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내 의지와 달리 진행된 일에 흥분한다. 내 행동의 조절 기능이 방해를 받는다. 왼팔에 힘이 들어가며 불끈 주먹을 쥔 손이 마구 떨리기 시작하더니 흉하게 일그러진다.  아! 너는 장애를 가진 몸이구나...... 오른손으로 다독거리며 안정을 바라는 마음을 보낸다.

휴식을 위해 근처의 송정 바다를 찾았다. 포근한 햇살이 내려앉은 겨울 바다가 반겨준다. 오늘따라 한 점 바람도 없이 커다란 호수인 듯 잔잔하게 다가온다. 연인들이 시린 바다를 배경으로 여유를 즐기는 모습들이 아름답기만 하다. 겨울의 한 복판인데 벌써 봄을 만난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오후다. 자연의 혜택을 잠깐 누렸을 뿐인데 이내 평온이 찾아든 마음으로 일상으로 돌아온다. 내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조금은 부족하게, 느리게 주위를 돌아보며 살아가는 지혜를 준 지금의 나의 육체적 현실이 행복 하노라고 자위도 하여보지만 그보다는 안타까움이 크다는 것을 숨기기는 어렵다.

인간의 신체 중에서 아직까지도 정복하지 못한 신비의 영역인 뇌. 난 뇌에 대해 관심이 많다. 젊은 날, 뇌동맥류파열이라는 병명으로 장애를 가지고 살기에 뇌에 손상을 입어 육체적 불편을 겪는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리며 살고 있다. 하시라도 빨리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져 원래의 건강한 모습들을 되찾기를 바라는 동병상련의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기 때문이리라. 요즘 여느 집 서가를 보아도 뇌 관련 서적이 한 두 권쯤은 눈에 들어온다.  서점에 들르면 관련 책자를 들추어 보는 것이 버릇이 된지 오래다. 자연스레 뇌에 대한 지식은 남다르다.

모든 동물가운데 뇌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은 동물이 인간이라고 한다. 1.350g정도로 체중에 대한 뇌의 비가 가장 높다고 한다. 몸무게의 약2%정도의 무게이고 작은 수박 크기의 이 뇌 속에서 펼쳐지는 세계는 너무나 넓고 깊어 끝이 없고 아무리 파내어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거대한 우주에 버금가는 무한한 세계가 이 속에 있다는 것이다. '뇌 내 모르핀'이라 불리는 호르몬은 생리학 분야에서 풀어내려는 최대의 연구 과제라고 한다.

몇 년 전, 동양 고유의 건강법이 이 호르몬 분비를 원활하게 하고 뇌 손상 부위의 회복에 효과적이라는 권유에 '뇌호흡 수련' 을 하였었다. 부동심의 결여로 인해 지금은 쉬고 있지만 2년여 정도의 수련으로 어떤 가시적인 몸의 변화는 달성하지 못하였지만 심성의 변화는 가질 수 있었기에 또한 효과적이었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상상할 수 있다. 상상은 인간의 가장 고차원적인 뇌의 기능일 것이다. 상상을 통해 한눈에 펼쳐진 뇌를 볼 수 있었다. 백회를 통해 신선한 기운을 받아들여 뇌 구조물 하나하나에 이 기운을 보내 정화하는 훈련도 하였다. 좌뇌, 우뇌 그리고 연결고리인 뇌량 이어서 소뇌 간뇌 중뇌 연수 척수에 신선하고 맑은 기운을 보내고 나면 금새 맑은 정신이 됨을 경험하였다. 상상으로 손상된 뇌 부위를 바라다보며 생각의 손으로 수술의 상흔을 어루만져본다. 뇌내 혈관 줄기가 끊어져 있음을 느낀다. 놀랍게도 주위의 가느다란 신경세포들이 빨간 피를 보내주며 활동하고 있다. 내 뇌는 이웃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랑으로 인해 걸을 수 있고 사유할 수 있으며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뇌내 사랑'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 위대한 사랑 앞에 나도 모르게 울먹였던 기억이 있다. 그 어떠한 것도 사랑하며 살라는 가르침이다. 무한히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다.  요즘도 가끔씩 행하는 뇌 속 상상여행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현대인은 많은 질병으로 시달리고 있다. 의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고칠 수 없는 병이 훨씬 더 많다고 한다. 특히 뇌 손상에 대한 병은 그 극복의 방법이 아직은 많이 미흡한 듯하다. 이러한 현실이니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인간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살아가는 지혜가 무엇보다도  절실하다는 생각을 한다. 건강에는 자만도 없어야 하며 특히 예방적 습관이 필요함을 감히 말하고 싶다.

지난 12월 20일자 뉴스를 보며 얼마나 뛰는 가슴이 되었는지 모른다. 미국에서 뇌졸중 관련 수술이 성공적으로 행하여졌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하며 기대를 가져 보았다. 하루빨리 일반화되어 우리에게도 그 혜택을 받는 날이 오길 바라는 마음이다. 느림의 미학을 즐겼으니 이제는 뜀박질을 정말로 하고 싶다. 내 아이들 손을 잡고 운동회에 참석하여 뛰어도 보고 줄다리기도 하고 싶다. 이 바람이 상상이 아닌 현실화된 즐거움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황우석 교수가 한때 황홀한 희망을 선사하였다. 난 밤을 지새우며 실험대상에 선두그룹으로 접수를 하였다. 다음날 실험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더 중한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는 통보에 안타까웠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그러나 이도저도 아닌 실체 없는 연구조작이 세상에 알려진 그 날, 그 절실했던 마음이 물거품이 되던 그 날, 뉴스 보도가 날 울게 만들었다. 어디 나 뿐이랴. 얼마나 많은 뇌 관련 질환자들의 바람이었는가? 다시금 도덕적 결여 없이 연구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생을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날 난 나의 뇌를 관련 연구기관에 보낼 생각이다. 그리하여 젊은 날에 과로로 인해 뇌출혈을 당한 사람이 인고의 삶을 마감했을 때 어떤 형태인지를 보여 주어 연구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많은 후손들이 나와 같은 신체적 고통 속에서 생활하지 않는 그 날이 오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내가 태어났을때보다 한가지라도 나아지고 나로 인해 한 사람이라도 웃게 해 주었다면 삶의 의미는 있다고 노래한 에머슨의 싯구가 떠오른다. 이 생각을 아내에게 넌지시 말해 두었다. 밝아온 새해에는 기적도 헛된 꿈도 없이 그저 성실하게 무엇인가를 위해 열심히 해야 하리라. 그리하면 아름답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