산을 비축하고, 사고가 발생하면 공동재산으로부터 일정한 금액의 급여를 하는 제도가 보험이다”

는 설명을 하던 보험 설계사 말이 떠올랐다. 보험은 위험이전에 마련하는 집단적 위험대비 방안일 것이다. 사람은 생존하는 동안 끊임없는 사고 위험에 직면해 있기에. 다른 나라에 비해 의료보험 제도가 잘 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 정책적으로 어려움이 있겠지만, 치과 치료 분야에도 더 많은 부분 의료 보험이 획기적으로 적용되어 서민들이 복 중에 복을 누리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된다.

다시금 친구를 떠올렸다. 전화를 하니 반가이 맞아준다. 사흘간의 격정을 간단히 토로하고 치료를 요청했다. 사람 좋은 목소리가 수화기 건너편에서 위로의 말을 건넨다. 누구보다도 사흘간 감내한 내 고통을 잘 알기에 더욱 그러하리라. 조금은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치료를 받겠다는 생각이 있음을 감추고 내원 일정을 잡았다.

지천명을 앞둔 우리 나이쯤 되면 모두가 제각기 한 분야에서 터를 잡고 사회에 이바지하며 살아간다. 벗들을 보아도 동안의 노고가 느껴진다. 시골에서 나서 학창시절을 보내며 동무라는 이름으로 정을 나누었고 다시금 사회에서 사랑으로 엮여 살아가기에 기쁨이 크다. 아버지는 보물이요, 형제는 위안이며, 친구는 보물도 되고 위안도 된다고 하였다.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인생을 갖는 것이라고도 하였으며 사랑이나 지성보다도 더 귀하고 나를 행복하게 해 준 것이 우정이라고도 하였다. 그러기에 동안의 일구어 놓은 것을 서로 나누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여 본다. 자신의 해당 분야에서 벗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도움 받고 도움 주는 것. 어쩌면 이것이 어떠한 보험보다도 효용성이 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처럼 보험은 인위적인 반면, 친구는 어쩌면 자연 발생적이리라. 그럼 나는 받기만 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봉착한다. 내가 이루어 놓은 것이라고 해 보아야 딱히 내세울 것도 없으니 답답함이 엄습한다. 난 글쟁이고 독서 전문가이며 아이들에게 논술을 지도하고 있다. 하여, 일상의 느낌을 이렇게 글로 남겨둔다. 언젠가 벗들에게 한 권의 책을 선물하기위해……. 더불어 벗들이 나에게 아이들을 보내준다면 무언가 도움을 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하여본다. 내세울 내 보험 약관이 그 뿐이기에…….

약속한 날, 병원에 가서 긴 시간 치료를 받고 원장실에서 정담을 나누고 나서 친구는 일정에 바빠 수술실에 들어갔다. 병원 문을 나오면서 진료비를 계산하려는데 원무과 직원이 손사래를 친다. 그러면 안 된다고 계산하래도 막무가내다. 친구라고 그러면 되느냐며 다시금 카드를 내밀어도 웃으며 친구 덕 좀 보시란다. 친구 녀석이 언질을 해 두었나 보다. 친구보험(?)을 적용했나보다……. 눈을 맞추며 한마디 덧붙인다.

“미안해하지 마세요. 받을 만큼은 받을 거니까요, 호호호.”

얼굴만큼이나 목소리가 참 곱고 상냥하다. 차 문을 열면서 올려다본 하늘은 봄기운을 발산하느라 한창이다. 

친구보험이라. 또한 흐뭇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