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큰 행복은 한 해의 마지막 즈음에 가던 길 멈추어 서서 걸어온 날을 뒤돌아보며 오늘의 내 삶 속에서 이전보다 단 한 부분이라도 나아진 내 자신을 발견하였을 때의 기쁨일 것이다. 얼마 전 벗에게서 받은 글이 떠오른다.
“올 한해 당신을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소."
라는 말에 얼마나 가슴이 따뜻했는지 모른다. 존재 가치를 느끼게 해 주는 작은 손짓으로 인해 훈훈한 마음이 되었음을 다시금 생각한다. 한 사람의 정겨운 마음이 행복을 심어 주어, 햇빛이 달에게 먹혀 밤이 되듯이 내 삶의 전부를 훈훈하게 하여 주었음을 느낀다. 나무와 꽃들이 있어 우리가 살아가는 진리를 깨우칠 수 있듯이 이러한 벗이 있음에 인생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리라. 이런 소중한 인연으로 인해 가는 해가 그렇게 아쉽지만은 않다. 인생이 유한함으로 인하여 살아가며 만나는 작은 인연들이 아름다우며 소중하다는 것임을 헤아려 본다.

금아 선생님의 표현에 의하면, 새색시가 김장 서른 번만 담그면 늙고 마는 인생이라 하지 않았던가? 삶이 무한하지 않음을 아쉬워한 것이리라. 그리하여 세모의 정은 나이 들수록 깊다고 한다. 남은 횟수가 적어질수록 상대적 속도를 느낀다는 것이다. 선생께서 삶을 살면서 만났던 인연들은 어떠하였을까 떠올려 본다.

이제 지천명을 넘기며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 봄에 긴 상념이 오간다.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중요하며 시간은 그렇게 또 흘러간다는 말을 소중히 받아들이려 한다. 지나온 삶들이 새해 시작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생각한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삶은 주어지는 것이고 시련과 고통 또한 함께 하는 것 아니겠는가? 다만 그 주어짐에 최선을 다 하였는지를 나에게 묻고 싶다. 조용히 침묵하며 한 해를 돌이키니 스쳐 가는 상념들이 있다.

삶을 사랑하며 신념을 지니고 사셨던 사랑하는 아버지를 멀리 떠나보내고 이제 기억 속에서 만난다. 많이도 그립다. 또한, 잊고 살아가다 30여 년을 넘기고 삶의 동반자로 다시금 함께 길을 걷게 된 옛 동무. 문우의 정을 나누고 있는 사이버 상의 문학 공간, 그 곳의 많은 글벗과의 인연도 소중하게 기억한다. 지난 주말 있었던 모임에 마음을 열지 못하고 시공이 허락치 않는다는 핑계로 함께하지 못한 것이 사뭇 미안하고 아쉽다.  십여 년간 책읽기와 글쓰기를 지도하며 만났던 인연들 또한 매양 그립다.

뜻하는 바가 있어 작년 근무처를 옮겨 올 내내 따뜻한 사랑을 나누고 있는 글나라 가족들과 그 따뜻한 공간에서 함께하는 모든 어린 친구들이 떠오른다. 더불어 언제나 묵묵히 지켜봐 주는 사랑하는 가족도 정녕 소중하다. 이 모든 인연들을 생각하며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움을 생각한다. 이 시간, 함께 했던 모든 일과 함께하는 모든 이들을 떠올리며 내 인생의 든든한 동반자임을 깊이 인식한다. 아마도 올해에 이룬 것들로 인해 내년의 새로운 시작은 물론이고 오랜 시간 내 삶을 지탱해 줄 충전의 시간들이었음을 생각한다. 하여, 어느 해 보다 행복하였음을 따뜻한 가슴으로 느낀다.

두터울 때는 세밀한 것을 생각하고, 좁을 때는 넓힐 것을 생각하며 자랑할 때는 겸손할 것을 생각하고, 잘못을 말할 때는 캐 내지 말 것을 생각하며 남 좋은 일을 드러낼 때는 살펴 삼갈 것을 생각하고, 속일 마음이 생길 때는 참 될 것을 생각하라는 예 어른의 말씀을 깊이 받아들이며 저물어 가는 한 해를 보내려 한다. 새해 첫 날 동트는 새벽은 어머니 계신 남쪽 바다에 들러 일출을 맞으며 시작하리라. 잔뜩 찌푸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시린 눈꽃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