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씨외전(韓氏外傳)에 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란 경구가 있다.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효를 다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뜻으로 안다. 삶이 힘겨울 때마다 우리는 늘 뭔가 특별한 그 무엇을 찾는다. 그러나 소중한 것은 언제나 평범하기 그지없다. 공기와 물의 소중함을 망각하듯이 부모의 사랑을 잊고 살지 않는가.

받는 이보다 주는 이가 더 기쁘고 행복한 것이 선물임을 알고 있다. 그러기에 희열로 충만한 나날이었다. 올해가 사랑하는 어머니의 팔순이다. 막내가 조촐하게나마 산수연을 열어 드리고 싶었다. 하여, 가족 간 소통의 창인 인터넷상의 가족카페에 이러한 마음을 내보였다. 마음을 정하고 알린 터라 바빠졌다. 생신날이 여름 끝자락이라 봄부터 계획을 세우고 하나하나 진행하여 나갔다. 어머니가 행복해 하실 것을 떠올리니 마냥 행복하였다. 지인 소유의 산장도 예약해 두고 정원이 아름다운 식당도 알아보고 부모가 좋아하실 음식도 눈여겨 보아 두었다. 그리고 1박 2일 동안 머물며 필요한 물품 목록을 꼼꼼하게 메모한 후 부담스럽지 않게 육 형제에게 골고루 분담하여 정하고 보니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졌다. 순간, 무언가 의미 있는 선물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근처의 상패가게가 생각났다. 부모님의 동안의 노고에 감사드리는 마음 담아 드리면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부모님을 떠올리며 마음을 담아 보았다. 어려운 시대에 삶을 영위 하였던 두 분의 인생 여정이 사뭇 애절함으로 다가왔다. 갑자기 눈물이 흐를까 봐 쪽지에 담아 전하였다.

“ 감사패

아버지의 산, 어머니의 바닷속에서 저희 육 형제는 머물렀습니다. 너무 앞만 보며 살아오신 부모님을 저흰 슈퍼맨인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로서뿐 아니라 어려운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사신 노고와 정성을 존경합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두 분의 희생을 저희 형제들은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어머니 팔순을 맞아 그 고마움을 이 패에 담아 전합니다. 사랑합니다.    -육형제 드림 ”

예쁜 모양의 고운 옥 바탕에 정성을 담아 새기니 왠지 코끝이 메어왔다. 알차고 뜻깊은 날을 위해 이런저런 궁리 하며 날을 보냈다.

유난히 무더운 2010년의 날들이었지만 견딜 만하였다. 선물을 드릴 기쁨이 기다리기에….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는 형에게서 침통한 음성을 담은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여 병원에서 수술하고 중환자실에 계신다는 것이다. 만성 뇌경막하혈종으로 뇌에 피가 응고되어 다른 뇌 부위를 네 곳이나 압박하여 수술이 불가피하였다는 전갈이었다. 수술이 잘되어 지금은 회복 중이라고 말하였지만, 수화기를 내리니 멍해졌다. 막내가 지천명을 바라보니 이제 부모 늙어 자식과 이별을 준비하는듯하여 입술이 말라왔다. 여든을 훌쩍 넘기신 어른이지만 평소 강건하셨기에 늘 한결같으리란 생각이었다. 급히 일정을 조정하고 한달음에 고향으로 향했다.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가 반긴다. 아버지가 아니 계신 고향 집은 일간 낯설음으로 다가왔다.

병원에 당도하니 다행스럽게도 의식을 회복하여 눈물이 어린 막내 얼굴도 알아보시고 멀리서 괜한 걸음 하였다며 야단부터 치신다. 늘 그랬던 것처럼 강건함을 내보이신다. 그제야 안심의 날숨을 내쉬며 거친 손을 잡았다. 그제야 온화함으로 아버지는 괜찮다며 이런 모습 보이기 싫었다며 말끝을 흐렸다. 슈퍼맨인 줄 알았던 내 아버지도 이젠 많이도 늙으셨구나 하는 생각에 울컥 서글픔이 몰려왔다. 밝은 표정이 아버지께 큰 선물이란 생각에 밝은 낯빛으로 위로를 드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다. 노인네들이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은 말 상대자인 것을 알기에 조용히 들어 드렸다. 주자 10회 중 불효부모 사후회(不孝父母 死後悔)란 말이 생각남은 왜일까……. 동안은 하시는 말씀을 건성으로 들었던 것 같아 반성하게 된다.

이튿날 발걸음을 돌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또 다른 비보가 전해 왔다. 어머니께서 건강이 악화하여 병원에 입원하였다는 것이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전갈에 마음을 놓았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이제 부모님 늙어 기운이 쇠잔하여 자리를 보전하시니 서글프고 마음이 아프다. 영원히 함께 할 수 없음이 진리라지만 조금 더 건강하게 우리와 함께 하여 주면 좋겠다. 죽음은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이기에 준비하고 죽는 죽음은 아름다울 것 같다. 부모님 생애를 멋지게 정리해 드리는 것이 자식으로서 도리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왠지 또 마음이 아려온다.

여러 날 어머니 팔순 행사를 준비하며 행복하였는데, 부모님 모두 병원에 계시니 행사는 무산되었다. 서운하기 이를 데 없지만, 선물을 준비하며 설레었던 그 순간들이 있었기에 동안의 수고는 이미 보상받았다. 부모님께서 조금 더 회복하면 선물은 또 마련하여 드리면 될 것이다. 부디 원기 회복하여 강건함을 되찾으시길 비는 마음으로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 머리 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