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국장에게.
여행은 삶에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남도 순천에서 함께 맞이한 자유와 평화는 환희로 갈무리 되었고 여행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 양식을 키우는 활동임을 또 경험하였습니다. 그대로 인해 내 안의 정직하지 못하고 거친 모습, 화내기 좋아하는 바보 같은 모습은 많이도 사라져 버렸어요. 짧아지는 해가 드리우는 순천만 갈대밭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묶이지 않아야 자유롭고 그래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음도 배웠습니다.

삶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이고 아무리 힘들어도 삶의 방향을 잃어선 안 된다 하였지요. 하지만 삶의 무게가 많이 느껴진 나날이었어요. 처진 어깨를 하고서 퇴근 준비를 하던 저녁 무렵, 그대는 고운 미소 앞세우곤 길 떠남을 제의했지요. 어디를 가든지 마음을 다해가라는 공자의 가르침이 떠올랐기에 멈칫 망설였어요. 내 마음이 혼란스러운 시기였기에 그러했답니다. 하지만 망설임은 그다지 길지 않았어요. 사람에게는 사랑이 제일 중요하고 사랑의 마음을 여는 데는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 제일이라는 생각을 하였답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현실을 사랑하는 것이지요. 과거를 다시 가져와 걱정하면 무엇 하며 오지 않은 내일을 걱정하는 것 또한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얼굴에 동그란 미소가 지어졌어요. 이렇게 마음을 정하고 보니 그대의 고뇌가 떠오르더군요.

다정한 친구였던 그대, L 국장.
그동안 이곳에서 많은 행사를 맡아 최선을 다하였고,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수줍은 미소로 겸손을 내보였지요. 많이도 힘든 결정을 하고 또 다른 길을 걷기 위해 묵묵히 준비 중인 것을 알기에 동료로서 헤어짐이 섭섭하기 그지없어요. 어쩌면 이번 여행이 마지막 동행 인듯하여 순간 멍한 기분이 들었어요. 물론 시간을 나눈다는 것이 반드시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는 사람들에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질 것이니 드는 마음이겠지요.

정기프로그램 ‘아름다운 동행’.
시설아동 30명을 실은 노란 버스가 순천을 향해 출발하였지요. 사무국장으로 모든 준비를 맡아 순조롭게 진행하는 그대가 대견스러웠어요. 통제를 마치고 옆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답니다. 언젠가 눈을 마주하고 삶의 다른 계획을 조금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말할 때 인생 선배로서, 그대의 미래에 얼마나 믿음을 지녔는지를 파악하려 하였던 그때의 기억이 나더군요.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 문제이고 성공의 씨앗은 실패라 하였지요. 안주하려는 순간에 오히려 위기를 느끼고 10년 후를 계획하는 그대에게 난 부끄러움을 느꼈어요. 변화는 인식함으로 시작하고 중요한 목표가 없으면 방황한다고 하였는데 도태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 위해 오늘을 달리 생각하여 훗날의 행복을 이야기하였지요. 그대는 정확한 목적지가 있다는 이야기지요. 사람을 이끄는 것은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아는 데 있겠지요. 몇 년 후 어디에 있을지 정확히 안다면 분명 지금 잘 가고 있는 것이지요. 이번 떠남에서 내 화두도 그곳이 어디인지 생각해보는 것으로 해야겠다고 정하였답니다. 정확히 그곳이 보이지 않으면 멘토를 만나거나 책에서 찾아야겠지요. 그리고 나한테 물어볼 거예요. 왜 이 세상에 왔느냐고? 왜 사느냐고….

맑은 얼굴을 한 아이들과의 아름다웠던 동행은 한 겨울을 녹이기에 충분했지요. 구김 없는 그들의 미소가 참으로 좋았습니다. 순천 고인돌 공원에서 정 선생의 해박한 역사적 견해는 예 역사를 직접 만난 아이들에게 고개 끄덕임을 유도하기에 충분하였고 울창한 편백 숲에서 뿜어내는 기운 받으며 송광사에 들러 풍경소리 들으며 고즈넉한 산사에 매료되어 평화를 만끽했지요. 더불어, 온통 갈대로 어우러져 회색의 자유가 넘실대고 짱뚱어와 게의 춤사위가 함께하는 순천만 갯벌에 이르러서는 자연과 하나 되는 기쁨을 만끽하였지요. 장막을 다 걷어낸 더 넓은 그곳에서, 솨르르륵 바람이 머문 갈대들의 노래들으며 저절로 마음이 치유되더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중얼거리며 한참을 긍정의 꽃을 피우는 한 그루 나무가 되었습니다. 삶은 끝까지 살아봐야 알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을 하였습니다. 추억이라 이름 짓는 모든 것도 그 끝에 이르러봐야 소중함을 절감할 수 있는 것처럼…. 그대의 이 젊은 날 고뇌가 먼 훗날 자신을 사랑하는 자양분이 될 것은 자명하겠지요. 추억에서 감정을 빼면 기억이 되는 것처럼 이번 여행에서의 긴 사유와 결정이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 바랄게요. 능력이 없는 것을 염려하지 말고 목표가 없는 것을 두려워하라 하였지요. 목표가 있고 이를 성취할 능력이 있으니 무엇이 두려울까요. 그런 그대를 자랑합니다.

이보시오, L 국장.
순천으로 함께 떠난 겨울여행, 아름다운 동행이었소. 덕분에 행복했어요. 여행에는 정답이 없지요. 본인의 몫만큼만 만나고, 느끼고 남는 것이라 하였으니까요. 여행은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 가는 것일 터이지요.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은가요. 적당한 고통과 어려움이 있어야 보람되기에 그러하지요. 가슴과 머리에는 많은 추억을 담아 오는 것이 가장 잘하는 여행이라 하였으니 이번 떠남을 계기로 굳세게 또 앞으로 걸어가야겠지요. 가슴이 떨릴 때 또 어디든 떠나야겠지요. 함께 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해 봅니다. 내 인연이 된 그대를 자랑합니다. 좋은 인연은 끝나지 않고 삶에서 아름다운 동행을 하게 되겠지요. 우리 그럽시다.