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꿈을 꾸시곤
“오늘 너거 아버지가 가실란갑다.”
영면한 조상님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잠이 깨어 눈을 뜨곤 하신 말이란다. 그 시간, 일주일째 병원에 계시던 사랑하는 내 아버지가 거친 숨을 몰아쉬는 듯하다 순식간에 숨을 멈추었다고 한다. 급히 삼십여 분간의 심폐소생술로 목숨은 연명하였지만,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다.

그 시간, 큰 아이가 육군 훈련소에 입소하는 날이라 아침부터 분주하였다. 논산훈련소까지 배웅할 계획이라 마음이 더 앞섰다. 먼 길을 내달려 훈련소에 도착하였다. 입소식에서 ‘충성’ 하며 사열대의 부모들에게 목청껏 인사하는 소리에 섞여 손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아버지 곁을 지키던 형의 전화다. 아버지 병세가 갑자기 심해져 중환자실로 옮겼으며 현재 산소 호흡기에 의존하는 상태이니 병원으로 오라는 전갈이다.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그렇게 위중한 병은 아닐 것이라는 안이함이 있어서일까….

마음이 급해졌다. 가슴이 뛰며 눈물이 핑 돌았다. 아내와 서둘러 고속도로에 몸을 실었다. 논산에서 부산 병원까지는 내달려도 네 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기에 호흡이 거칠어졌다. 큰 위기는 넘겼으니 서둘지 말라는 형의 당부에도 가속페달에 힘이 가해졌다. 늦게야 도착하니 형제들 모두 막내만 기다리고 있다. 다행히 하루 두 차례인 면회 시간이 임박해 중환자실로 향했다. 문이 열린다. 아! 사랑스런 아버지다. 평소의 선한 모습 그대로 평안히 두 눈 꼭 감은 채 호흡기에 의지하여 가는 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참으로 평온한 모습이다. 그런데 왜 이다지 서러운가.

역사의 큰 흐름 앞에 놓이면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다. 부평초처럼, 강물 위의 나뭇잎처럼 그 시대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당대의 고난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가야 할 운명을 얻는다. 고난의 현대사를 꿰뚫고 살아야만 했던 아버지는 그 고단함을 이제 놓으려 하시는가. 아! 서러운 내 아버지가 우리 곁을 떠나려 준비 중인 듯하다. 모진 시간을 정리하시려 한다. 꼭 감은 두 눈가에 눈물이 말라 있다. 고통에 힘겨워하면서도 사흘을 병원 치료를 거부하고
“왜 집에 안 보내 주는데”
라며 소리 질렀었다. 목이 쉴 때까지. 왜일까? 아버지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여든다섯으로 당신의 삶을 정리하리라고. 가시는 순간까지 자식들이 못 미더워서일까? 그러지 않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다. 허나, 불효자식들은 그 마지막 소망을 들어 들일 수가 없었다. 당신께서 고통에 일그러져가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어 인위적인 힘을 빌려 의식을 빼앗고 수술실에 눕혀야만 했다.

또다시 시간이 흘렀다. 깨어나서 집에 데려 달라고 소리치면 감당키 어려워 또 재울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육신은 더 파괴되어 갔나 보다. 아버지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이 풍진 세상과 영원히 작별하기로. 마침내 의식을 놓았다.
아~ 나의 아버지. 정녕 이렇게 제 곁을 떠나시렵니까.

형제 회의를 마치고 한 명만 남긴 채 모두 일상으로 돌아갔다. 잠자리에 들었지만 채 두 시간이 지나지 않아 깨어나 앉았다. 새벽 세 시를 넘고 있었다. 멍하니 벽을 응시한 채 상념에 잠겨 있는데 현관 쪽에서 환한 불빛이 들어와 주위가 밝아졌다가 이내 사라졌다. 인기척은 없다. 놀란 가슴으로 방을 나서 보니 현관문만 약간 열려 있을 뿐이다.
“아! 아버지가 오신 거야. 막내가 보고 싶어 온 거야…. ”
다시 자리에 누워 팔베개 해 드렸다. 불을 켜두고 눈을 감았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집어든 나는 불빛의 주인이 신문 투입구에 꽂혀 있는 신문임을 일순 알게 되었다. 아버지와 함께하여 좋았는데……. 그렇게 또 내 삶의 시간은 아버지와 더불어 채워지고 있다.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슬프다. 너무 슬프다. 다시 아버지와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렇게도 모시고 싶다는 막내 간청을 뿌리치시더니 이렇게 의식을 잃으신 채 내 삶 근거지에서 쉬신다. 맛난 음식도 막내와 조곤조곤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말이다. 왜 이렇게 안타까운가. 또 사흘이 흘렀다. 하루에 겨우 두 번뿐인 면회 시간이 그래서 더욱 간절하다. 집으로 데려다 달라는 아버지 말이 귓전에 들려왔다. 담당 의사를 찾아가, 열흘 째 의식을 찾지 못하시니 당신의 소망대로 집으로 보내줄 것을 간청하였다. 하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지금 상태에서 호흡기를 제거하는 것은 안락사며 현재 불허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되레 나에게 부탁을 하였다. 또 시간이 흘러 아버지가 의식을 잃은 지 열닷 세가 되는 날, 앙상해진 몸으로 거친 숨 내쉬는 아버지 앞에서 약속하였다. 고향으로, 어머니 곁으로 모시겠다고…….

다시 의사를 찾아 고향 거제에 있는 병원으로 이원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이마저도 이원 도중 사망할 확률이 높기에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화가 났지만 간절한 마음을 담아 고향으로 가실 수 있게 해 달라고 거듭 부탁하였다. 간절한 마음으로 여러 번 청하니, 가시는 동안은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사료된다며 여섯 아들의 동의를 받더니 아버지를 거제 병원으로 보내 주었다.고향 거제의 병원까지 다행히도 아버지는 무사하였다. 살아생전 얼굴을 보고 싶어 할 이들에게 연락하고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를 모셔 와 지아비와 상봉케 하니 애닮 기만하다. 또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7시 10분 드디어 아버지가 소천 하셨다. 자식들 앞에 두고 평안하게 자애로운 미소 짓곤 영면에 드셨다. 아! 착하고 성실하게 거짓 없이 평생 농군의 삶을 사신 내 아버지가 떠나시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 밀려왔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 ’
사흘 밤낮을 애끓는 곡소리로 내 아버지를 보내 드렸다.

기억할 것이다, 아버지를. 내 삶이 다 하는 그날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