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진한 감동을 선물했던 ‘책과 함께 부산을 걷다’ 그리고 2013 독서문화축제 사전행사였던 ‘100인100색의 선물’, 이 둘의 감동을 잇는 책 선물 ‘꿈꾸는 독서아카데미’에 사뿐히 승차했다. 가을이 완연하게 내려앉았다. 조금의 안개는 더치커피가 생각나게 한다. 이상은 시도하여야 현실이 된다는 금언은 진리다. 두려움에 망설이기보다는 첫발을 내딛는 사랑스러운 이 단체로 말미암아 책과 함께하는 영혼이 낙엽 되어 가슴에 내려앉으리라.

가을과 함께 걸으며, 1인의 독서 멘토를 중심으로 그가 곁에 두고 자주 꺼내 읽으며 자신 삶의 길잡이가 된 책을 소개받고 더불어 그가 살아온 길을 이야기하며 미소 나누게 될 것에 동그란 미소가 입가로 번진다. 살면서 이야기 나누고 싶었던 것을 눈을 마주하고 앉았을 때 우리 안에 있는 불편한 시선들은 사라질 것이다. 이를 위한 매개체가 책임은 큰 즐거움이다. 색다른 독서, 특별한 여행이 될 것 같다.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이 아니라 사람 책이다. 책을 읽고 실천에 옮긴 삶을 공유하고 사랑을 건네받을 것이 자명하다.

첫 모임 장소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옛 부산진 역사. 괜한 쓸쓸함이 이른 낙엽과 더불어 나뒹군다. 황량하다. 그 위에 나붙은 포스트 ‘책을 그리다 展’이 왠지 따뜻함으로 그려져 있어 그나마 위로한다. 조금 늦은 큐레이터가 황급히 달려와 일행을 반긴다. 펼쳐진 전시장엔 111권의 책 이야기가 담긴 111점의 그림이 책 향기를 무던히도 진하게 풍긴다. 역사 한쪽에 놓인 긴 나무 의자가 예 추억을 더듬게 함도 좋았다. 화가들은 그림에 책을 어떻게 표현할까.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 같다. 작가들의 고민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전시한 책 그림은, 다독가로 알려진 L 부산발전연구원장이 20여 년 동안 책을 읽고 메모한 것을 부산의 미술작가들이 책의 감동과 느낌을 한 폭의 그림에 담은 것이라 한다. 이를 부산지역 청년 사회적 기업 아코아(a colony of artist)가 주축이 되어 기획 전시를 옛 부산진역에서 펼치는 것이라고 전한다. 아코아는 부산의 산복도로 낙후지역 마을재생 활동가 및 청년작가들과 함께 지난 3월 대통령 당선인의 스토리텔링 달력을 제작해 화제를 모은 기업이라고 한다. 몇 년 전 인연을 맺었던 공공미술을 주창하던 ‘오픈스페이스 배’의 젊은 작가들이 생각나 미소 짓는다. 그림에 대해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는 행위는 물론 감상마저도 서툴다. 얼마 전 수필집을 출간하면서 내용 담은 그림을 한 편에 한 점씩 담아 함께 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으나 쉽지 않았다. 다음 책에는 이를 실행하기 위해 화가를 알고 지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여름휴가를 기회로 지인을 통해 알게 된 화가를 고향에서 만났다. 화실은 온갖 꽂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었고 특히 망초 꽃은 살아 향기를 품는 듯하였다. 화가를 벗으로 둠이 너무 기뻤다. 책을 선물하고 내 계획을 말하니 긍정적으로 검토 하겠다 한다. 책 그림 앞에서 고향과 화가를 떠올리니 설명에 열중인 K 작가의 동그란 얼굴에 겹쳐 떠오른다. 좋은 기분이 된다.

전시한 그림은 한국화, 서양화, 조소, 공예 등 20대부터 50대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책을 각각 해석한 그림들이라 한다. 그림에 문외한이었기에 큐레이터로 참여한 K 작가의 설명에 힘입어 한 권 한 점 고개 끄덕임으로 즐거이 음미하였다. 참여 작가들은 내로라하는 중견 작가를 비롯해 신진작가들도 함께 재능기부 형태로 참여해 의미를 더한다고 힘주어 전한다. 아울러 방치된 부산진역을 갤러리로 활용해 평소 접근하기 어려운 갤러리의 이미지를 씻고 쉽게 다가설 수 있어서 보다 많은 시민이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전시회를 많이 알려 달라고 당부하였다. 작품 전시로 얻는 수익금 일부는 부산진 역사 보존 캠페인 기금으로 쓰고 나머지는 각 기관에 기부하거나 일부 작품은 마을 거점시설에 기증할 예정이라 전한다. 참으로 여러 의미를 지닌 전시회라는 생각을 하였다.

데카르트는 좋은 책 읽는 것은 과거의 가장 뛰어난 사람과 만나는 것과 같다 하였다. 마크 프리드먼의 64세 간호사의 삶을 그린 ‘앙코르’가 화가의 눈을 거쳐 ‘노년의 누드모델’이란 이름으로 재탄생하였다. 작가와 화가의 의미 공유가 마음에 가장 남는다. 곧 이 책과 만나리라. 선정한 100여 권을 보니 책들이 모두 어렵다. 사람들이 그림 안의 조금은 어려운 책을 자전거를 배울 때 심정으로 읽었으면 좋겠다. 이를 통해 고마움을 알고 행복을 알고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게 되길 바라게 된다. 사람이 만든 책보다, 책이 만든 사람이 많다는 말을 되뇌게 한다.

가을, 책, 커피 그리고 걷기와 사색… .
어울림이 남다르다. 이 가을에 책과 함께하며 사색을 즐긴다는 것은 이유 있는 사치다. 얼마 전 독서축제에 참가한 k 교수는 “책은 비밀의 화원이다. 그 안에 들어가면 생각지도 않은 것을 새로이 만나게 된다. 예상 못 한 예기치 않은 것들을 보고 만나게 된다. 책은 그래서 언제나 예상을 압도하는 힘을 지닌다. 펼치면 우리 인생에 새로운 충격과 기쁨을 만난다. 책을 덮고 사는 비밀의 화원에 무지한 인생을 선택할 것인가?”
라고 물었다 한다. 그러하다. 책은 언제나 기대하는 그 무엇을 뛰어넘는 힘을 지닌 듯하다. 책은 시간을 선물한다. 내가 가 보지 못한 세상, 경험 못 한 과거를 경험하게 해 주니 그러하다. ‘내 인생의 책을 선물하자’는 독서축제의 테마를 이어 이 가을 내내 책과 함께 부산을 걸으며 사랑을 나누리란 다짐을 하여둔다. 더불어 이 역사처럼 제 할 일 다 한 공공건물들이 네모난 도심의 문화예술 공간으로 거듭 태어나 시민들의 쉼터로 되돌려 졌으면 참 좋겠다. 고층 아파트를 세우는 일보다 기쁨이지 않겠는가.

고개 갸우뚱거리며 바라보기도 하고 함박웃음도 지으며 그렇게 책과 그림 앞에서 행복했다. 둘러 앉아 함께한 커피 향이 다시금 마음을 울렁이게 한다. 다음 선물을 기다리는 한 남자의 마음이 사뭇 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