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선인의 금언 중에서도 ‘무감어수 감어인(無鑒於水 鑒於人)’이라는 말을 자주 꺼내본다. 자기 안에 머물지 말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비추어 부족한 점을 채워 나가라는 가르침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만나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의식의 전환을 꾀하게 됨은 큰 기쁨이다.

열 명 남짓 둘러앉은 작은 강연장에서 마주한 그는, 다소 거친 어투로 연신 공감을 유도하며 필자로 하여금 교육에 대한 가치관을 돌아보게 한다. 일일이 미소로 눈을 마주하며 쌍방향 강의를 마냥 즐기고 있는 듯하다. 청중이 많은 강연도 좋지만, 이러한 작은 모임이 좋다며 애써 초대한 측을 감싼다. 강사는 부산 국제 어린이 영화제 위원장이다. 영화제의 저변 확대를 위한 방안으로 소규모 모임을 찾는 것이 오히려 좋다며 겸손함을 보인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무릇 한 사람의 변화로부터 시작됨을 말하려는 듯하다. 그는 넌지시 나쁜 어린이가 많은 세상이 되어야 함을 강변한다. 그래야만 기득권의 필요에 의해 만든 제도에 파묻혀 살아가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가치관이 뚜렷한 어린이가 많아져야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전하려 하는 듯하다.

사)독서문화재단에서 준비한 이 자리에서 위원장은, 태생부터 영상세대인 어린이에게 영상언어를 읽고 쓰게 하는 것은 제도 교육 속엔 어디에도 없다며 한탄한다. 우리 학교 교육은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줄기차게 좋은 조건을 갖춘 우수한 대학을 가야만 한다고 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한한 재능을 지닌 아이들이 이러한 교육제도 아래 매몰되어 서서히 모든 재능을 잃어간다는 의미이다. 교과서적인 아이들만 수용하려는 제도적 모순이 낳은 당연한 결과라고 아쉬워한다. 아이들이 어른 말에 순종하면 착한 아이가 되고 실수나 잘못을 하면 나쁜 어린이가 되는 현실이 아닌가. 아이가 때론 잘못하고 실수하는 것이 창의력 발휘에 근간이 됨에도 말이다. 이러한 교육 잣대가 창의력을 빼앗아 간다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부모가 공부하기를 강요하기보다 나도 공부에 그다지 소질이 없었다고 고백함으로써 자신이 공부를 어려워하는 게 유전이라고 말하는 아이의 밝은 얼굴을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아닌가…. 태풍이 몰아친다는 예보에 일찌감치 울타리 안에 가두어 두는 것보다 자연의 거친 몸부림에 맞서 인간의 나약함을 경험하게 함도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창의성이 근간에 화두다. 창의성은 존재하지 않는 사물의 필요성을 남보다 먼저 찾아내는 자질이다. 그러기에 인간 생존의 지혜가 바로 창의성이다. 대한민국 현대 역사에서 창의성은 키울 수도, 필요성도 없었다. 오욕의 일제강점기는 민족의 창의성이 극히 훼손된 기간이었고 해방 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는 창의성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으며 60년대부터 개발을 부르짖으며 견고한 위계질서의 리더십이 발휘되던 시기에는 창의성은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동안의 높은 교육열이 순기능을 지닌다. 열악한 조건인 한국이 경제 10위권에 도달한 것은 분명 높은 교육열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고 있고 창의성을 요구함도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전의 우리 역사에는 창의성이 마음껏 발휘되었다. 이는 독창성을 유난히 강조하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되는 수를 보아도 증명되는 바이다.

이러함에도 어머니 손잡고 교수에게 학점을 따지러 가는 세태인 작금에 이르러서는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그 대학생에게 기대할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맨 위에 수학, 언어, 과학이 위치하고 그 아래 인문학이 그리고 맨 나중이 예술인 현실에서 창의성을 언급하는 자체가 사치이다. 우량아, 우량주가 대세인 시대에 추억이 많은 아이, 의문투성이 아이,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들이 다양한 꿈들을 실현하는 사회를 꿈꾸어 보아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지금은 다양한 성공이 있음에도 그 잣대가 획일화된 사회임을 부정하기 어려운 것 아니겠는가. 몸은 단지 이동 수단으로만 활용되고 머리만 키우는 교육 때문에 학습능력은 오르지만, 창의력은 저하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 몸으로 하는 예술이 창의적 활동의 모태란 의미이다. 창의력을 새로운 가치를 끌어낼 수 있는 독립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는 프로세스가 되기 위해서는 머리와 아울러 몸을 같이 써야만 한다. 이러해야만 훌륭한 재능 지닌 아이들이 도래하기 시작할 것이다. 지성은 추상적이며 동적일 때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될 수 있기에 그러하다.

21세기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가치관을 바꾸어야 한다. 아이의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이는 부모다. 농부는 농사를 품앗이에 일임하지 않는다. 창의성은 교육이 아닌 훈련대상이며 그 기간도 청소년기 이전에 종료된다 한다. 어린이를 학원이나 과외교사에 맡길 것이 아니라, 관찰이 중요한 시기에 눈빛을 나누며 함께 호흡하고 그들의 특징과 소질을 찾아내어 서로 나누며 교감하여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 유망한 분야에 관련된 학과나 이가 개설된 유명 대학에 보내기 위해, 아이의 개성은 무시한 채 사력을 다하는 부모는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멀지도 않은,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는 10년 후가 되면 유망직종들은 쇠퇴기로 접어들 것이다. 창의성이 요구되는 시기가 도래할 것은 자명하다. 앞으로 어떤 세상이 올지는 예상하기 어렵다. 이런 예상치 못한 환경에 살아남을 아이들은 창의성을 지닌 나쁜 아이들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채워진다.

 강연은 막바지로 치닫는다. 2050년경의 내 아이를 상상해 보라고 한다. 어디서나 비슷한 광물을 얻기 위해 지구를 깎아 내는 것처럼 우리의 교육제도가 아이들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느냐고 일갈한다. 우리 아이가 40년 후에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공교육제도가 변화되어야 한다며 영상언어를 읽고 쓰는 것이 활성화되어야만 어린이가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에 발언하고 이웃과 함께 창조적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며 결론에 이르고 있다. 그러기에 능동적인 태도, 창의적 사고를 주기 위해 추진한 것이 어린이 영화제라고 말한다. 기득권에 굴하지 않고 자신 생각을 당차고 발칙하게 그리고 거침없이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무조건 순종 않고 항변하는 나쁜 아이들이 많아야 한다고 강변한다. 어린이들과 더불어 세상을 바꾸어 보려는 한 사람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영화제 마스코트인 ‘비키’를 앞세우고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의 창의력을 향상하는 매체로서 이 어린이 영화제가 활용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지척의 송정 바다를 찾았다. 거친 파도를 고스란히 받아들여 촉촉이 젖어가는 수많은 모래알은 새로운 기운을 얻는다. 우리 아이들처럼… .
상념에 젖는다. 고난을 최고의 가치로 승화할줄 알고, 자기만의 철학을 지니고 예술을 사랑하며 사회 부조리에 거침없이 저항하여 변화를 꾀하는데 앞장서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부모님의 은혜가 한이 없음을 생각하고 자연의 소중함을 생각할 줄 알며 내가 속한 국가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더불어 이웃이 있음에 내가 존재함을, 그리하여 모두와 더불어 살아가야 함을 생각하는 창의적 따뜻함을 지닌 나쁜 어린이가 많은 세상을 그려본다. 더불어, 제도적으로 확립되어 가는듯한 입학사정관제가 학업성적이 우수한 아이들 위주가 아닌 도입취지에 걸맞게 나쁜 아이들을 많이 선택해 그들이 생각하고 꿈꾸어 온 바를 사회에 나가 실현할 기회를 제공해 주는 방향으로 정착되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더불어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은 책들이 많이 출판되어 교육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전환되었으면 참으로 좋겠다. 변화한 교육 가치관을 주위의 한 사람부터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나부터 실천함으로 시작될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