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5년이 지난 일이다. 갑작스레 건강을 잃고 몸을 추슬러 다시금 사회로 나와 책 가게를 시작하였을 당시 인근 고교의 악동들과 인연을 맺었었다. 그들에게 책방은 소위 말하는 ‘아지트’였다. 지금까지 늘 위안과 격려를 나누는 그들 중 한 녀석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며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였다. 당황하며 거절하자, 막무가내로 형님이 아니면 안 된다며 거듭 청하여 왔다. 어쩔 수 없이 생각해 보겠다며 돌려보내 놓고 나니 예 추억이 떠올랐다.

그 당시, 어쩌면 자격 미달인 필자에게 사소한 다툼에 의한 우정문제, 설렘의 애정문제와 더불어 진학문제까지도 스스럼없이 토로하며 그 답을 물어 왔었다. 인생 선배라지만 모든 면에 부족함이 있었던 터라 그때마다 아는 경험담이나 지식을 총동원하여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독거려 주는가 하면 야단치기도 한 것이 반항기였고 호기심이 가득했던 녀석들에게는 많이도 공감되고 고마웠던 모양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졸업 후에도 가끔 만남이 이루어졌고 군대 생활을 할 때는 보내준 편지가 큰 힘이 되었다며 집보다 앞서 가게로 달려왔던 녀석도 있었다. 어리석고 착한 녀석들은 긴 시간 동안 자기들만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내 쪽에서 훨씬 많은 도움을 받았고 위안이 되었는데도 말이다. 당시의 난 많이도 외롭고 힘든 나날이었기에……. 그 악동들이 결혼할 시기가 되었으니 십수 년의 시간이 흘렀다. 정말 빠른 것이 세월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예전을 회상하며 까까머리 동그란 얼굴들을 떠올렸다. 이제 그들은 나에 대한 호칭을 아저씨에서 형님으로 바꾸어 부른다.

며칠 후 신부가 될 사람이라며 미소가 아름다운 여인을 동반하고 찾아와 거듭 주례를 간곡히 부탁해 왔다. 그렇지 않아도 주례 제안을 받고 고민이 되어 지인들에게 승낙 여부를 물었다. 아직 연륜이나 여러 면에서 주례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그가 주례를 부탁한 것은 나름의 의미와 뜻이 있을 거라며 가능하면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며 긍정적으로 검토하라는 조언도 여럿 있었다. 신부가 될 사람이 선한 미소를 지으며 “저희 결혼식 주례를 맡아 주실 것을 진정으로 원합니다.”라고 하는 통에 무언의 수긍을 하고 말았다.

결혼식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보신각의 종이 울리며 33겹 겹겹이 둘러싸인 장막을 걷어내고 이상향의 세계를 활짝 열기 위해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병인년 새날을 맞이하였다. 이 가득한 희망을 첫걸음을 내딛는 신랑 신부에게 한껏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식장에 도착하니 조금 이른 시각이었다. 앞선 예식이 진행 중이어서 참고도 할 겸 주례를 주시하였다. 주례를 전문으로 하시는 듯 능수능란하게 이끈다. 이내 예식이 종료되고 우리 차례가 되었다. 별 떨림이 없었는데 그제야 울렁증이 시작되었다. 사회를 보는 친구도 축가를 준비하는 친구도 하객을 안내하는 친구도 예전의 그 악동들이다. 끈끈한 정이 느껴져 이내 즐거움이 일었다. 사회를 보는 친구가 건네는 차를 마시고 이내 평정을 찾았다. 자리를 가득 메운 하객들의 열기로 겨울의 한가운데를 데우고 있었다. 결혼식이 시작되었고 식순에 따라 순조롭게 진행되어 주례사를 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잔잔한 떨림을 즐기며 주례사에 임하였다.

 “어쩌면 오늘 제가 있을 자리는 이 주례의 자리가 아니라, 하객의 자리에서 이 결혼을 축하 해 주어야 더 타당할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감히 여기에 서 있는 것은 첫걸음을 내딛는 이 부부에게 더 큰 의미를 부여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주례와  신랑 상병 군과의 인연은 오래전에, 그러니까 고교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오랜 시간  위로와 격려를 나눈 사이이지요. 하여 이 자리에서 긴 애정을 과시하기 위함도 있습니다.

따뜻한 사랑이 함께해야 행복해 질 수 있는 이 겨울의 한가운데에 이곳을 훈훈함으로 데워  주시는 하객 여러분에게 우선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신랑, 신부를 대신하여, 전합니다. 주례사는 짧을수록 좋다고 하였으니 간단하게 할 말만 할까 합니다. 신랑, 신부는 깊이 새겨 두기를 바랍니다.

옛말에 ‘무감어수 감어인’이라는 경구가 있습니다. 거울이 아닌, 사람들에게 자신을 비추어 보라는 말이지요.
사람이 태어나서 한세상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산다는 것은 관계의 연속입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비추어 바로잡고 지혜를 체득하여 그들과 사랑하며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잃지 않을 때 비로소 성공한 삶을 영위할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고 한 하늘 아래 같이 살면서도 부모, 형제, 일가친척 나아가 사회 구성원들과  사랑을 상실한 채 서로 반목하고 시기하며 산다면 사는 의미는 상실하는 것입니다. 이 모두와 그리고 자연과도 더불어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앞으로 잘 살아가리라 믿습니다. 다섯 가지만 당부하면서 주례사에 가늠할까 합니다.

-첫째 책임을 다해야지요. 관계하며 살다 보면 혹여 형제간에 불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맏이니까 리더로서 이끌데 둘째나 막내에게 자신을 비추어 지혜를 얻어 맏이 노릇을 하십시오.

-둘째 건강해야지요. 혹여 둘 중 누군가가 예기치 않게 건강을 잃게 되더라도 배신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건강을 잃어본 사람에게 자신을 비추어 그의 간절함을 배워 행동하십시오.

-셋째 서로 믿음이 있어야겠지요.

신뢰가 최상의 인연입니다. 결혼 후 이혼이 많은 세상입니다. 이혼사유가 대부분 성격차이라고 하는데 다 핑계에 불과합니다. 단 한 가지는 그 모든 걸 감당 하리만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넷째 진실로 사랑해야 합니다.

결혼생활은 완성된 건물처럼 매일매일 보이지 않는 실금(균열)이 가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 실금을 매일매일 메우고, 손보지 않으면 나중엔 너무 벌어져 건물을 다시 지어야 한답니다. 순간순간을  사랑의 접착제로 그 금을 메우며 살아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사랑은 들고 있으면 팔이 아프고 내려놓으면 마음이 아픕니다.

서로 비추어 보면서 그때그때 아픔을 드러내 공유하고 더불어 치유해 나가야 합니다.

이 주례가 먼저 살아보니 그렇습디다. 몇 가지 되질 않으니 기억하였다가 살아가며 꺼내 쓰길 바랍니다.

당나라 백거이의 노래에 ‘하늘에는 비익조 날고 땅에서는 연리목이 되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익조는 암수 한 쌍이 눈과 날개가 각각 하나이기에 항상 하나가 되어 날 수 있고, 연리목은 두 나무가 서로 연결되어, 살아도 한 몸이요 죽어도 한 몸으로 뗄 수 없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제 신랑과 신부는 비익조가 되어 항상 함께 날고, 연리목으로 땅속 깊이 뿌리를 박아 일심동체의 연을 맺고 평생을 행복하게 부여안고, 멋있게 살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것이 용기라면 사랑받는 것은 능력이라 하였습니다. 언제나 지금의 마음처럼  부드러운 얼굴로 아름다운 마음으로 너그러운 생각을 나누며 서로에게 사랑받고 살다가 이 소풍 끝날 즈음에 손 꼭 잡고 아름다웠노라고 두 눈 마주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제가 즐겨 읊조리는 시 하나 소개하며 주례사를 마칠까 합니다.

무엇이 진정한 성공인가                   -에머슨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으며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이 주례는 두 사람의 결혼을 기쁘게 알립니다. 영원히 행복하길 다시금 진심으로 바라며 주례사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신랑, 신부와 기념 촬영을 하는 것으로 결혼식은 종료되었다. 연이어 뒤풀이에 참여하였다. 친구의 자격으로 참석하니 예전의 그 악동들이 다 모여 서로 수고했다며 격려를 따뜻하게 나눈다. 건배를 제의하며 흥을 돋우고 나서 예 시절의 추억을 꺼내어 나누었다. 이런 자리를 갖게 해 준 녀석이 고마움으로 다가왔다. 늦게 합류한 새신랑 신부와도 짧은 시간을 함께 하고나서 신혼여행 길에 오르는 것을 배웅하는 것으로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신랑이 창문을 열고는 

“여행 다녀와 금요일에 찾아뵙겠습니다.”

라고 소리친다. 그 외침이 차 뒤에 달린 방울에 묻혀 점점 멀어져 갔다. 새해 들어 처음 갖는 의미 있고 행복이 가득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