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의 여유로 여러 날을 고향에 머물면서 휴식을 만끽하였다. 그곳에서 이미 자연과 관계하며 그를 닮아 별다른 욕심 없이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들을 통해 여물지 못한 내 삶을 깊이 사유해 보는 반성의 나날이었다. 또한 봄날임에도 낙엽 굽는 냄새를 풍기는 어머니와 함께하면서 동안의 희생을 느끼며 불효를 생각했다. 그 굽어진 등속엔 아직도 자식에게 줄 사랑이 남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느티나무처럼 큰 마음자리를 펼치며 이것이 사랑의 참뜻이라며 마음 깊숙이 파고들게 한다. 살면서 자기 몫을 다한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슬픔마저 순간 잊게 한다. 이 이후의 슬픔은 뒤를 따르는 자의 몫이요 무게임을...... .

내 고향 거제도는 바다뿐 아니라 산과 들녘도 풍요롭기만 하다. 이 모든 것과 관계하며 살아왔기에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들 모두 자연을 닮았다. 인간이 자연을 꿈꾸는 순간 인간은 자연이 될 수 있음을 느낀다. 머무는 동안 마주한 바다는, 결코 오를 수 없음을 알면서도 늘 육지로 달려든다. 누군가가 기다리는 줄 알고 온몸을 부수며 애를 태운다. 이를 보며 미래는 머무름 없이 다가오고 현재는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음을 깨우치며 바다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 오래도록 나와 관계한 고향 바다는 그 자리 그대로 앉아 사랑을 전한다. 알고 보면 관계처럼 중요한 것도 없다. 우주의 온갖 것이 관계로 인하여 존재한다. 어떠한 것도 고립 속에 존재할 수 없다는 진리를 거두어 담으며 혼자서 무엇을 해낼 수 있다는 오만과 착각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다에 갔다. 내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든 바다는 나를 청한다. 손 전화를 들었다. 열여덟 번째 생일을 맞는 내 아들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파도의 몸부림이 오히려 나를 침묵하게 한다. 너의 흔들림으로 인해 내 속의 고뇌가 사라짐은 너로 인해 위안이 됨이다. 내리는 봄비마저 침묵으로 안아 들여 고요히 잠재우는 너는 어떤 힘을 지녔기에 이토록 위대한가. 영원한 내 영혼의 안식처여.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파도를 닮은 내 사랑 아들. 아들이 태어난 날 이 아침, 바다에 서서 편지를 쓴다. 요즘 많이 힘들지. 온 정성을 다하는 아들을 떠올려보며 미소를 지어본다. 고맙고 자랑스럽다. 뭍으로 오르려는 파도처럼 준이도 주어진 시간을 도전의 소중한 시간들로 채우길 바란다. 수년 전 오늘 넌 기어코 태어나 우렁차게 이 자연 앞에 나타났다. 아빠가 바다를 사랑하는 것처럼 아들을 무척 사랑한다. 기회는 늘 있는 것이 아니니 온 힘을 기울이자. 아자!

*곁에서 축하 못해줘서 미안해. 기숙사 친구들에게 축하 많이 받아라. 사랑한다.”

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파도 소리에 맞추어 전송 버튼을 누르니 편지가 전달되었다. 흐뭇한 마음이 되었다.

가늘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클로버 군락이 있는 곳으로 가며 ‘행운’이란 말을 떠올렸다. 그러나 옷이 촉촉이 젖어 올 때까지 눈을 동그랗게 하고 찾아도 행운의 네잎 클로버는 보이지 않는다. 막 일어서려는데 세 잎이지만 자주색을 띤 클로버가 보였다. 예뻤다. 그래서 꺾어 책갈피에라도 끼우려고 생각하다 마음을 바꿨다. 내 소유욕 때문에 누군가는 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을 것이고 더불어 그의 존재 가치를 내가 가져갈 권리는 없겠기에 그냥 일어섰다. 소유양식보다 존재양식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내일 또 오면 되리라.

다음날 햇살이 내려앉기 시작한 초록 바다를 다시 찾았다. 옛 추억이 스쳐가며 생각이 깊어졌다. 시인이 되어본다.

함께 슬퍼하고 사랑하고

열정을 삭이던 곳

반겨 들어 휴식을 청한다

힘든 삶도

무거운 고독도

너에게 꺼낸다

너는 넓기도 하구나

스르르 한 번의 몸부림으로

편안함을 주는구나

너는 기억하니

옛 추억을

젊은 날 못다 나눈

그 쓰라림을

아! 옛 날이여

뜨거운 열정을 삭이지 못해

너의 품에 뛰어들었을 때

억세게도 밀어내었지

활화산처럼 터져 나온 가슴 울림

그 고통을 삭이지 못해

난 울었었지

너에게 안겨...

기억나지

돌아와 앉은 눈앞의 너

뛰어들어 안기고 싶어도

미안하다 친구야

열정이 부족해

나이 들어 가나보다

나의 친구 소동 바다여

다음에 마주할 땐

손이라도 잡자꾸나

벗이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사람은 앞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등에 지고 있는 모자람을 공유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터이다. 하여 마주한 친구의 부족함을 찾으려 하여도 온통 넉넉함뿐이다. 자연을 닮아 있는 그는 내 모자람을 안아주기만 할 뿐이다.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을 갈증에 겨워 살아가는 나는 유유자적 살아가는 친구를 대하며 가슴마저 작아짐을 느낀다. 바다가 주는 넉넉함을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 여러 벗이 모여들어 훈훈한 정을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이 피었다. 내 나이 더하여 고향 찾아 살아갈 때 고향산야 거닐며 지금처럼 벗들과 어울려 늙어갈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여 본다.

몇 날을 머무르며  풀 냄새와 그리고 향긋한 바다 냄새가 어우러진 고향에서 존경하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했다. 더불어 기울이는 소주잔에 담긴 벗과의 만남으로 홀린 듯 흘려보내고 계획한 날이 왔다. 어느새 내 마음이 썰물이 된다. 올려다본 하늘이 맑고 푸르다. 어느새 여러 보따리에는 무엇이 담겼는지 줄을 서서 기다린다. 사랑을 차곡차곡 개켜 차에 싣고 또 이별을 이야기한다. 언제든 오고 싶음 오라며 손사래를 하는 어머니 손이 곱기만 하다. 마지막으로 내 바다에 들러 깊은 들숨으로 진초록을 담고서야 꽃보다 더 아름다운 이파리들이 너울거리는 바닷길을 뒤돌아 돌아가는 길 위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