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따갑던 여름날도 태풍이 밀어닥치자 꼬리를 내렸다. 많은 아픔을 준 태풍이지만, 이 또한 자연의 섭리라 생각하니 다소 위안은 된다. 여름을 가득 담고 하늘이 점점 푸르고 높아진다. 사시사철 책 읽기는 필요하지만 그래도 독서 계절이 옴을 반긴다.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는 독서란 필요성은 느끼지만 쉬이 실천하지 못하는 듯하다. 세계를 품 안에 안을 수 있음은 부푼 꿈이며 이를 움직이는 지혜는 독서의 깊은 곳에서 찾을 수 있는 것임을 알면서도 안타깝게도 열독율은 정체하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2012년 가을 초입, 대청동 산마루에 있는 민주공원에서 부산 어린이 책 잔치가 열렸다. 사)한국독서문화재단을 위시하여 부산의 독서단체가 합동으로 주최하여 ‘놀고 자빠진 책’ 이라는 슬로건으로 어린이들을 초대하는 행사를 하였다. 직원들과 자원 봉사자들이 여러 날을 기획하고 준비하여 마련된 행사는 높푸른 하늘을 무대로 우리나라 민주주의 산실인 민주공원에서 펼쳐졌다. 모여드는 인파에 사뭇 놀랐다. 수많은 아이가 부모와 손잡고 찾아와 책과 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책으로 탑 쌓기를 하는 아이가 까르르 웃으며 즐기고 있는가 하면 좁은 목욕통 안에서 아빠와 뒹굴며 깔깔대는 아이, 울긋불긋한 텐트 속에서 책과 마주하며 연신 싱글거리는 아이는 누굴 만났는지 동그란 얼굴이 더욱 상기한다. 책 관련 체험장과 공연장에는 즐거움이 한창이다. 넓은 행사장에 걸리고 차이는 것이 온통 책이다. 읽는 장소에 따라 감흥이 다름을 체험한다.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어 생각하고, 읽고 난 뒷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은 어른도 큰 듯하다. 책과 부모와 함께한 오늘의 추억은 아이들에겐 실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독후 활동이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부모들도 이 풍요로운 느낌을 오래도록 간직하여 자주 동심의 세계로 여행하는 즐거움을 아이들과 공유하였으면 좋겠다. 동화 읽기는 아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순기능을 가진다. 어른들의 말라 가는 정서에 온기를 주어 감성을 키워주고, 아이들 입장이 되어 생각하는 힘도 길러 주기에 그러하다. 정의가 바로 서지 못하고 각박해지는 현실, 부대끼며 살아가려 해도 힘들어지는 세상 아닌가. 끔찍한 사건들로 얼룩지는 요즘의 세태가 동심의 상실이 그 모태는 아닐지 생각해 본다.

책과 즐겁게 노는 아이들의 눈을 통해 희망을 보았다. 아이들의 아름다운 삶을 생각하였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만을 추구하라고 가르치는 이 반쪽자리 교육 속에서 독서를 통해 지혜를 얻게 하려는 부모가 많다는 사실에 맑은 사랑을 보았다. 이러함으로 인해 행사 기간 내내 내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이어지고 있었다. 마음이 자란 듯하다. 자신을 기쁘게 한 모든 사람이 그들의 스승이 되었을 것이다. 진한 물듦은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스며들며 닮는 것처럼 이 책 향기가 아이들에게 잔잔히 스며들어 크나큰 세상을 움직이는 지혜로운 이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희망 가득한 아이 눈을 바라보는 부모의 눈은 또한 어떠한가. 그 마음을 대하니 가슴이 벅차기만 하다.

독서 관련 명언 중에 ‘책을 읽을 때 당신은 항상 가장 좋은 친구와 함께 있다.’ 는 말이 있다. 책을 읽는 사람은 늘 좋은 친구가 곁에 있는 것과 같다는 의미일 것이다. 책의 효용성이 많겠지만 누구에게나 좋은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 또한, 한 권의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삶에서 새 시대를 본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하늘의 별이 실의에 찬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해주는 것처럼 과거 몇 세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눔으로서 그 지혜를 토대로 새로움을 창조하는 이들 또한 많지 않은가. 오늘 이곳에서의 나눔이 시발점이 되어 책과 늘 함께하며 많은 친구를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본다.

에디슨은 1913년 뉴욕 타임스 기고에서 앞으로 책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21세기에도 우리는 여전히 책을 읽고 있다. 과학이 인류의 삶을 변모시키고 있지만 인류를 번영시킨 것은 아마도 책일 것이다. 멈추지 않는 독서 통해 지혜를 쌓은 이들에 의해 세상은 변화됐고 앞으로도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어 가리라고 확신한다. 삶이란 자신을 무한히 확장해서 자유를 얻어 가지는 과정이다. 그러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책으로 충전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책은 마음 발전소이기에 무한한 에너지를 제공할 것이 자명하다. 책 속 모든 정보는 현실의 축소판이다. 저자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토대로 현실의 부조리와 끊임없이 대화해 나가야 한다. 종국에는 이 부조리와 맞설 지혜를 주기에 책은 절대 사라지질 않을 지혜의 보고이다.

전시된 책 속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지혜를 만났다.
“제물을 비밀스럽게 잘 숨겨 두는 비결은 베풂이다. 사라지고 말 재물을 어려운 사람과 나눔으로써 받는 이의 마음과 내 마음에 깊이 새겨 놓기에 변치 않는 보석이 된다.”
21세기 물신주의에 빠진 우리에게 던지는 삶의 지침이며 나아가야 할 길 아니겠는가? 나눔, 베풂, 무소유, 복지 등 오늘날 회자되는 화두를 오롯이 담고 있는 책 속 지혜이다. 역사는 인간이 만들고 되풀이하기에 활용할 지혜는 책 속에 넘쳐나는 것이다.

이틀간의 행사를 마치고 장내를 정리한 후 민주공원을 나설 때 서녘 하늘에 곱게 물들었던 노을을 떠올려 본다. 독서 단체의 노력뿐 아니라 개인, 가정 그리고 범사회적으로 독서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어 곱게 핀 노을처럼 고운 향기 가득한 책 노을이 온 나라에 피워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