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룩하던 하늘이 또 가라앉으며 물줄기가 시원스레 스쳐 간다. 꿀맛 같은 연휴다.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를 들으며 행복하게 찻잔을 기울인다. 가장 작은 일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하였는가. 찻잔을 들고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소리 들으며 상념에 젖는다. 조금 전 겪은 일에 아쉬움이 남아 있다. 인생이 즐겁다 괴롭다 하는 것은 마음의 변화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깨우침이리라.

저택에 사는 미국의 상류층 부부가 있었다. 부인은 사회봉사를 열심히 하였다. 어느 날 외출을 하려는데 월남전에 나갔던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제가 전역을 해 집으로 가는데 전우 한 명을 데려갑니다. 그 친구는 상처를 입어 두 다리와 팔 하나를 잃었고 얼굴에 화상을 입어 눈과 귀 하나씩도 잃었습니다. 그런데 갈 데가 없어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깜짝 놀라 말했다.
"안 돼! 잠시 왔다 가는 건 몰라도 안 된다. 내 친구들과 동네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니. 아버지 체면은 뭐가 되니? 그러니 너만 오면 안 되겠니?"
어머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들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날 밤 한 시골 경찰서에서 메시지가 왔다.
"두 다리와 팔 하나가 없고 얼굴에 심한 화상이 있고 눈 하나와 귀 하나가 없는 청년의 시체가 있습니다. 머리에 권총을 쏴 자살했습니다. 그런데 신원 증명서를 보니 아드님 같습니다."

대부분 사람이 느끼는 장애에 대한 인식은 이 어머니와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며칠 전 인터넷에서 접한 이 이야기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여러 생각을 이끈다. 사뭇 가슴이 저며 왔다. 자신이 장애인이 되기 전이나 가족 중 장애인이 없다면 대부분 이 어머니와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사랑이 제일 중요하고 사랑의 마음을 여는 데는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 제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관공서나 상점, 아파트 등 대중이 드나드는 곳에는 장애인 주차공간을 확보하여 그들에게 편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 제도는 몸이 불편한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장애인 표식이 없는 차량이 버젓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가끔 본다. 이곳을 활용하는 이들은 아마도 일반 주차구역은 공간이 협소하여 승하차가 힘겨워 불편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이 장애인 구역에 주차하는 비(非)장애인이 가끔 있다. 이들은 평소 장애인이 눈에 잘 띄지 않으니 이용할 사람이 거의 없다고 생각해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곳을 늘 이용하는 장애인은 씁쓸한 마음으로 차를 돌려 일반 주차장으로 가서 어렵사리 주차하고 뚜벅뚜벅 걸어오며 중얼거릴 것이다.
“양해를 얻은 것이니 양보하지 않으면 어쩔 도리가 없겠지….” 라고.
불편한 마음을 토로하는 그들은 작아진다. 타계한 장영희 교수의 책에서 선진국의 장애인에 대해 배려하는 내용을 담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선진국 예를 들며, 나라의 '국격'까지 들먹이고 싶진 않다. 주차 공간이 부족해도 장애인 주차 공간을 비워두는 것이 상식인 나라, 장애인 한 사람이라도 편리를 주어야 한다는 공존의식이 있는 나라였으면 참 좋겠다.

우리가 흔히 보통이라 말할 때의 기준은 다수 정상인이다. 그들의 범주에서 벗어나면 장애인이 된다. 이렇게 보통의 기준은 우리 사회에 획일적이고 편향되어 있다. 이렇게 보통의 기준이 견고하다면 오히려 그 범주에서 벗어나는 이들에게 더불어 살아갈 조건을 주어야 하지 않은가. 똑같은 개인은 없다. 모두가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장애인에게 주차공간을 양보하는 조그만 배려로 말미암아 그들도 보통 사람이 되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으면 좋지 않겠는가. 장애인에 대한 우리사회 인식이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조금 더 욕심을 내어 국가 정책으로도, 개인 인식도 그들에 대한 배려가 나아지기를 바라게 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은 책이 많이 출간되어 문학의 효용성으로 말미암아 의식전환이 꾀하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된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 복지가 장애인을 위한 것이라 여기기 쉽다. 정부의 장애인 지원은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되었을 때 행하는 것이다. 통계를 보면 96%가 후천적인 장애를 얻는다. 자신이 원치 않아도 누구나 언제든 장애인이 될 수 있음을 방증한다. 현재 약 250만 명이 장애인 등록이 되어 있고 그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한다. 4인 가족 기준으로 한다면 장애인이 있는 가정이 1000만 명에 이른다. 정부나 사회가 장애인 복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애는 누구도 원하지 않지만 불가항력으로 겪는다. 누구든 피해 갈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또한, 나이 들면 누구나 장애를 겪게 될 것이다. 장래에 겪을 나의 장애를 생각해서라도 그들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면 이기심의 발로일까.

우리나라의 등록된 장애인 규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적다. 우리나라는 건강수준이 매우 좋아서 장애인이 매우 적은 행복한 나라일까? 아니다. 이는 장애를 드러내는 것이 도움되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은 다양한 서비스가 필요하다. 전문가 칼럼에 의하면, 의료와 돌봄서비스는 물론, 재활, 사회복귀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서비스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또한, 일상생활에서도 주거와 생활에 특수한 서비스가 필요한데 우리나라 장애인을 위한 지원은 소수의 소득보장과 여타 기존에 존재하는 서비스를 이용할 때 일부 재정보조를 해주는 정도이며,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서비스는 미약하다는 주장이었다. 장애인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제도적으로 장애인 복지에 대한 큰 틀의 사고전환과 구체적 정책대안이 필요할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인문학 개념이 널리 확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여본다. 인문학이 역사나 철학이 토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우위에 두는 학문이기에 그러하다. 시장에서 평생 국밥을 팔아 모은 돈을 학교에 기부하는 일이 사람의 가치를 우위에 두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국밥집 할머니의 정신이 어떠한 철학이나 문학보다 인문학 정신 그 자체이다. 이러한 인문학 정신의 토대로 말미암아 장애인이 보통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어 본다. 인도 속담에
“참된 위대함은 다른 사람보다 앞서가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보다 한걸음 앞서 나가는데 있다”
는 말이 있다. 어제의 나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부터라도 정신과 육체 모두 보통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꿈을 꾼다. 세상은 따뜻하고 향기로워야 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