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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 연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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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잠이 들었다가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옆 지기가 곁에서 낮은 코골이를 하며 자고 있다. 흐트러진 모습으로 곤히 잠 든 아내를 보고 멍해졌다. 잠시 후 다시 고개를 돌려 아내 얼굴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한참을 보고 있자니 여러 생각이 교차하였다.
참 곱고 예뻤었는데…….
학창시절 많이들 부러워하던 짝꿍이었는데…….
무던히도 고생을 시켰구나…….
못난 남편에게 고운 정이 남았을까…….
아직도 날 사랑할까…….
아마도 그놈의 미운 정 때문에 함께 하겠지…….
한때는 힘들어하는 모습에 훌훌 자유롭게 놓아 주고 싶었는데…….
우리 부부가 결혼한 지 어느 듯 열아홉 해가 되었다. 유리그릇 같던 내 여자가 뚝배기가 되어 있다. 참으로 마음고생이 깊었을 것이다. 결혼한 이듬해에 내가 건강을 잃었으니 아내의 삶을 말해 무엇 하랴. 그래서인지 이제 투명함보다 속 깊은 사람으로 변해있다. 우리 부부를 아는 사람은 모두 아내를 칭찬한다. 그녀의 고충의 시간을 알기에 그러하다. 어느 날 친구와 마주한 술자리에서 아내를 위로하는 마음을 내비치던 말이 생각난다. 마누라에게 잘 하라고. 나도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섭섭하면서도 친구가 고마웠다.
근래 들어 가끔씩 삶의 힘겨움에 짜증도 부리고, 짧은 일상탈출을 요구하기도 하는 아내가 가여워진다. 아내 안에는 무엇이 있으며 그이는 무엇으로 살고 있을까…….
사랑은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느낌이고 배려이며 관심이니까 내 아내 안에는 분명히 사랑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아닌 사랑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리라. 신은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며 지혜를 얻으라고 자신에게 진정 필요한 것을 알게 하는 능력은 뺏고 사랑을 준 것이리라.
이러한 생각들을 떠올리며 바라보고 있는데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아내가 뒤척이더니 개진개진한 눈으로 바라본다. 자다 말고 무슨 일이냐는 뜻을 담아 쳐다보더니 이내 손을 뻗어 안아준다. 이 사람의 사랑은 평범하고 작은듯하지만 한결같고 촛불 같다. 가끔은 어려움을 드러내지만 여전히 따뜻하다. 이불을 여며주고는 거실로 나오니 뽀얗게 새벽이 열리기 시작한다.
냉수를 찾느라 냉장고 문을 여니 아내가 사다 놓은 콩나물이 눈에 들어 왔다. 콩나물은 정성이 담긴 물만으로도 튼튼하게 자란다. 아침 상차림에 올려 질 시원한 국물을 떠올렸다. 하나를 집어 콩나물 모자를 벗기니 머리가 둘로 벌어진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그이의 사랑이 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의 한결 같은 사랑은 아마도 두 개의 방에서 나올 듯한데, 하나는 배려와 관심이 가득한 사랑방이고 조금 더 큰 방에는 더불어 살아가야 할 운명이란 생각에서 나오는 체념 섞인 미운정이 가득한 방이리라 여겨진다. 아마도 후자가 그이의 삶을 이끌 것이다. 이 고운 정, 미운 정이 하나로 합치는 데는 신이 건네준 두 아들이 단단한 노릇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맏이는 우등생이고 막내는 개구쟁이지만 조화롭게 자라면서 갖가지 정으로 우릴 묶고 있으니까…….
한 가정이라는 동그라미가 아무 일 없이 목적지까지 가면 좋겠지만 어디 삶이란 것이 그런가. 이가 빠지고 모가 생기고 웅덩이에 빠지기도 하면서 굴러간다. 이 생채기가 인생사며 사는 맛 아니겠는가? 온전한 동그라미는 주위도 이웃도 보고 느낄 겨를이 없지만 이 빠지고 모난 동그라미는 느리게 굴러 가기에 주위의 모든 것과 관계하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예쁘고 좋기만 한 고운 정보다는 귀찮지만 허물없는 미운 정이 더 정겨운 것은 이 때문이리라. 좋아한다는 감정은 언제나 고운 정으로 출발하지만 미운 정까지 들지 않으면 그 관계는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해본다. 왜냐하면 고운 정보다 미운 정이 훨씬 너그러운 감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운 정보다 미운 정은 약간의 마음의 상처를 받아 속이 끓고 상해서 괴로울 때, 누군가 한쪽이 중심을 잡고 조금 더 참아내고 조금 더 너그러워질 때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삶에서의 고난은 미운 정을 북돋우고 사랑을 키워내는 좋은 보약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몸담은 가정이 이렇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행복을 유지하는 것은 단연 아내의 미운 정 때문일 것이다.
이른 새벽의 사유는 훈훈했다. 대문을 열고 신문을 주워들었다. 눈에 들어오는 기사는 없다. 신문을 뒤적이다 방으로 들어가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드니 따스함이 온몸으로 퍼진다. 아직도 그녀는 꿈속을 헤매는지 옅은 미소를 짓고 있다. 사랑스럽다. 내 가정의 버팀목이면서 지지대인 이 여자와 온갖 정 나누며 정성으로 살아가리라. 오늘의 새로운 태양을 맞이하여 느림으로 더불어 걸어가야 할 것이다. 내 삶의 의미이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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